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무엇인가?
앙드레 바쟁 지음, 박상규 옮김 / 시각과언어 / 1998년 7월
구판절판


유명한 미이라 콤플렉스 비유가 나오는 앙드레 바쟁의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 중 일부를 옮겨본다. / 조형예술에 대한 정신분석을 해본다면 시체의 방부보존 관습이 조형예술 발생의 기본요인이 되는 것으로 생산될 수가 있다. 회화와 조각의 기원에는 미이라 콤플렉스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었을 것이다. 이집트 종교는 인간심리의 기본적인 욕구, 즉 시간의 흐름에 대한 방어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죽음은 시간의 승리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인간의 육신의 외관을 인위적으로 보존하는 것은 말하자면 지속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그것을 떼어내는 것, 곧 그것을 생명권 내에 안치시키는 일이다.그러니까 죽음이라고 하는 현실 자체에 직면하여 그의 살과 뼈를 보존함으로써 이러한 외관을 지속시킨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3쪽

초상화(영상)의 제작은 온갖 인간중심적인 공리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이다. 더 이상 인간 사후의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를 않고 좀더 일반적으로,그것 자체로서 자율적으로 지상적인 운명을 띠고 있는 현실의 모습은 근사한 어떤 이상적인 우주의 창조 그것이 문제로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만일 우리가 회화작품에 대한 인간의 더할 수 없는 찬탄 밑에서, 외형의 영속성을 통해 시간을 이겨낸다고 하는 이 원초적 욕구가 가려져 있음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회화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만일 조형예술의 역사가 단지 그 미학의 역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심리학의 역사라고 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유사성의 역사,(혹 이렇게 불리기를 원한다면) 리얼리즘의 역사라고 해도 좋다.(14) 이렇게 사회학적 시야에서 본 사진과 영화는 지난 세기 중엽에 발생한 근대회화의 정신적, 기술적인 중대 위기를 매우 자연스럽게 설명해줄 것이다. -14,15쪽

인간의 손이 개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화상 위에 어떤 의혹의 그림자를 던지게 한다. 실제로 바로크 회화로부터 사진으로의 이행에 있어 본질적인 현상은(모방의)단순한 물리적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색채의 모방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사진은 오랫동안 회화보다 열등한 채로 남을 것이다).(사진이)인간을 배제한 기계적인 재현이라는 것에 의해 우리의 착각에의 욕구가 완전히 만족되어진다고 하는,하나의 심(17)리적 사실에 있는 것이다.-17,18쪽

양식과의 모델에의 유사성과의 사이의 갈등이 비교적 근대적 현상이어서, 사진건판의 발명 이전에는 그 갈등의 흔적이란 거의 발견되지를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샤르댕의 그 매력적인 관객성이 사진과의 객관성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피카소를 오늘날 신화가 되게 하고 조형예술의 형식적 존재성을 규정하는 여러 조건과 동시에 이것들의 사회학적 기반을 모두 의문에 부치게 한 리얼리즘의 위기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바로 19세기이다. 유사성의 콤플렉스에서 해방된 근대 화가는 그것을 대중의 손에 넘겨주었고 대중은 그 때부터 유사성을 한편에선 사진과,또 한편에선 오로지 사실에만 전념하는 류의 회화와 동일시하려고 했다. -18쪽

사진가의 개성은 피사체의 선택, 그것은 어떤 각도에서 잡는가, 또 그 사상의 교시능력이 어느 만큼 있는가 하는 데 의해서만 작동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 개성이 최후의 작품에 눈에 뛸 만치 반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화가의 개성과 똑같은 자격으로 거기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예술은 인간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성립하는 바, 오직 사진에서만이 우리는 인간의 부재를 향유할 수가 있는 것이다. -19쪽

회화는 동시에 더 이상 유사성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사진보다 열등한 기법의 하나, 몇 가지 재현방법의 대용수단ersatz의 하나에 불과하다.우리의 무의식의 저 근저에는 사물에 대하여 그것을 대강 전사한것이 아닌, 그 사물 자체의, 그러나 일시적인 우연성으로부터 해방된 그 사물 자체를 좀더 완전하게 무언가에 의해 대체시켜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바, 이러한 욕구를 충분히 발산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사물의 화상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사진 렌즈밖에 없다. 사진의 영상도 핀트가 안맞았거나 형이 왜곡되었거나 혹은 색이 변해 자료적 가치가 없다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생겨나게 된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모델의 본체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곧 모델 그 자체인 것이다. 앨범 사진의 매력은 거기에서 유래한다.-20쪽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유령 같은 회색 또는 갈색의 저 그림자들, 그것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가족 초상화가 아니다.그것은 예술의 마술적인 효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정한 기계장치의 효과에 의해 자신의 시간 속에 정지되어서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와진 생명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현존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진은 예술처럼 영원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 방부처리를 행하여 다만 시간을 그 자신의 부패로부터 지킬 뿐이기 때문이다. -20쪽

초현실주의는 그 조형상의 번태론을 창출키 위해 사진건판의 젤러틴 감광막에 도움을 구했을 때 이미 그같은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에게는 미학적 목표가 우리의 정신에 대한 영상의 기계적인 효과와 분리될 수 없음이 이런 까닭에서이다. 상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사이의 논리적인 구별은 초현실주의가 출현한 이래 사라져가는 경향이 있다. 모든 영상은 사물로 느껴지고 모든 사물은 영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중략)해방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성이기도 한 사진은 서양회화가 사실에의 집념을 결정적으로 떨어버리고 그 미학적인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게했던 것이다. -23쪽

<완전영화의 신화>중 일부를 옮겨본다 / 영화는 관념론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갖는 관념은 영화가 실현하기 이전부터 그들의 두뇌 속에서 순전히 이념적인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지극히 확고하게 존재했던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기술이 탐구자들의 상상력에 준 시사보다도 관념에 대한 물질의 강인한 저항 쪽에 있다. 더구나 영화는 과학적 정신의 도움을 거의 받은 바가 없다.-25쪽

영화는 산업상의 발견에 거의 항상 선행하여 존재하는 관념이 대략 근사하게 그리고 복잡화한 형으로 실현시킨 것에 다름 아니요. 산업상의 발견은 그런 관념을 실제로 적용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여 영화가 그 가장 초보적인 형태에서조차 투명하고 유연하며 내구력이 있는 지지체와 순간적인 상을 포착할 수 있는 건조한 감광유제를(그밖의 것이라곤 18세기의 시계보다도 훨씬 구조가 간단한 기계장치였을 뿐이다)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영(26)화의 발명에 이르는 결정적인 단계들은 모두가 그같은 필요조건이 충족되기 이전에 벌써 도달되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26쪽

영화가 스스로에게 첨가해가는 온갖 개량은 모두가,역설적으로 말하면, 영화를 그 기원에로 근접케 하는 것일 따름이다.요컨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인 발견들이나 산업적인 기술들은 영화의 발전에 있어 대단히 큰 위치를 차지하고는 있으나 그것들을 영화 발명의 제일 원인으로서 위치시킴은 적어도 심리학적인 견지에 서서 보면 인과관계의 구체적인 순서를 뒤집는 일이 될 것이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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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9 0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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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30 0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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