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 - 우리 시대의 몇 가지 우스꽝스러움과 독재에 대한 고찰
앙드레 콩트 스퐁빌 지음, 이현웅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8월
품절


윤리와 정치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이고, 그 둘은 모두 필요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그것들이 각각 갖는 본질적인 것들을 위험에 빠뜨리며 그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다. 우리는 그 두 가지가 필요하지만, 그 둘의 차이도 필요하다! 우리는 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윤리가 필요하고,그리고 윤리로 환원되지 않는 정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내가 윤리의 복귀를 고찰하기 위해 내놓는 이 첫 번째 설명은 한 세대에서 다른 한 세대로, 즉 정치가 가장 우선인 세대(68세대)에서 윤리가 가장 우선인 세대('윤리의 세대', 또한, 역설적이긴 하지만, '미테랑세대')로 이행한 과정에 대한 실증적,객관적 관찰로도 바꾸어 묘사할 수 있다.-29쪽

그런데 이 이행은 근본적으로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중대한 위기가 생겨난다는 징후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공동운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이것이 정치의 진정한 기능이다-하려는 감정을 차츰 잃어갈수록, 그들은 윤리적 가치들의 영향력 아래 폐쇄된 채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내게 이 첫 번째 설명은 근본적으로 중의성을 띠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우리는 젊은이들이 윤리적 혹은 인도주의적 실천으로 복귀한다는 사실에 물론 기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런 복귀의 과정이 고유하게 정치적인 모든 영역을 희생하며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0쪽

내가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는 가장 위협하는 건 내가 '보편화된 무관심'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 즉, 무엇에 대해서건 연대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우리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작은(51) 사적 영역만을 무한정 개발할 수밖에 없을 만큼, 사회적 연결이 순전하고 명백하게 해체된 현상-사회학자들이 개인주의의 승리라고 부르는 현상, 혹은 우리 프랑스의 사회학자들이 익숙해진 영어식 프랑스어로 표현한다면, 커쿠닝cocooning이다-51쪽

(각주 22) 나는 여기서 보다 빠른 시간 안에 중요한 사항을 언급하기 위해, 일종의 "임시적 칸트주의"에 의지했을 따름이다.(중략)칸트는 윤리에 관하여, 적어도 현상학적으로는 옳다. 그는 윤리를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우리가 그것을 실천하거나,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 그러니까 주관적으로 그린다.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각자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뤄지는 행위(예를 들어 보상을 바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는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고유하게 윤리적인 가치를 상실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공리주의를 끝까지 실천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누구도 윤리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효용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반박할 수 없다. 그러나 윤리는 이러한 효용성으로 환원되지 않을 때만 고유하게 윤리적인 것이 된다.-61쪽

신문이나 세미나들에서 일상적으로 기업윤리라고 말하는 것이 이런 상인의 행위를 실천하는 기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행위가 보통 윤리의 요구사항에 일치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지만,그것은 어떤 윤리적 가치도 갖고 있지 않다.(중략)그런데 윤리가 이윤의 원천이라면, 그 이윤을 창출하는 일에서 윤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이윤을 창출하는 일은 경영의 영역, 마케팅의 영역, 관리의 영역에 속하지, 더 이상 윤리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는다.-65쪽

윤리란 우리가 해야 할 일로 간주하는 것 모두를 가리킨다. 달리 말해, 우리가 선험적으로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만이 아니라(이 점에서는 칸트와 대조된다)우리가 모든 보상이나 처벌, 심지어는 모든 바람과 관계없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모두를 가리킨다. 윤리는 한 양심에게 무조건적으로 의미 있거나 강제되는 것(92) 모두를 가리킨다.-92,93쪽

윤리적으로 된다는 것은 자신의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윤리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94쪽

정치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된다면,윤리는 정치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거나, 혹은 정치가 자신의 영혼이나 양심을 달래는 데 사용하는 보조물에 지나지 않는다.-153쪽

기업의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기업 내에 윤리가 존재해야 한다. (중략)나는 조금 전에 "여러분 대신에 시장이 윤리적으로 되기를 기대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또 나는 다음과 같이 덧붙일 것이다. "여러분 대신에 회사가 윤리적으로 되기를 기대하지 말라."-176쪽

이타성과 연대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타성이 이기주의에 반대되는 것이라면,연대는 사회적 효용성을 위해 지적인 방식으로 이타성을 조정한 것이다. 사람들이 시대에 뒤진 언어로 보이는 '이타성'이라는 표현을 더(183)이상 사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거의 항상 입에 담고 다니는 말이 '연대'인데(그런데 오늘날에 정치적으로는 이 말이 적합하다),우리는 이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한 나머지 두 단어의 개념을 혼동해서('윤리의 세대'와 비슷하게)'연대'라는 말을 '다른 사람들을 향해 갖는 선의의 감정'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연대'라는 말의 내용,기능성,효과를 무시한다. -183,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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