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20대 필자론'에 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거기에 속하고 싶은 마음에, 이리저리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보고, 지식인들의 동네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 '20대'의 영역에 들고 싶다는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무엇보다 20대를 잘 대변해야 하는, '강(强)-20대'여야 함을 의미했으며, 그 누구보다 '20대 티'를 내지 않는 '비(非)-20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부딪혀온 경험으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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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프레시안 북 웹진에 실린 노정태 군의 서평을 보면서(사실 그건 서평이란 형식을 빌린, 20대 필자론에 대한 그의 비판으로도 더 강하게 읽혔다), 어떤 공감가는 대목들이 있었다. (그 서평을 읽으면서)그리고 이제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내 위치에서, 그동안 해왔던 일들,그리고 시도해봤던 경험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물론,이건 2학년 9반이 3학년 0반으로 진급한다는 숫자의 변화, 그리고 그것에 의한 문제의 절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좀 앞서가는 생각, 아니면 과장된 생각, 혹은 낭만적인 생각. 나는 '20대 필자론'이 생기면서 가장 걱정했던 점이 사실 '20대필자'들을 기특한 아이 취급하는 그 윗세대의 시선이 아니었다. 내가 우려했던 점은 정작 이렇게 주목받으면서 나오게 된 일정한 그 '군(群)'에 대한 20대들 본인의 불투명한 의혹들과 시기심들의 누적이었다.(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그 '군'에 대한 사회적 담론, 특히 언론이나 출판사들이 만들어놓은 그 담론은 너무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전자나 후자는 따로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최근 이런 '20대 필자'들을 동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의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만나는 사람들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들이 보여주려는 글의 '내부'보다는 '외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비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 어떻게 생각합니까?란 질문에서 나는 그 사람의 글에 대한 의견, 그 주고받음을 느끼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외부적'이었다. 결국 그것은 20대라는 위치와 그들을 조명해주고자 애쓰는 윗세대 지식인들과의 관계를 품평하는 것으로 환원되거나, 돌고도는 루머들에 대한 뒷담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의 최종판은 결국 명성이었다.(김예슬 선언을 둘러싼 그 반응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그러면서 그 '명성'으로 모아지는 가운데 그들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누적시켜온 어떤 훈련의 의미들은 '똑똑하니까' ,'책을 많이 읽으니까','글을 잘쓰니까'정도로 쉽게 축소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결국 같은 20대들에게 20대 필자들로 묶인 사람들의 글은 '일간지에 기고를 하는 우리 또래'(그러면서 명성을 쌓을 수 있는 '촉망받는'이란 엠블렘을 단 또래)로 취급받고, 이 안에서 '글의 내부'는 "잘 읽었습니다..^^"정도로 수렴될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이 안에서 또 하나의 단계를 본다. '불신'에서 '불안'으로. 이건 단순히 나보다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그 사회적 형식을 취득한 자로서의 부러움과 시기심, 그 차원으로서 축소하는 문제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이것을 인정해버린다면, 우리는 '심리학적 위안'에 머무를 뿐이다. 오히려 나는 여기서 (과장된 생각이란 표현의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오늘날의 불안을 읽는다(김예슬 선언을 접하고 나서, 그 반응들을 둘러싼 당황스러움보다 더 깊은 우려).  사람들이 더 '사회학적'으로 되어가는 것. 사람들의 패턴을  쉽게 읽고, 평가하는 것. 그 안에서 그 패턴을 정형화시키고, 편리하게 무리로 집어넣어버리는 것. 이 안에서 그들이 만들어놓은 작품에는 '유망한','젊은'이란 수사를 던져주면 그정도로 족하지 않겠는가,라는 '예의없는 '기호 및 반응들의 난립. (결국 이런 반응 안에서, '유망한' 젏은'이란 기호는 '누구누구의 흉내를 내는~'으로 폄하/수렴되는 냉소적인 댓글들의 진수성찬) 

'나이- 명성'이란 외부의 기호에만 머무르다보면, 남는 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교회 내부 생활을 잘 아는 어른들 특유의 대화법, 그리고 뒷담화에 알맞는 소재주의식 비난'일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우리 세대들이 우리 세대들의 글을 '깊게'읽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있게 많이 썼으면 좋겠다. 이리저리 소심한 정리만 하지 말고, 또 너무 잘 보이려는 계획만 세우지 말고. 난 특히 아카데미 안에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속한 아카데미 안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자신없어하는 20대 연구자들이 보다 성실하게 그리고 밝게 자신의 노력을 보여주는 '성의의 기술'을 연마했으면 좋겠다. 출판사는 젊은 연구자들의 노력을 너무 얕보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너무 주눅들어 있는 현실. 언론은 우리가 딱 그 정도의 나이이길 바라면서, 가끔은 그 정도의 나이를 벗어난 '할배'의 연륜을 보여주길 원하는  "그러면 우리보고 어쩌라고?"라는 반응을 나오게 하는 그 현실 사이에서. 이 기술은 보기 좋은 복수가 될 것이다. 자, 눈 밑에 점 하나 찍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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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5 0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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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5 0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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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5 0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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