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가장 큰 걱정은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내가 장례식을 잘 리드할 수 있을까?이다. 아버지는 늘 내가 생활점수가 떨어진다고 핀잔을 주셨다. 나는 어린 시절 형광등을 가는 법부터 라면을 끓이는 법까지. '책만 읽고, 생활력이 떨어지는 아들놈'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아버지로부터 하나,하나 배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삼양라면을 혼자 끓여 먹고 나서, 대충 물로 씻어놓은 냄비를 보신 아버지가  나를 기특해 하셨을 때, 그 쾌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 스물 아홉살이 되어도, 여전히 효도다운 효도 하나 못해 드리고, 돈을 타 쓰는 아들놈이라는 이미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 청년들의 이미지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미지가 개인화되었을 때 다가오는 아픔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당당함'과, '비경제인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기죽음'이라는 뒤섞임 속에서 강화된다. 연달아 우수한 회사에 취업한 연구 동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내가 잡고 있는 졸업 논문의 한 자, 한 자에 대해 담겨진 애정이 하루하루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 할 때가 바로 내 현실이라는 건 감출 수 없을 듯하다. 

몇 년 째, 집에 내려가지 않는 이유엔, 그냥 공부하느라 바빠서,라는 진부한 핑계보다는 내 스스로가 집에 내려갔을 때 여전히 나를 따스하게 받아주실 그 가정의 이미지가 나를 어린 시절의 온기로 뒤덮어, 그냥 멈추게 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 느낌을 인정한 건 최근이었다. 그래서 이 온기가 유지되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이 온기의 힘이 나를 이 삶의 생존자로 유지해주겠지,라는 '습관적 희망'에 기대게 할 때, 정작 그 온기의 멈춤. 그것을 보여줄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을 가끔 꿈에서 마주치게 되고, 나는 깨어나서, 서랍에 들어있는 통장 몇 개와 잔액을 새삼스럽게 확인해본다. 

이 생을 실감난 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결국 '돈'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장례식'이라는 죽음의 의례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건, 내 스스로에게 시사적이고, 뭔가 사회적으로 말하고 싶게 만드는 상징성이다. 그것이 꿈이라는 내 '형식의 장치'라 하더라도, 그것이 형식이기 때문에 실재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건, 내 스스로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마는 것이리라. 오히려 그것이 형식이며, 그 형식이 꿈은 결국 환상 아니겠니?, 현실은 다를거야.라고 선언하는 순간, 닥치는 삶 그 자체의 불확실함, 그리고 우연은 (과장을 보태어) 영혼을 잠식한다. 

며칠 전, 홍상수의 영화를 보러 광화문에 갔다가, (때마침 내가 광화문에 도착한 시간은 점심시간 30분 전) 사원증을 걸고 오늘은 어떤 점심을 먹을까 웃으며 건물을 나오는 사람들을 쳐다봤을 때, 그리고 그 쳐다봄을 통해 문득 생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소모한 에너지를 충전할 데가 없다는 적막감으로 하루앓이를 할 때 쯤. 나의 치열함이 결국 책의 운명과 논문으로 가게 된 (어쩔 수 없는 이 순간) 이 시간에 내가 그 어떤 말도 없이 그냥 '하고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나오는 꿈 속에서도, 현실에서 내가 만지고 있는 책과 논문에서도, 내가 마음 속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다가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저 직장인의 건물에서도 내가 없는 시간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이 삶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정성일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이 사회를 둘러싼 무자비와 무능력.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말 자체에 대해 결국 힘내자,라는 말밖에 건네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밉고 또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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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7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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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8 0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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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9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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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4 1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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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1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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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4 1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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