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베커는 의료인류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챙겨두어야 할 학자다. 그는 의료인류학에서 처음으로 문화적 요소를 분석의 시선으로 끌어온 의료인류학계의 첫 세대였다.
평생 주제는 노화와 만성질병, 불임과 리프로덕티브 헬스(성과 생식의 건강 권리로,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 개발회의에서 제창된 개념이라고 한다. 특히 여성의 건강과 성생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견해)였다.
그녀의 삶은 연구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했다. 자신의 아픔은 곧 연구 주제이기도 했다. 그녀가 만성질병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평생 천식을 앓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녀가 불임 연구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그녀의 남편이자 교수 로저 사이에서 아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 로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는 걸 조심했다. 사람들의 선의에서 나온 염려를 자신이 과하게 받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매우 어렸을 때 이혼했다. 그녀가 어렸을 당시엔 결혼 실패가 쉬이 받아들여질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그녀가 관심을 갖게 된 테마는 ‘타인에게 낙인을 찍힌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정의를 위해, 가난한 자와 사회적 낙인이 찍힌 자를 대변하기 위해 연구 활동으로 실천을 해온 학자로 베커는 평가받고 있다. 이주민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인권 보호에 앞장섰고, 특히 보험 대상이 되지 못한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도 앞장섰다.
남편과 함께 자주 산에 올랐던 베커는 네팔에서 트레킹 도중 앓고 있던 폐색전증이 심해지면서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대표작인 Disrupted Lives: How People Create Meaning in a Chaotic World는 의료인류학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은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현대인들이 병, 불임, 가까운 이의 죽음 등 갑작스러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겪는 사회적 고통을 다룬 연구서다. 의료인류학에 큰 기여를 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