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날 때마다 영화감상 / 세상일 간접경험 '기쁨' 남미숙 (약사 - 나의 여가). 한겨레.1994.6.3.13면. 

나는 시간만 나면 영화를 본다. 아니 그보다는 영화를 보기 위해 시간을 쪼갠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사람 사이에 부대끼고 힘들 때는 혼자 영화관을 찾는다. 물론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날 때도 영화를 함께 보자는 제의를 많이 한다. 소규모 영화상영 클럽이나 비디오방도 토막시간에는 자주 찾는 편이다. 내가 영화보는 것을 취미로 갖게 된 것은 영화광인 친구 덕분이다. 그 친구는 체력이 허용하는 한 하루에도 몇편씩 영화를 볼 뿐 아니라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은 너댓번을 보고도 양이 차지 않아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지니고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다. 이 친구에 끌려다니며 '세뇌' 당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 것이다. 요즘은 잡지를 보거나 서점에 들러도 영화관련 코너를 먼저 돌아보게 된다.  

막동이 시나리오 당선작 제노사이드 쓴 안재훈 씨. 한겨레.1994.6.1.16면.   

"처음 타란티노를 알게 됐을 때, 친구 하나가 그러더라고요. 야, 너랑 똑같은 자가 또 있구나." 제1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 (제노사이드)의 안재훈(25)씨가 타란티노처럼 비디오가게 점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곳은 타란티노에게 그랬듯, 안재훈씨에게도 학교였다. "이름난 영화 찾아다니며 보는 영화광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 있나요? 비디오 가게만 가도 가슴이 뛰는데요. 장르 가리지 않고 아무 영화나 좋아해요." 

예체능계 남자수석 소영준군. 한국일보.1996.12.6.38면. 

소군은 입시공부에 매달리면서도 한달에 한번은 꼭 영화를 보러 갔고 토요일 하오 등 여유가 있을 때는 반드시 비디오로 영화 감상을 했다며 스스로 영화광이라고 말했다. 영화학과가 설치된 대학을 지원할 생각이다. 

일 까지 찾아가 관람 '영화광'.문화일보.1997.9.24.24면. 

서른 세살의 독신남 김재용(서울 구로구 독산동)씨. 평범한 회사원인 그는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한 두 편의 비디오와 케이블영화를 보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일본 위성방송의 영화까지 놓치지 않는 영화광이다. 특히 일본영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이번 여름휴가도 도쿄로 갔다 왔다. 

여고 3년생 김현정(경기도 분당시 야탑동) 양. 반에서 1,2등을 다투고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라는 뜻의 '범생이'로 불리는 평범한 여학생이지만, 입시 스트레스를 영화로 푸는 영화광이다. 할리우드영화는 시시해서 안보고 유럽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영화잡지를 정기구독하며 가끔씩 친구들과 토론회를 갖는다.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진학은 영화와 무관한 학과를 택할 예정이지만 언젠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외국의 난해한 아트영화들에는 관객이 들지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같은 실험성 높은 우리 영화는 외면당하는 풍토도 서구 우월주의나 명성에 집착하는 영화보기 풍토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케이블 영화채널 캐치원 주최의 제1회 공포영화제를 기획했던 송혁 과장(캐치원 마케팅팀)은 "계보를 줄줄 외우는 등 영화보기를 지적 과시의 대상으로 착각하는 사이비 마니아들도 있다"고 말한다. 

소설가 이제하씨.이 세기의 인물탐구 27. 서울신문.1993.5.5.11면. 

 군제대후 조각과를 4학년 1학기에서 그만두고 서양화과 3학년에 편입, 그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델보를 비롯, 뭉크와 스텡 프란시스 베어컨에 빠져있었고 영화에 대해서는 한때 소형영화클럽을 만들만큼 영화광. 요즘도 시간이 날때마다 청계천에 들려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해온다. 비디오테이프만 8백여개. 좋아하는 작품은 소련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를 꼽고 있다.  

예술인의 고민 / 윤대녕 소설가. 서울신문.1994.12.27.12면

오랫동안 귀로 들어오던 레오 카락스의 영화 <나쁜 피>를 보았다. 영화 비평가가 아니므로 주제넘은 소리를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 나는 예술, 대중, 권력이라는 해묵은 자기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다. 90년대 들어 폭발적인 문화수요가 일어나면서 이른바 매니아 집단들이 형성되고 있다. 영화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컴퓨터 통신을 통한 동호인 모임이 있는가하면 미개봉 필름만 상영하는 소수 단체도 있는 모양이다. 쉽게 말하면 일반대중의 문화감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얘기다.'나쁜 피'는 말하자면 개봉되기 오래전부터 매니아 집단 사이에서 돌려보곤 하던 그런 영화 중의 하나다. 

(중략)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의 표정은 대개가 석연치가 못하다. 난해하다는 뜻일 것이다.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예술 장르라는 영화가, 거꾸로 가장 예술적이라는 상업적 용어로 포장돼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예술 이데아 품목의 필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비디오 함께 봅시다. 한겨레.1992.3.13.21면. 

요즘 도시인들의 새로운 여가풍속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방콕파'란 유행어가 있다. 휴가 때나 쉬는 날 무얼하느냐는 물음에 혼자 편히 감상할 수 있는 매력에 흠뻑 빠진 '비디오광'가운데 상당수는 날마다 한편이라도 안 보면 잠을 잘 수 없는 '비디오 중독증'의 경지에 이르러 생활의 리듬을 잃기도 한다.  

김성곤 교수의 영화 에세이. 박덕규의 책읽기.국민일보.1994.9.9.10면.  

영화 얘기만 나오면 주인공 인적 사항에 영화감독의 다양한 경력에 영화 유파까지 얹어 소감을 피력하는 비디오광들을 자주 만난다. 영화라면 나도 논리적인 감상문을 늘어놓을 수는 있지만, 이 비디오광들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우선은 그들의 시청량을 못 따르기 때문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먄 그들이 그 폭넓은 시청량을 무기삼아 나처럼 일상적인 차원의 영화팬들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설명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독자공동체의 길잡이.김영진의 <미지의 명감독>.씨네21.1997.11.4-11. 82쪽.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다. 언론에서 부추겨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데이비드 린치와 타르코프스키는 다들 보러가면서 미클로시 얀초나 프리드릭 소 프리드릭슨의 걸작은 왜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일까?  혹시 우리의 영화문화는 블록버스터건 예술영화건 유행만 따라가고, 우리의 영화광은 영화를 '지적 과시'의 무기로만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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