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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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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에 비해 내가 올리버 색스를 만난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 누구나 해보는 '명성에 대한 거리두기'가 나에게도 작용했던 것인데, 그런 거리두기가 꽤 쓸모없는 태도라는 걸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봤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교훈적이면서 나름 섬세하다. 그리고 이 책은 유머러스함과 진지함을 제법 사려깊이 같이 깔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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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려 어떻게 그런 단순함으로 이 책을 설명할 수 있지? 하겠지만) 이 책은 꽤 단순하다. 공감과 교감, 아픔과 기쁨, 신체와 자아의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태도를 묻는다. 그리고 이 책은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그 진지한 메시지를 역설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좀 '롤러 코스터' 경향이 없잖아 있는 듯하다. 색스는 아포리즘을 억지로 만들어, 자신의 삶을 전달하려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 환자의 고통을 스스로 느껴보는 과정이 너무 달달하게 읽히는 챕터도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챕터들은 '감동적'이라는 느낌으로도 전달될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겐 그런 지점은 오히려 색스가 이 책에서 배려 있게 '전시하는' 자기 생각의 디테일들을 갉아먹는다고 보기에. 약간 거부감이 든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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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은 그런 달달함이 비율로 따졌을 때 책 전체에서 절반도 되지 않는다. 색스는 소탈하며,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으며, 그의 활발하면서 생각 많은 수다는 이 책의 클라이막스인 7장「 이해하기」에서 "이 사람 제법인데? "하는 말을 내뱉게 만들도록 이어진다. 결국 우리가 시시껄껄하게 지껄이는 수다도 해석과 정리의 틀 가운데서 의미를 부여받기 마련이다. 적어도 경험에 관한 한 고백과 수다 자체를 지나친 개입 없이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면, 나는 색스가 7장 「 이해하기」에서 쏟아부은 통찰의 방식을 친구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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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책은 소위 '일상생활의 사회학'을 주창했던 이들이 말하는 일상과 경험의 연속성이 중지된 상태에서 도리어 느껴보는 일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책인지도 모른다. 색스는 256쪽에서 그의 관심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정상적인 경험은 외양과 내면 상태를 결합시키고, 외적인 직관과 내적인 직관을 결합시키고, 공간과 시간을 결합시킨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의 경험과 관찰 덕분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심하게 결함이 있는 경험의 가능성이었다. 내면 상태나 외양이 결핍된 경험, 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결핍된 경험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경험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요인인 것 같았는데, 나 자신의 경험과 환자들이 모두 묘사했던 장애 경험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경험, 즉 경험의 근본적인 붕괴는 칸트의 공식으로 설명하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색스가 이 책에서 보이는 미덕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 그리고 이 관계를 아는 대중의 마음속에서 신체적 정상/비정상의 구도라는 전형성을 탐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외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자아의 시선. 그리고 꽤 현상학적인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기자신에 대한 해석의 방식을 어떻게 추구할 수 있는가라는 그 지점을 '고통스러운 아픔'의 실제 경험 속에서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씩 꺼내놓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신체적 고통, 혹은 그런 고통 속에서 도드라졌던 정신적 광기 등으로 이 책을 접근한다면, 그 호기심은 제법 진부한 그간 자신이 접해왔던 사례의 복습으로만 단순 소비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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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을 좀 더 색다르게 보고자 한다면, 색스의 7장은 그 야심을 스스로 내보인 챕터이기도 하고, 독자 스스로도 이 챕터에서 '건질 게' 많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256쪽 내용이 어렵다면, 257쪽은 더 선명하게 고민거리를 안겨다준다.
행동의 급격한 붕괴, 경험의 급격한 붕괴, '범주'의 급격한 붕괴, 기본적인 공간과 시간의 급격한 붕괴를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간단히 말해서, '칸트적' 일이었다.
노르웨이의 한 산을 등반하다 부러진 자신의 다리를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의사의 고백담이 칸트의 시선으로 이어진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부담으로도 작용할 수 있지만, 마음을 좀 더 넓게 쓴다면 이것은 신체와 철학에 대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배려심 깊은 유용한 사례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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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색스는 무엇보다 칸트적 일을 통해서 신경학 자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인간의 주관성에 대한 수용과 간여를 강조하면서도, 신체를 인식,지각하는 차원에서 '나의 신체를 성찰하는 힘과 그 힘에서 발휘되는 내면 속 시각이미지'라는 테마를 언급한다는 중요한 차원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데서 책의 가치를 높인다. 인간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을 나는 '성찰성의 시각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이 욕심의 단서에는 색스의 이 고백과 수다가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내 스스로를 성찰하다는 것에서 나를 어떻게 떠올려왔는가라는 문제의식.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과거의 내가 가진 아픔을 뚜렷한 현실의 그림이든, 아니면 추상화된 형태로든 그려보면서 그 성찰성을 시각화의 단계로 틀지어본다는 것. 그랬을 때 칸트적 사유의 도식. 스키마라는 신비는 성찰성의 시각화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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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색스가 이 책에서 짚어본 '병적결손증'은 성찰하는 인간에 대한 가장 육체적인 고통의 외양을 띠면서도, 그 외양과 함께하는 내면의 괴로움을 가장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증상으로도 해석하고 싶어진다. 내 신체가 내 것이 아닌 상태로 여겨지는 상황을 '상상해보는' 이들의 아픔을 색스는 상세히 소개하면서 그 누구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면서, 색스는 '성찰성의 시각화'를 위한 단계를 성공적으로 진행해나가며 독자를 설득시키는 기술도 아끼지 않는다.
색스는 무엇보다 이 책에서 '병적결손증'이라는 증상의 유형화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그 특수성을 강조해 사람들에게 유별남만을 전달할 우려를 보기좋게 어긴 채, 우리에게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욕심도 내비치고 있다. 물론 이 보편성은 늘 내가 좋아하는 땅의 언어와 맞닿아 있다. 그는 우리에게 고통을 돌아보는 힘에 대한 중요성을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그 깊이를 보장한 채로 전달하는 기술자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