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2008). 할리우드 영화에 대처하는 새로운 사유 훈련법 1탄 <미스트>.씨네21.640호.
오늘날 영화를 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영화라는 사건을 가능한 세계의 한 가지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영화-사건-가능,이라는 하나의 삼각형.다른 하나는 영화라는 정보를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로 읽는 것이다.후자의 방법은 거의 모든 영화들이 우리 시대의 광학적 기계장치를 다루는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그로므로 영화를 볼 때 이제는 그것을 보는 직관적 감각이 얼마나 예민하고 풍요로운가라는(다소 상투적인 비유이지만) 유목민적인 산책의 구경보다 그 영화를 둘러싼 정보를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있느냐에 의해서 그 영화가 더 잘 보이는 네트워크로서의 집단적 전송과 리플이 이 시대의 영화감상을 특징짓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착각하면 안 된다. 오늘날 이 네트워크의 특징은 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있다면 오로지 사이버 대화가 있다.정말 있는 것은 전송뿐이다.전송하고,전송받고,베냐민적 영화보기에 대한 맥루한적 영화보기의 승리. 어쩔 수 없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미국영화(의 관객교육 방법)의 승리.오늘날 젊은 시네필들이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를 둘러싼 정보에 더 열중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노트북 세대의 첫 번째 시네필들,게임방 시대의 첫 번째 시네필들.그들은 사실상 재빨리 새로운 영화를 보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그들은 영화를 본 다음 견해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정보의 오류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정보를 경유하고,정보를 통해서,정보로 영화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영화를 더 잘 보려고 혼자서 명상에 잠겨 자기의 생각을 말하여 들 때 새로운 시네필들에게 그 노력이 일종의 영화적 문맹이거나 혹은 부질없이 관념적인 잡담처럼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혹은 지식이 이들을 간섭하려들 때 맹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한다.(중략) 이제 검색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선택하느냐가 얼마나 적하한 미학적 용어를 알고 있느냐보다 그 영화의 핵심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그냥 한마디로 이 새로운 영화들의 핵심은 정보를 미학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
정지연(2009). 디지털 시대의 영화 존재론에 관한 연구 : 매체 융합환경에서 영화의 수용자 경험 변화를 중심으로.커뮤니케이션학 연구:일반, 제17권 1호.
78쪽
1990년대부터 편재화 되기 시작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전 사회적 확산은 미디어 컨버전스와 함께 진행되어 왔다. 극장과 TV가 융합되고,TV와 컴퓨터가 융합됐다. 공적 공간 미디어와 사적 공간 미디어가 융합되고,고정된 관람 지점의 미디어와 모바일 미디어가 융합됐다.영화는 이 모든 과정에서 모든 미디어와 결합했다. 이미 1950년대 텔레비전과 뒤섞였고,1980년대에는 vhs미디어와 결합했다.그리고 90년대에는 dvd로부터,컴퓨터,케이블,PMP미디어로 확장됐다. 특히 DVD시대가 시작되면서,DVD는 영화의 단순한 부가상품이 아니라,그 자체로 하나의 독자성을 지닌 어떤 것처럼 변모하기 시작했다. DVD에는 영화의 본편만이 아니라, 감독 코멘터리,확장판,삭제판, 다른 버전의 엔딩,메이킹 다큐 등 무수한 영상물이 추가된다.
96쪽
극장의 선형적 시간이란,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는 개인 관객이 결코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과 흐름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가령 DVD와 같은 디지털 미디어는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는 물론이고 수용자가 원하는 순간 언제든지 영화를 멈추거나 되감거나 도약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극장은 관객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화의 상영시간(running time)동안 그것에 철저히 종속되어야 한다.
98쪽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영화 경험에 부여하는 이러한 영화의 새로운 속성들에 대해서,유토피아적으로 해석하는 많은 논점들은 디지털 시네마의 새로운 미학적 성취들을 강조하고,더불어 극장의 강제적이고 통제적인 시공간성을 극복하여 관객이 영화에 더욱 참여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영화 경험이 미학적 성취이고,자유로운 주체성(관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인지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98쪽
테렌스 라퍼티는 <누구나 컷 할 수 있다.그러나 그것이 문제이다(Everybody gets a cut:DVDs give viewers dozens of choices-and that's the problem)>라는 글에서 현대인들이 컴퓨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그 컴퓨터 유저의 사용 패턴이 현대적 삶의 일상영역은 물론이고 예술 경험에까지 작용해 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한다.즉,현대인들이 컴퓨터를 통해 일상을 처리하(98)는 과정에서 모든 것은 '정보 양식'으로 취급되어 통제되거나 소비되는데,이러한 컴퓨터 기반의 일상생활 양식이 예술에 대한 행위와 감각에까지 영향을 미쳐,예술이나 영화 조차도 마치 컴퓨터의 '정보 패키지'를 취급하듯이 한다는 것이다. 인터액티비티에 대한 욕망,랜덤 액세스에 대한 욕망, 지루할 때 스킵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태도 등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terrence Rafferty,2006)
99쪽
디지털 시대에 점점 비중을 키워나가는 다양한 영화 윈도우들의 양태는 명백히 자본주의내 상품과 소비 생산의 메커니즘이 강하다. 겉으로는 수용자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이야기하지만,사실 수용자가 dvd를 볼 때 장면을 선택하는 행위 혹은 스킵하는 행위가 예술을 경험하는 주체의 능동적 사유를 유발하기보다는,오히려 매체에 대한 사유와 의식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행위 패턴의 기계화 혹은 감각의 마비를 자극하는(99)부분이 더 크다. 디지털 매체의 인터액티비티나 랜덤 액세스가 오히려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영화감상의 적극성을 감소시키는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극장의 선형적 시간은 관객의 몰입을 강제하며,그 강제성이야말로 억압적 기제가 아니라,영화 경험의 중요한 차원이자,핫 미디어(hot media)의 특성인 것이다.
100쪽
특히 1980년대 이후 멀티플렉스는 대중의 영화경험을 단순히 영화라는 대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멀티플렉스가 놓이는 소비공간으로서의 배치와 마케팅 상품의 연속들 속에서, 영화 경험을 소비과정의 한 단계로 강력하게 편입시켰다(공간의 정치학).즉 영화의 문화적 예술적 향유의 속성이 약화되고, 점점 더 영화 경험이 고도로 치밀한 상품소비와 동의어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영화경험의 사회적 구조는 영화의 물질적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유선영(2009). 근대적 대중의 형성과 문화의 전환.언론과 사회.17권 1호.
82쪽
지식인의 개입은 식민지 대중에게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영화가 근대적 여가와 오락의 중심으로,즉 문명화의 한 표상으로 정립된 것이다. 영화는 과학주의,지성주의,모더이즘,문명의 이미지로 덧씌워졌고 영화관객은 지식,매너,스타일,유행,쾌락,소비와 같은 근대 대중의 소양과 자질,태도와 연관되었다. 영화관객은 근대적 대중의 이미지를 재구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