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만들려던 둥지에 썼다 망한 글.

 

 

 

 

 

 

 

 

 

 

 

 

 

 

 

 

 

 

 

 

1. 재판장의 극장화 

 

사실 <부러진 화살>에서 눈여겨볼 점은 김경호 교수(안성기 역)나 신재열 판사(문성근 역) 간의 줄다리기가 아니라, 그 줄다리기를 관람하는 법정 내 방청인들이다. 방청인들은 재판을 관람하면서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 영화는 사운드 처리를 통해 희미하게 그리고 서서히 재판에 대한 방청인들의 개입을 시도한다.(그리고 끝내 방청인들의 개입은 시각적으로도 분명한 소동으로 이어진다.) 이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 김경호 교수가 벌이는 투쟁에 점점 동참하게 만드는 '영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만약 이 영화가 시종일관 판사, 검사, 변호사, 피의자의 '진술'로만 진행되었다면 영화적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김경호 교수가 맞닥뜨린 사법 권력의 부조리함을 법정 내부에서 영화 관객과 같은 처지에 있는 방청인들의 시선과 병렬 배치시키는 것. <부러진 화살>에서 방청인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큰 기능과 효과를 갖는다.

 

법정의 질서와 극장의 질서는 닮은 구석이 있다.  두 공간 다 '침묵'을 지켜줄 것을 요구한다. '소리의 개입'은 영화를 보는 자를 향한 방해이자, 이는 곧 영화에 대한 방해로 여겨진다. 법정도 마찬가지다. <부러진 화살>에도 종종 나오는 장면이지만 판사는 부단히 법정 내 방청인들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방청인들의 소란은 곧 법 집행의 방해로 간주된다. 그러나 영화사를 잠시 뒤져 보자. 극장에서의 침묵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영화사 초기, 기차가 달리는 장면을 본 관객들은 놀람을 어떻게든 감추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신체적 반응은 주위 사람들이야 어떻든 상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보기는 '소리'의 측면에서 침묵에 대한 동의를 뜻했다. 초기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있는 자신의 신체적 반응을 통해 영화 속 장면의 '사실'을 인식했다. 소스라침은 영화적 장면과 사실로서의 풍경 그 자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하나의 징표였던 것이다. 그 후 영화 관객의 침묵은 근대적 징표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근대인으로서의 문화적 기준이 세워지고, 그중 영화 보기상의 침묵 행위는 자신이 근대인이라는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잠시 점핑. 법정과 극장은 '근대적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해왔다. 그런 점에서 <부러진 화살>에서 인상깊었던 법정 내 소란 장면은 근대화라는 체제가 가진 인간이 만들어온 어떤 엄밀성을 부정하는 효과를 가진다. 법정 내 방청객이 보여주는 재판의 부조리함에 대한 적극적인 / 즉흥적인 '반응'은 영화사 초기의 '전근대적'인 영화 관객의 반응으로 간주되어온 신체적 반응(소스라침을 비롯한 이외의 표출 행위 등)과 만난다. <부러진 화살>에서  이러한 '전근대적 효과'는 '근대성'의 모순을 폭로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듯하다. .(김경호 교수는 영화 속에서 법과 수학은 문제가 분명하면 답도 분명하다며 체계의 엄밀성을 강조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외려 법이 갖고 있는 온전함/엄밀함의 이미지를 향한 비판적인 메시지로 전환되는 듯하다.)

 

 

2. 극장의 재판장화

 

이제 영화 바깥 이야기. 하지만 영화 안 이야기이기도 한. 나는 사실 이런 류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영화적인 것'을 탐문하고 싶다. 이 영화 속 내용이 얼마나 사실이고 허구냐를 가르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일까. 최근 불고 있는 '사법 권력 비판'의 테두리에서 이 영화를 계속 교과서적으로 만들려는 언론의 제스쳐를 비롯한 여러 반응은 사실 점점 '영화적인 것의 퇴보'를 재촉하고 있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좋은 작품이란 것은 한 소년이 사법 제도의 틀 속에서 죽어야 하는지, 아니면 살아야 하는지를 고심하는 '토론 내용'자체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영화적 장치였다. 밀폐된 공간을 상징하는 각 인물들의 얼굴 표정(더운 날씨에 못 견뎌 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선풍기 등. <부러진 화살>도 이런 식의 감상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극장의 안과 밖은 영화 속 재판장을 방불케 하는 것 같다. <부러진 화살>이 갖는 사회 고발의 기능도 중요할 테지만,  우리는 이제 영화를 하나의 '사회 교과서'로 삼아버리는 시대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