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에 대한 옹호 - 믿음의 폭력성을 치유하기 위한 '의심의 계보학' 산책자 에쎄 시리즈 7
안톤 지더벨트.피터 버거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10년 7월
절판


20세기에 들어 수립된 종교사회학에서는 근대를 종교 쇠퇴의 시기로 보려는 이런 시각을 '세속화 이론'이라고 부른다.이 이론에 따르면,과학 지식이 널리 보급되고 근대 사회제도가 신앙의 사회적 기반을 허묾에 따라 세속화, 즉 사회와 개인의 의식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의 지속적 축소는 필연적으로 진행된다.이런 시각은 어떤 반종교적인 철학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그 시각을 뒷받침하는 여러 경험적 자료에 근거한다(그런 자료는 대부분 유럽에서 찾을 수 있으이 의미심장하다).-15쪽

참된 다원성이 존재하는 조건은 지식사회학에서 '인지 오염cognitive contamination'이라고 부르는 용어로 풀이된다.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인간 행태에 바탕을 둔다.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이 뒤섞이다 보면,서로의 생각에 영향을 주게 된다.그렇게 '오염'이 일어나면,남들의 신념과 가치를 이상하다,기묘하다,사악하다 등으로 규정짓기가 점점 힘들어진다.차차,하지만 확실히,다른 사람들도 존중할 만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그것은 앞서 당연시했던 현실 인식이 흔들리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25쪽

전경과 배경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배경적 행동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며,거의 숙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이때 개인은 주어진 프로그램을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된다.반면 전경적 행동은 숙고를 필요로 한다.이렇게 할까,아니면 저렇게 할까 하고 묻는 과정이 필수적이다.-30쪽

적극적 관용과 소극적 관용을 구분 짓는 것이 유용하다.적극적 관용은 자신과 다른 가치를 지닌 개인 또는 집단과 마주쳤을 때 순전한 존중과 개방성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반면 소극적 관용은 무관심을 나타낸다."저희들 멋대로 하라고 해."여기서 '저희들'이란 다른 신념이나 행동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관용은 대체로 두 번째 유형이다.-54쪽

진리에 이르기란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서는 상대적 포용론의 최종 국면은 진리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며 폐기되어(84)야 한다는 입장이다.우리는 처해 있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에 따른 편향성에서 벗어난 판단을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불가능하며,결국 그처럼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극단적 상대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객관적 진리 따위는 없고,심지어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조차 없다고 한다.서로 다른 '서술'이 있고,그런 서술은 모두 옳다.이것이 이른바 포스트모던 이론에서 내세우는 입장-84,85쪽

인식론적 엘리트는 유일하게 진리를 담지하며,다른 모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결국 상대주의자들은 바로 자신들이 그 엘리트이며,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91쪽

집단보다는 개인 차원에서 도덕을 고려하게 하는 상대주의는 니힐리즘으로 통하는 지름길이다.또한 그것은 데카당스로도 볼 수 있다.사회를 지탱하던 규범이 유명무실화되고,허울뿐이거나 숫제 조롱의 대상이 되며,누구나 남들도 그런 규범에 따라 행동하리라 믿지 않게 되는(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퇴폐적인 사회상,그것이 데카당스인 것이다.-106쪽

상대주의가 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이유가 의심을 과대화하는 데 있다면,근본주의의 위협은 의심의 과소화에서 온다.극단적인 불확실성도 극단적인 확실성도 위험하다.-132쪽

철학적 인류학은 인간 조건의 구성 요소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려고 한다.한 가지 근본적인 요소는 '제도의 필수성 institutional imperative'이다.인간은 자연과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도(에밀 뒤르켐의 정의를 따르면,행동,사고,감각의 전통적인 패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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