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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투명성'과 '불투명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최근 몇 년간 꽤 인기를 끌었던 '윤리적 소비'를 내세우던 기업과 기업가들은 자본주의사회의 대안으로 투명성을 잡았다. 이들은 은막에 가려진 생산자 문화의 비윤리성을 고발하면서 이 사회 내 경쟁의 공정함을 화두로 삼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투명하게, 더욱 투명하게 같은 슬로건을 외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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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일찍이 내가 두려워했던 점은 신자유주의가 결국 얻은 가장 큰 수확이 투명성의 전시를 통한 성찰성의 도구화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사회에서 기업들의 확장 전략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찰성이었다. 그들이 전진해나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는 윤리적 문제에 관해 소비자가 딴지를 되도록 걸지 않도록 그들은 "우리는 더 떳떳해질 겁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반성'의 단계를 넘은 사회적 성찰의 목소리를 힘껏 표출한다.
그러면서 기업과 기업가들은 장소성과 현장성의 투명화를 통해 소비자를 안심시키고 있다. 주방은 더욱 깨끗해지고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재료는 신선한 상태에서 관람할 수 있는 대상이다. 기업 홈페이지에 한 코너를 장식하는 윤리, 공정, 연대의 목소리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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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상품에 잊힌 오디세이'를 관찰하자고 제안하지만, 사실 보통의 이 견해는 순진하다. 오늘날 기업과 기업가들은 소비자들이 적당히 침범할 만큼 '상품의 오디세이'를 이미 만들어놓고 소비자들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오디세이는 더욱 교묘해질 것이며, 우리를 향해 더욱 다가오고 있다, 기업과 기업가의 속살을 거의 다 본 듯한 느낌이다라는 도취에 빠질 때쯤 오히려 이들의 불투명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젠 성찰, 성찰성이라는 말 자체는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가장 선한 대안이자 무기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