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어느 관리의 죽음 - ‘쿨사과’를 다르게 읽기 위한 출발

체호프의 소설 중 『어느 관리의 죽음』이란 것이 있다. 내용은 짧고 간단하다.

체르바코프라는 회계관이 오페라를 보러 갔다. 관람을 하는 중 갑자기 큰 재채기가 나왔다. 그는 창피함을 이리저리 신경쓰다가 순간 자신의 대머리를 닦고 있는 한 남자를 봤다. 그는 통신부 장관인 브리잘로프라는 노인이었다. 체르바코프는 그 노인이 다른 부서의 상관이었지만 마음에 걸려 용서를 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자리로 향했다. 체르바코프는 조용히 용서해달라는 말을 속삭였는데, 브리잘로프는 “괜찮다”라는 반응만 보였다. 순간 체르바코프는 자신이 브리잘로프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나 싶어 마음에 계속 남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전전긍긍하다가  브리잘로프가 일하는 곳에 가서 용서를 구하기로 했다. 브리잘로프가 사과를 하러 갔다.  하지만 브리잘로프는 체르바코프의 용서에 큰 화색을 보이지 않고 업무에 임했다. 체르바코프는 이 상황이 못마땅한지 계속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 했다. 브리잘로프는 체르바코프가 저지른 일에 별로 개념치 않는다는 표시를 했다가 급기야 그의 거듭된 사과에 화를 냈다. 체르바코프는 당황했고 그 후 집에 돌아와 제복도 벗지 않고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쿨하게 사과하라』(김호·정재승, 어크로스,2011)(이하 ‘쿨사과’)를 읽고 이 소설이 생각난 이유는 무엇일까. ‘쿨사과’의 시선이라면 ‘좋은 사과’에 대한 코칭(coaching)을 체르바코프에게 시도했을 것이다. “미안해”라는 말은 진정한 사과가 아닙니다. 사과에도 타이밍이 있어요. 그 사과의 시기를 잘 포착해 보세요. 당신이 브리잘로프에게 좋은 답변을 듣고 싶다면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세요. 혹시 당신은 브리잘로프에게 ‘사과같지 않은 사과’(본 책에서는 ‘비사과 사과’ / ‘유사 사과’라는 용어로 나온다)를 한 거 아닌가요. “제가 원래 오페라만 보면 알레르기가 있어서요..”로 시작하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은 사과 말이죠.
그런데 나는 여전히 ‘쿨사과’를 읽으며 이렇게까지 ‘사과의 방법’을 설명/제안하는 것은 ‘오바’라는 생각이 든다. ‘쿨사과’에 대해 다른 시각을 표하고 싶은 것이다. 

  

 

# 2. ‘이런 책’을 같게/다르게 읽기 위한 제안 (1) - 어빙 고프만의 ‘연극론적 분석’

우선, ‘쿨사과’를 다르게 읽기 위해 몇 가지 참조해 본 개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공교롭게도 이 개념들은 ‘쿨사과’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일단 ‘쿨사과’는 ‘사과’라는 행위가 의도된 연기인가 혹은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인가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런 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사과’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나의 자아를 다치지 않기 위한 / 타인의 자아를 염려하기 위한 ‘의례’라는 건 이미 공유하는 상식일 것이다. ‘쿨사과’는 여기서 ‘사과’가 경제적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언어, 특히 (기업으로 대변되는) 조직을 잘 이끌어가기 위한 ‘리더의 언어’로서 필요한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시선은 사과를 둘러싼 ‘처세술’적인 시선을 더 강조하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쿨사과’의 두 저자는 ‘진정성’과 ‘공감’을 성공적인 사과의 중요 요인으로 꼽고 있는데, 이것을 두 저자가 강조할수록 사과는 곧 이 사회라는 무대를 살아가는 당신이 일종의 ‘사회적 연기자’임을 공인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 당신은 ‘진심’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진심마저도 갖출 수 있는 연기력’도 갖춰야 된다는 주장이 성립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쿨사과’가 '사과의 방법'이란 논지를 펴면서 맞이할 수밖에 없는 비판론 중 하나일 것이다. (상당히 ‘도덕적’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말이다) 
 

‘쿨사과’가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쿨사과’의 논지를 중요하게 디자인하는 것은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견해들이다. 고프만의 복잡한 사회학적 성과들을 거칠게 요약하기는 부담스럽지만, 그는 이 사회를 연극의 한 무대로 보았다. 그리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대면하는 타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유지하도록 효율적인 표현을 구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례(ritual)’라는 사회학적 개념에 주목하면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자신이 곧 사회인입니다”라는 상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봤다. 고프만의 견해는 상당히 ‘상식적인’ 견해로 오늘날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 견해에 비판을 가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굴드너는 고프만의 ‘연극론적 분석’이 중산계층의 생활만을 옹호하는 사회학이며, 인간의 행위를 이해타산적인 차원에서만 한정하여 취급하는 “영혼을 팔아먹는 사회학”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굴드너의 이런 비판은 과한 측면도 있다. 굴드너가 “이해 타산적”이라고 몰아붙인 고프만의 ‘연극학적 분석론’이 권력의 정치술을 깊이 읽어내고 비판할 수 있는 용도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쿨사과’가 올바르지 않는 사과법을 예시로 드는 경우, 정치지도자나 기업 총수의 사과 등 권력층의 잘못된 정치 행위가 그 사례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쿨사과’는 올바른 사과법을 학습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나오고 나서도 여전히 지속될 권력층의 올바르지 않은 사과법을 짚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후자의 측면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능성을 짚어가면서 읽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 3. ‘이런 책’을 이제 다르게 읽기 위한 제안 (2) - ‘쿨’(COOL)의 의미를 짚어보기

‘쿨사과’를 정치적으로 읽는 방식은 ‘쿨’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다. ‘쿨사과’의 제목을 다시 한 번 펼쳐보자. ‘쿨하게 사과하라’다. 그런데 본 책에서는 ‘사과하라’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나와 있지만 ‘쿨하게’에 대해서는 세심한 논의가 없다. ‘사과하라’ 자체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면서 두 저자들은 ‘어떻게’ 사과하라는 방식을 고안해냈지만, ‘어떻게’ =‘쿨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쿨하게’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일단 두 저자들은 ‘쿨’을 단순히 ‘초연한 감정’ 등으로 규정한 것 같다. 여기서 ‘쿨’은 경영학이나 요새 각광받는 ‘PR컴’쪽이 강조하는 기업의 위기 대처 능력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제시된다. 여기서 전제가 되는 것은 기업의 본질은 ‘이윤 창출’이며, 그것을 위해 기업의 ‘경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영 합리성’을 최대한 고수하는 인지적인 태도가 바로 ‘쿨’이란 점이다. 이것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기 위해 나는 ‘쿨’의 의미를 둘러싼 몇 가지 과정을 거쳤다. 

 

3-1.  성공적인 '쿨한 사과'는 결국 또 다른 권력의 유지 수단이 아닐까

 

먼저 ‘쿨사과’가 건드리는 기업과 쿨의 관계를 ‘감정사회학’의 차원으로 읽어보는 것이 필요했다. 이는 기업의 행위를 합리성/효율성에서만 읽어내는 것을 거부한다. 감정사회학자들은 기업의 행위를 분석해보니 기업이란 곳이 상당히 감정적이란 곳임을 알았다. 이런 주장들은 사실 그렇게 무겁게 받아들일 것만은 아니다(우리가 이미 일상에서 체험한 부분들을 잘 정리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기업 내 구성원들이 감정의 차고 넘침을 조절/자제하길 원한다는 전제가 이 논의에 깔려 있다. 감정사회학자 헬레나 플람은 ‘경영합리성의 신화’가 기업의 대표적인 감정을 만들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러한 경영합리성이 기업 내 구성원들의 감정을 관리하고 그로 인해 구성원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그들만의 감정 소비 / 해소 방식을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주목하는 건 구성원들의 감정 소비 / 해소 방식이다.   

  우선 ‘쿨사과’가 제시하는 ‘훌륭한 사과’라는 모델은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이미지 신장을 위한 수단으로 자주 제시된다는 점부터 짚어보자. 그리고 그 이미지 신장에는 그 조직을 관할하는 리더 /경영자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불만이 생긴다. 결국 ‘쿨하게’라는 것도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부분이라면, 그 보여짐이 멋지게 보여지는 결정의 여부가 저자들이 제시하는 ‘쿨’을 구성하는 멋진 몇 개의 사과 방식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쉽게 말해서 쿨하게 사과하는 것도 이미 그 쿨을 멋지게 보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부여된 특권이 아닌가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쿨사과’의 논지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들이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쿨하지 못한 사과’를 한 사람들이 결국 ‘성공적으로’ ‘쿨하게’ 사과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견해는 지나친 '계급결정론'이 아닌가라는 한계도 있다. 몇 년 전, 강준만은 쿨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쿨'의 용법엔 '계급'을 '문화' '취향'으로 바꾼 혐의가 스며있다. 누군들 촌스럽고 싶어서 촌스럽겠는가? '쿨'하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하다. 돈이 필요하다.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믿는 구석'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쿨'할 수 있다. "너 돈 없구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너 '쿨'하지 않구나"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처럼 '계급'을 '문화' '취향'으로 바꿔 말하는 건 우리 시대의 예법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계급결정론'도 경계해야 한다. '쿨'엔 계급만으론 다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7쪽). - 강준만,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쿨에너지』(인물과사상사, 2007) -

강준만이 말하는 쿨과 '쿨사과'에서 비판적으로 읽어볼 수 있는 개념으로의 쿨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강준만의 주장처럼 '쿨'이 계급의 의미에서 문화적 의미로 넘어갔다고 해서 '계급의 의미'가 온전히 사라졌다고 보기엔 어렵다. '쿨함'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평가받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쿨'은 보임의 과정을 통해 누군가를 미안하게 만들고 주눅들게 만들며 이를 통한 권력 관계가 양상될 가능성도 늘 갖고 있다. 혹은 그런 쿨함을 보임으로써 훼손된 자신의 권력을 회복하는 기능을 할 여지도 있다. 나는 묻는다. '쿨사과'가 제시하는 성공적인 쿨한 사과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볼 수 있는 방식이 되는가. 이것은 또 다른 권력의 유지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은 없는가.   

  

 

 

 

 

 

 

 

 

 3 -2. 우리 안의 '체르바코프'를 구해야 한다 

감정사회학자 헬레나 플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녀의 견해에 주목하는 건 기업과 기업의 대표자가 주도하는 기업 내 감정관리를 통해 불가피하게 억압받고 있는 많은 '피고용자'의 입장이다. 쿨한 사과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적은 입장을 따져보는 것.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쿨사과'를 비판적으로 읽고 싶은 요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 안의 '체르바코프'를 구해야 한다. '쿨한 사과'는 권력과의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릇된 권력 자체를 깨진 못한다. '쿨한 사과'는 여전히 그 권력의 잔존을 허용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 고로 권력자는 쿨한 사과를 할 수록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지만, 피권력자는 그것을 함으로써 얻는 감정의 이윤이 권력자보다 많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때문에 피권력자는 체르바코프처럼  사과라는 행위에 쩔쩔 매며, 그것이 제대로 된 효과를 얻지 못할 경우 정신 착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사회가 '쿨한 사과'의 대표상을 보고 환호하며 즐기길 원하지만, 권력이 없다고 간주된 일반인들의 '쿨한 사과'에는 별 매력을 못 느낀다는 점이다. 사과가 루저의 언어에서 21세기 리더의 언어로 부상하리라는 저자들의 의견이 거북한 것은 사과를 둘러싼 승자/패자의 구도 자체를 설정한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이미 많은 신경증적 외상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세심히 짚으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쿨한 사과'가 때론 자신이 성공적인 '쿨한 사과'를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겐 배신의 언어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내가 '쿨사과'를 쿨하지 못하게 읽은 이유이다.  

 

아직은 덜 여문 이야기. 생각은 각자의 몫으로.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그레이효과 2011-05-0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재승 교수님이 이 서평에 대해 깊이있고 신선한 시각이라고 내 트윗에 글을 남겨주셨는데, 갑자기 내가 '쿨하지'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기분 뭐지. 켁.

김호 2011-05-1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정재승 교수님과 함께 이 책을 쓴 김호입니다. 제가 본 여러 서평 중 가장 깊이있고, '쿨한' 서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쿨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저도 쿨하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중이고, 이를 파악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작업중에 있습니다. 지난 3년 이상을 붙잡고 있으면서 제게는 너무나 익숙한 책 '쿨하게 사과하라'를 낮설게 만들어주셔서 제게는 선생님의 서평이 쿨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11 01:21   좋아요 0 | URL
앗. 선생님도 들려주셨군요. 이렇게 써볼 수 있었던 것은 또 선생님과 정재승 선생님이 흥미롭게 책을 써주신 덕분때문이랍니다. '사과'라는 키워드로 논문들을 뒤져보니 흥미로운 분석들이 많더군요. 몇달 전에 저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학생인데..PR컴이라는 세계가 이런 곳이었구나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전에 번역하신 책 <쏘리 워크스>도 읽으려고 챙겨두었습니다. 읽고 또 좋은 생각들 나누길 고대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