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1993.10월. 독자의 광장- 첩혈쌍웅
299쪽
오우삼 감독이 서극,정소동과 손잡고 만든 <첩혈쌍웅>은 분명 상업적인 활동사진이다.그러나,내 생각엔 한번 쯤은 진지하게 읽어봐야 할 문제작이다. 오우삼 감독의 첫번째 히트작 <영웅본색>이 장철 감독에게 바치는 현대판 무협검술영화라면,<첩혈쌍웅?은 장 피에르 멜빌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보내는 보다 세련된 갱스터 무비이다. <첩혈쌍웅>역시 다른 홍콩영화들과 자칭 영화광들에게 욕먹을 조건은 완벽히 갖추고 있다.황당할 정도로 잔인한 폭력,너무나 단순한 이야기구성, 그리고 서구영화의 모방..(웬만한 영화광이라면, 이 영화의 모태가 멜빌 감독, 알랭 들롱 주연의 <사무라이>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301쪽
유덕화,장만옥 주연의 <열혈남아>비디오 테잎을 사고 싶습니다. 정품이면 더욱 좋겠지만 녹화테잎이라도 상관없습니다.아울러 주윤발과 종초홍 주연의 <가을날의 동화>비디오테잎을 소장하고 계신 분도 연락주셨으면 합니다.
스크린.1993.2월. '커팅'전쟁 휘말린 <하얀 전쟁>
266~267쪽
skc의 자회사 동 프로덕션이 영화 <하얀 전쟁>을 무려 14군데에 걸쳐 10분 이상의 분량을 삭제,수정하는 횡포를 자행.
267쪽
마지막으로 대사 수정문제가 남아 있다. 세장면에서 대사가 수정되었는데, "..아 더러운 따이한들아.."를 "이놈들아"로 바꾼 것 등이다. skc 측에서는 이것이 시네마코프에서 텔레시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한다. 즉 화면이 작아지면서 오른쪽에 세로로 채워졌던 한글자막이 잘려버려서, 그 부분에 관한 한 자막담당들이 장면을 보고 유추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지영 감독은 영화 전체가 월남전에 대한 재해석,반성,비판을 의도하고 있었기 때문에,장며 하나 대사 하나가 모두 의미있는 장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삭제나 수정을 하는 경우 감독의 의도는 그냥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특히나 '따이한'과 같은 대사는 그 단어 하나에 월남인들의 모든 감정과 분노가 들어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을 자르는 것이라고 했다.
로드쇼.1992년 8월. 저주받은 비디오 고다르 vs 파스빈더
284쪽
우리나라 비디오업자들의 손에는 가위손과 엿가락이 함께 들려 있는 것 같습니다. 비디오로밖에 확인할 수 없는 미개봉 명작들,기대에 차 환호했던 영화광들은 처참하게 변형된 걸작의 모습에 분노했을 것입니다. 이익을 위해 잘라내고 이익을 위해 엿가락처럼 늘여놓은 비디오 천국에서 독자를 위한 명단공개를 시작합니다.
(중략) 흥행이 될 것 같지 않은 영화(대부분이 아트 필름이거나 개성이 강한 감독의 작품이다)혹은 90분을 넘는 영화들의 경우는 어김없이 90분짜리 테이프에 키를 맞춰야 한다. 거두절미(?)의 위력은 스크린의 배율뿐만 아니라 길이에 있어서도 여지없다.
285쪽
비디오악당선언. '졸작'으로 둔갑한 '걸작'
첫째, 비디오의 거두절미. 무슨 소리인가?시네마스코프 영화 화면의 가로 세로 비율은 2.35:1이다. 텔레비전 모니터의 비율은 1.37. 즉,양사각형의 경계선 사이에 서 있는 주인공은 아무리 크게 떠들고 열연을 해도 비디오 화면에서는 쫓겨난 꼴이 된다.명감독의 뛰어난 미장센이란 비디오관객에게는 '전설'로 여겨질 뿐이고,그저 줄거리만 줏어섬기게 되는 셈이다.
287쪽
비디오광에게 보내는 퀴즈 : 절대 찾을 수 없는 제목
여기 모은 리스트는 '창씨개명'당한 비디오출시작들입니다. 명감독의 걸작들을 보기 위해 비디오가게를 힘들여 뒤지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서,그리고 잃어버린 이름들의 복원을 위하여 간단한 독자테스트를 마련합니다. 총문항수 62개, 55점이상이면 출시제목에 속지 않는 안목을 지녔다고 자부해도 좋습니다.앞으로는 이런 테스트가 없기를 바라면서,걸작들의 이름을 찾아줍시다.
1993년 8월 로드쇼. 여름을 정복하는 영화광의 통과제의.
컬트영화 베스트 10
238쪽
'컬트'라는 말이 이제 낯익다. 거리에는 '컬트'라는 카페까지 들어섰다. 작년에 <델리카트슨>이 컬트 딱지를 붙이고 서울에 입성했고, <블루 벨벳>,<바톤 핑크>까지 컬트 명찰을 달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컬트는 이른바 '홍콩 느와르 붐'에서 찾을 수 있다.
1.아리조나 유괴사건 : 1) 몇몇 저널레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를 낸 뒤로 2)코엔 형제의 다른 영화들을 보고 구색을 맞추거나 확인을 하려고 몰려든 영화광들 때문에 3)한번 보고 두번 보고 급기야는 복사본 만들려고 또 보는 열혈 편집광들 때문에 비디오숍에서 정말 보기가 힘들어진 출시비디오.4) 또 이 영화의 정체를 단언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면서도 꾸준히 인구에 회자하는 영화.5)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컬트에 동참한다'는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는 새로운 '컬트컬트'영화.
239쪽
5.블루벨벳 : '불법비디오'는 컬트였으나 정작 수입/개봉은 더 이상 컬트일 수 없게 되어버린 경우. 웬만한 영화광이라면 대학의 상영회나 시네마떼끄로 몰려다니며 <블루 벨벳>불법비디오나 LD를 챙겨보는 건 필수였다. 데이비드 린치 고유의 '기이한'매력의 맥락 위에서 맹목적 통과의례처럼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6.열혈남아 : <영웅본새>,<천녀유혼>과는 달리 비디오출시 이후 엄청난 관객이 몰린 경우, 즉 컬트비디오라 해야 할 것이다. 왕가위의 두번째 작품 <아비정전>역시 개봉관에서는 일주일만에 내려져 그해의 최단기록을 세우더니 비디오로는 꾸준히 재평가받고 있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