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성의 사회학을 통해 주목하고 싶은 것은 '회복'이다. 다친 감정 상태에 대해 사회학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란 틀에서 출발한 결과, 꺼내보고 싶은 회복론은 이미 나와 있는 세 가지 개념을 되짚어야 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먼저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무력감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작업이다. 흔히 '바닥을 쳐봐야 안다'는 서사가 현실 속에서 얼마나 더 다양한 층위를 고려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바닥으로의 추락'이란 상태는 무엇인지 감정사회학의 측면에서 그 정서 환경을 분석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바닥'을 재정리하는 작업이다. 빈곤, 배제, 소외라는 큰 틀에 안주하지 않고 '바닥' 자체에서 심리적 에너지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는 그 상태의 인간을 감정사회학은 이야기할 수 있는가를 발전시키려 한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의 무력감 드러내기는 아서 프랭크의 '회복사회recomission society'론을 수용, 확장시킴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회복사회는 질병의 경험 전후 가운데 개인이 병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회복사회는 '나았지만 고쳐지지 않은 상태'의 인간을 주목한다. 누가 나았다고 하는가? 의료사회학자인 아서 프랭크는 근대 의료 담론이 간과하며 함부로 재단하는 개인의 질병 상태에 대한 시선을 비판한다. 
완쾌는 의료 담론의 '인정'일 뿐이다. 한 번 다친 사람이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동일한 이전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전과 달라진 다른 이의 인식, 스스로의 자기 감시와 보호하게 되는 감정이 있다. 
내향성의 사회학은 회복탄력성이 주도하는 긍정적인 멘탈 훈련을 비판하면서 회복사회의 상태에 있는 개인에 주목한다. 아서의 논의보단 좀 더 내면적인 차원에 주력하면서 나은 것과 낫지 않은 것 같은 중간 상태에 있는 인간의 상처받음과 그 사회 현실을 스케치하는 게 내향성의 사회학이 떠안으려 하는 임무다.

마지막으로 내향성의 사회학이 대안으로 바라보는 것은 현대인의 '회복환경restorative niche'을 감정사회학이 만들어줄 수 있나다. 수전 케인이 가짜외향성을 위시한 삶의 연극성에 지친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은 있는가란 문제제기를 한 것에 공감하면서. 내향성의 사회학은 사적 영역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공적 영역의 정서적 연대를 위해 개인이 충전되어야 한다는 사회 현실 수긍과 새로운 정치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어떠한 정치 언어를 제시할 수 있을까. 계속 연구해나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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