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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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의 비극 또는 시간낭비의 불가능>중 일부를 옮겨본다 / 이 자유시간의 질, 리듬, 내용 등 - 자유시간이 노동이라고 하는 강제 후의 잔여의 시간이든 아니면 '자율적인' 시간이든 -모든 것이 또 다시 개인간의,사회범주간의, 사회계급간의 차이표시기호가 되고 있다. -228쪽

어쨌든 대부분의 사물은 이론적으로는 교환가치와 분리할 수 있는 일정한 사용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시간은 어떠한가? 어떤 객관적 기능이나 특수한 용도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시간의 사용가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시간에 그 사용가치를 되돌려주는 것,시간을 비어 있는 차원으로 해방시켜서 개인의 자유로 가득 채우는 것이야말로 '자유'시간의 근저에 있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체계에서 시간은 사물로서,즉 각 사람이 '의향에 따라서' 투자해야 하는 해,시,일,주 등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시간적 자본으로서만 '해방'될 수 있다.시간은 계량된다고 하는 점에서 생산체계의 추상성이라고 하는 완전한 추상성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진정으로 '자유로울'수 없다. -230쪽

소유되고 소비되는 하나하나의 사물에서와 같이, 자유시간의 일분 일분 속에서도 각각의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거나 아니면 만족시켰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소유된 사물 및 실현된 충족 속에도, '자유롭게 처분하는' 시간 속에도 욕망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또 존재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곳에 있는 것은 '소비'된 욕망의 잔재에 불과하다.-231쪽

시간이 사물인 것과 똑같이, 모든 생산물은 결정화된 시간으로 간주(232)될 수 있다(그것들의 상품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기술혁신에 의해 생산된 상품이 사용자의 시간을 '절약해'주어, 이 절약이 구매대상이 되는 한에서는 여가시간의 결정이기도 한 것이다. 주부에게 있어서 전기세탁기는 자유시간을 의미한다. 그것은 매매될 수 있도록 사물로 변형된 잠재적 자유시간이다(이 자유시간을 주부는 텔레비전을 보는 데 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전기세탁기의 선전을 보는 데 쓸지도 모른다!)-232,233쪽

교환가치 및 생산력으로서의 시간의 이러한 법칙은 여가 전체에 침투한다. 여가만이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모든 강제와 구속으로부터 기적적으로 벗어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생산체계의 법칙은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 법칙은 계속해서 또 어디에서나(도로에서든,해수욕장에서든,클럽에서든) 시간을 생산력으로서 재생산한다.시간을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으로 분할하고 후자를 자유의 초월적 공간의 시작으로 삼는 피상적인 견해는 신화에 불과하다.-233쪽

시간을 여봐란 듯이 헛되이 보내는 경우에도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캉스라고 하는 자유시간은 여전히 휴가를 얻은 자의 사유재산이며, 1년간 땀을 흘려서 얻은 하나의 재이다. -234쪽

따라서 여가와 바캉스에서,노동의 영역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은 목적달성에서의 도덕적,이상주의적 집념,즉 강제의 윤리를 볼 수 있다. 여가는 완전히 소비의 일부이지만,소비와 똑같이 충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충족을 위한 행위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햇볕에 살을 그을리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탈리아와 에스파냐로의 관광여행 및 각지의 미술관 순례, 의무적이 된 해변에서의 일광욕 및 체조, 특히 피곤(236)한 줄 모르는 '미소'와 '사는 즐거움' 등은 모두 사람들이 의무와 희생 그리고 금욕의 원칙에 맹종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다. 이것이 리스먼이 말하는 '오락 도덕'이며, 여가와 쾌락 속에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순수하게 윤리적인 차원-다른 목적달성의 기준에 따라서 자신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모르되 -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면죄될 수 없는 차원이다. -236쪽

오늘날에도 평균적인 인간이 바캉스 및 자유시간을 통해서 요구하는 것은 '자기실현의 자유'(어떠한 자기를 실현하고, 어떤 숨겨진 본질을 나타낸다는 것인가?)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용성, 즉 흥청망청 쓸 수 있는 자본(부라고 해도 좋다)으로서의 여분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유를 그는 우선 요구하는 것이다. 여가의 시간은 소비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극히 중요한 사회적 시간이 된다. -240쪽

여가의 근본적인 의의는 노동시간과의 차이를 나타내라고 하는 강제이다. 따라서 여가는 자율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시간의 부재에 의해 규정된다. 여가의 본질적 가치를 만드는 이 차이는 도처에서 그 내포된 의미가 나타나고 있으며, 과장되고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 여가의 모든 기호,(241)태도,실천 속에서, 또한 여가가 화제가 되는 모든 언설에서 여가는 그러한 과시와 끊임없는 과장으로 살아가며, 자기선전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다. 여가에서 모든 것을 탈취할 수 있는데, 이 사실만은 삭제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여가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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