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geekculture.com/joyoftech/joyarchives/301_999/692flash.html  

검정색 하프 터틀넥, 리바이스 청바지, 뉴밸런스 운동화.  스티브 잡스의 패션이다.  이 갑부가 이런 단촐한 옷을 왜 입는지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어떤 익살스러운 사이트는, 스티브 잡스의 옷을 입혀주는 게임까지 만들었다. 그래서 누가 가장 스티브 잡스에게 새로운 옷을 잘 입혔는지 컨테스트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패션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패션을 숭배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숭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장근석의 '스티브 잡스 따라하기'는 우리 시대의 한 징후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 기업가를 흉내내는 것은 그동안 고작해야 성대 모사 정도였을 것이다. (당신은 정주영 흉내를 내는 코미디언 최병서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왜 이렇게 일관된 패션을 유지하려 하는지, 사람들의 궁금증이 여기저기 인터넷에 흔적으로 나타난다. 최근 기사들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검정색 하프 터틀넥을 특별히 집착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는 일본의 한 유명 디자이너의 터틀넥만을 몇 백벌 갖고 있는데, 더 주문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그 디자이너 측에 주문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잡스의 부탁에 의해 그 디자이너 측이 정확한 촉감과 재질을 요구하는 잡스때문에 미국의 잡스 집에 들려 주문 내용을 체크했다는 일화였다.  

어쩌면 그렇게 놀라울 만한 일화는 아니지만, '이름값 효과'는 잡스의 신화화를 촉진한다.   비범함의 자장 안에서 평범함은 비범함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평범함은 사람들로부터 환호의 대상이 될만한 자리에 앉는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경제적 질서 안에서, 경제 자본을 위시한 고도의 자본 소유가들이 뽐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건, 그들이 언제든지 '가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자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삶, 혹은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흉내낼 수 있고, (중요한 건) 다시 자신의 삶을 원상복구 할 수 있다는 것.(그리고 그런 환경이 이미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삶의 모험을 걸 수 있는 안전망도 된다) 고로 부자들이 명풍 백화점에 진열된 에르메스의 천만원 단위 백을 어께에 메는 그런 장면으로 묘사되는 우리 시대의 드라마는 다 '후지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부자를 잘 묘사해보고 싶다면, 작가들은 부자들이 '가난과 부의 이동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깊숙히 파고들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방영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는 <언더커버 보스>는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흥미로움을 준다. 회장님이 몰래 말단 직원들이 있는 곳으로 잠입해서, '암행어사 놀이'를 한 후에 자신의 고해성사를 직원들 앞에서 하고, 칭송을 받는 과정. 그 안에서 우리는 '감동'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감동의 이면' 또한 조용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야, 저거 다 쇼야 쇼.."란 수준의 사고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빈자들의 적대가 주목하는 대상은 '부유한 자'가 아닐지 모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난한 자신이 얼마든지 될 수 있지만, 그래서 그런 자신의 처지와 함께 어떤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들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현실'이다.  

부자는 '부자라서' 부자가 아니라, 부자는 '빈자도 될 수 있는' 부자라서 부자이다. (부자들에게 빈티지는 라이프스타일이지만, 빈자들에게는 자신의 삶, 그 자체의 표상인 것을)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09-08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9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8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9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헤는밤 2010-09-26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르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까만진주씨 http://blackpearls.tistory.com

얼그레이효과 2010-09-27 10:5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