편집자 혜진은 오늘도 자신이 다니는 출판사에서 나온 에코백에 교정지를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은 좀 해보자라는 다짐. 그러나 업무 시간 내내 시달린 잡무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잠이 쏟아질 뿐이다. 그녀는 결국 '새벽3시'를 에너지의 회복 시간으로 갖게 되었다.
회사에 남아 저녁을 먹고 조금 일을 더 하고 갈까?에서 이제는 6시에 칼퇴를 해 일단 집으로 돌아가 잠을 푹 잔다, 그리고 휴대폰 알람을 새벽 3시에 맞춰놓는다.
'새벽 3시'에 깨어 무얼 한다는 게 자기 고유의 방법은 아니었다. 우연히 정혜윤의 책을 읽다가 그녀가 제안한 자기만의 시간법이 생각이 났고 자신의 리듬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다는 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혜진은 유난히 이 부분에 연약했다. 자신이 한 일, 한 말에 대해 유난히 뒤를 돌아보는 편이었다. 평소 긴장감을 달고 사는 혜진은 직장을 다닐수록 퇴근 뒤 녹초가 되는 정도가 심해졌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삶.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이 내야 하는 책 일정은 다가오는데, 업무 시간인 '낮'에 쓰는 집중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걸 그녀는 느꼈다. 잡무가 주는 분산적인 일환경으로 인해 정작 낮에 시간이 생겨도 교정교열 등의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혜진은 야근을 택했다. 허나 야근을 위한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 이미 하루에 쓸 수 있는 육체적, 심리적 에너지는 고갈된 상태였다. 낮에 나타난 집중력 분산은 야근에까지 미쳤다. 해보자 하고 펼친 교정지를 뒤로한 채,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새로나온 책 정보 등을 찾아보다가 동료에게 먼저 집에 가겠다고 말하고선 교정지를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비유를 들자면 (오늘도 공부는 결국 안 했지만) 도서관엔 갔다는 '출쳌'의 마음이 거꾸로 되었다. 그녀에게 '출쳌'이란 집에서 집이 아닌 곳을 가서 무엇을 하는 게 아닌, 외려 집이 아닌 곳에서 집으로 가 무엇을 해버리는 게 되었다. 자신의 집에서 무얼 해보자라는 상황이 일어나면서 혜진은 6시 칼퇴, 일단 자기, 그리고 새벽3시에 일을 하기, 출근 준비라는 생활리듬을 만들어버렸다.
허나 새벽3시의 고요함이 그녀의 감각을 분산에서 집중으로 깔끔하게 도모해줄 리 없다. 새벽3시는 고요, 침묵, 사색의 시간 대신 어제 업무 시간에 일어났던 사람들의 말,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자극'을 준 사람들을 '신경쓰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그간 못 읽었던 책을 펼쳐볼까? 대책을 세워보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첩에 일기를 적어볼까? 몇 자 적어보지만 한 일을 적어보니 자신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책만 늘어간다. 화장실에 들어간 혜진은 변기에 앉아 일을 보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욕설을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