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더러운 공중화장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문을 열었을 때, "아이씨, 여기엔 무슨 화장지도 없어!"라고 버럭하다가도, 막상 넉넉한 화장지, 우리집보다 더 좋은 향기를 배출하는 방향제의 위력을 느낄 때면, 옛 화장실이 생각나는 것이다.  (<순수와 위험>의 저자 메리 더글라스는, 이미 예전부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구나,라는 생각을 뛰어 넘어, 나는 인간에게 순수함과 더러움이라는 그 경계를 생각하게 만들어놓은 그 지각의 도식, 그 경계선에 대해 궁금할 때가 많다. 똥을 봐도, 더럽지 않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그려보고, 너무나 깨끗한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 "야, 아무리 혼자 살지만..."으로 시작되는 말을 하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그 경계를 문제삼을 때, 인간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예상이지만, 질서와 무질서를 딱 잘라놓던 장면들은 흐릿해질 것이다.  

가끔 이런 '변태'같은(물론 이 '변태같다'는 표현 자체도, 인간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든 문명의 기호라는 한계가 있지만)생각들이, 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건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오늘날 세상이 만만치 않은 건, 변태도 그냥 변태면 되지 않고, '합리적 변태'라는 상을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태'도 나름 의미를 붙일 수 있는. 아니 붙여야 하는. 

변태에게도 정치적 의미를 붙여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나는 처음에 그것이 혁명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본주의가 보여준 최고의 함정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인간에게 남은 건, 이쁜 변태, 예의 있는 변태, 합리적 변태를 가려내는 그 자체가 아니라, 아예 그것을 인식하는 선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일텐데... 

장경섭 작가의 만화 <그와의 짧은 동거>를 읽으면서..문득 담배를 피고 싶어졌다.-정확히 말하자면 배운다는 표현이 맞을듯.담배를 피워 본 경험이 없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담배를 피는구나,같은 괴로움 그 상태에서. 일시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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