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14년 1월 4일 토요일 오후 3시 40분

+ 장소: 광화문 씨네큐브

(*스포일러 있음)

 

#1

 

"으이구 뇬석아. 오냐오냐 자랐더니 그런 것두 못 하구. 생활점수가 빵점이야, 빵점" 고레에타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고 나서 이 익숙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게 이 영화는 평소 생활점수가 왜 이리 낮냐고 지적당하며, 그것에 압박받는 이들을 위한 치료제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건축가이자 아버지 료타가 아버지로서 '원래 아들' 류세이에게 정을 붙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 중 텐트 치는 법을 골똘히 보는 그 순간을 기억해보자. 생전 쳐보지 못한 텐트를 잘 치려면 설명서, 즉 매뉴얼을 보고 따라야 한다.

우리가 흔히 생활점수가 낮다/없다고 지적받을 때 상황을 돌이켜보면, 집안일을 했을 때 거치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둘러싼 기대와 실망이 있다. 여기엔 '야무지게'라는 결과에 대한 진득한 수사도 등장한다.

 

이런 매뉴얼을 제대로 익힌 아이는 자라서 그  '야무짐'을 인정받는다. 이 인정/불인정의 시선은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의외로 섬세하다. "야 너 손톱 발톱 둥글게 제대로 깎을 줄 아는구나" "못질 하는 거 봐라 이거" "너 매듭 만들 줄 모르는구나?"

"야 바람막이 테이프로 고정시키려면 이렇게 삐뚤어지게 붙이면 어떡하니?" blah, blah.

 

#2

생활점수와 매뉴얼. 고레에타 히로카즈는 여기서 매뉴얼의 의미 전환에 성공한다. 생활점수가 낮다는 타인의 시선이 늘 걱정스러운 이른바 '오냐오냐' 어른들에게 매뉴얼은 '공부를 해서라도' 터득하고 싶은 일종의 부담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매뉴얼은 아버지 료타 스스로가 타인의 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감정의 장치'로 활용된다. '그렇게~된다'라는 성장의 맥락이 가득한 제목처럼 료타는 아버지로 '성장'하기 위해 매뉴얼을 '겪어나간다' 일상에서 가족을 대하는 실질적인 혹은 정서의 메뉴얼을.

 

#3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료타가 가족의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 데에는 자신이 가장 먼저 나서기보단 매개자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아내인 미도리 그리고 바뀐 아들 문제를 '법적으로 처리해줄' 변호사 친구, 심지어 자신의 원래 아들을 데리고 살았던 전파상 유다이도 자신의 문제를 대신 처리해주는 매개자들이었다.

아들과 함께 욕조에서 함께 목욕하는 것도 '거리감'으로 정리되던 료타의 과거를 보여준 영화 속 시선에서 료타는 가족의 문제를 '거리감'이 아닌, 가장 밀착된 일상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그 온기를 채워나간다.

 

#4

사실 자식이 바뀌고, 부성과 모성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서사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허나 이 영화는 분명 많은 이의 속에서 '틈새'와 '틈입'을 잘 나타낸 듯하다. '틈새'는 일종의 영화적 전략이다. 영화는 익숙한 서사 가운데 '디테일'이라는 틈새를 잘 그렸다. 두 아버지 료타와 유다의 대비된 구도를 비롯해, 영화는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공감의 장면을 세세하게 포착했다. '틈입'은 이런 디테일로 대변되는 '틈새'가 몰고 온 감정선이다.

 

이 영화가 두 번째로 성공적으로 그려낸 것은 '핏줄'보단 '돌봄'이란 틀 안에서 이전의 '대안가족'이란 유형으로 흘러가지 않았단 점이다. 이 영화는 그 어떤 인연이 없던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핏줄보다 중요한 정서적 공동체라는 이름의 대안가족보단, 가족의 제자리를 지키면서 다시 우리 사회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했을 때, 료타가 변해가는 과정, 그 어떤 매개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부딪치고' '겪어보려는' 매뉴얼 연습은 이른바 '오냐오냐' 자란 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고 있는 정서 환경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한다.

 

"당신의 생활점수는 몇 점인가요?"

 

타인이 주는 스트레스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다가가려는 나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채점을 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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