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백의 작은 역사  

  2-1. 고백의 역사가로서 푸코를 소환하기

누구나 고백한다. 아니 어쩔 수 없이 고백해야 한다. 고백이 자발적이지 않거나 내면의 어떤 요청에 의해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위협이나 술책에 의해 고백이 억지로 강요된다(Foucault,1976/2004,p.80)

  

 

 

고백이 선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 더 나아가 그것을 '우리 / 그들'의 구분이라는 안이한 영역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깨기 위해서는, 고백을 불온하게 인식했던 푸코를 소환해야 한다. 이야기되는 광기, 이야기되는 섹스, 이야기되는 살인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광기와 섹스, 살인에 방점을 찍기 보다는 '이야기'와 '되는'의 조합이 가져오는 실천으로서의 언어 양상을 두껍게 사유할 필요가 있다.1) "광기는 오직 실천 속에서 그리고 실천에 의해서만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 실천 자체는 광기가 아니다"(Veyne,1971/2004,p.485-486)라는 문장으로 푸코의 심중을 명확하게 이해했던 역사가 폴 벤느의 말처럼, 정작 우리 사회에서 구분과 이해 가능성의 기준 설정,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의 정당화를 주도하는 실천은 도리어 더 정상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오래전부터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주도하던 종교 권력의 종합적 실천에는 "무엇이 선인가에 대해서보다는 무엇이 악인지에 대해서 합의를 보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이미 체험"(Badiou,1993/2001,p.17)한  '규범의 정치'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규범의 정치'가 당시 민중들에게 공포와 안정을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에는 죄의 존재를 '추상화'단계에서 '구체화'단계로 하강시키고, 죄의 물화를 통해 그것의 현존을 끊임없이 고백하게 만드는 -당시에는 정당화된, 하지만 역사적 분석을 통해 정당화의 탈을 썼다고 바라볼 수 있는- 종교적 통치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2-2. 고백, 종교에서 종교적인 것으로의 산포

 

 고백에 관하여 푸코와 푸코의 생각에 직ㆍ간접적인 표현으로 동의․상관하는 이들의 견해를 정리해보면, 고백은 역사가 진행될수록 종교의 영역에서 종교적인 것으로 산포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뒬멘(Dülmen,1997/2004,p.70)은 개인성의 확립이 일어나는 가운데, 개인의 자기관찰과 자기인식의 과정이 오히려 사회 규제 및 사회 규율화 과정과 대단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의 형성을 추적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걸쳐 규율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자기 발견과 자기 개성이 급격히 발전하는 데 유리한 전제 조건으로 교회, 국가, 학교라는 근대적 단체들이 자기 발견과 자기 통제를 활성화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cf.Dülmen,1997/2004,p.70). 그는 이러한 근대적 단체들을 "인간의 영혼까지도 통제하는 새로운 기관"(Dülmen,1997/2004,p.70)이라고 명명하면서, 근대의 규율기술에 주목했던 푸코의 견해와 공명한다. 고백을 종교 권력의 테크놀로지로 인식할 때, "교회는 교리와 구원에 대한 독점을 더 강화하고, 교인들이 더욱 확고한 교리와 도덕을 따르게 되면서 처음으로 개개 기독교인들은 모두 신앙을 의식적으로 고백하게 되고 본인의 양심을 연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다"(Dülmen,1997/2004,p.70)는 뒬멘의 의견은, 종교와 고백의 관계를 통해 '고백'의 주체들- 더 나아가 고백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주체-이 형성되는 계기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러한 단서를 부여잡을 때, 사목권력 아래 점정 강화된 고해성사라는 종교적 제도는 '이야기되는 죄'를 고백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는 푸코의 지적을 강화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해성사는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화해로서의 고해이다. 2~3세기의 대박해의 기간에 교회공동체에서 멀어진 죄인들, 즉 신앙을 버린 사람들이 다수 생겨났다. 고해성사는 이렇게 공동체에서 멀어진 신자에게 다시 공동체와 하나 될 수 있도록 한 속죄예식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하나는 초기 수도자들이 행했던 영성 지도로서의 고해이다. 특히 과거 영성지도로서의 고해에서 다루어졌던 주제들이 성사화된 고해에서는 죄악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지면서, 사소한 불완전함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죄악이 되었다(최재호,2007,122-123쪽 참고). 종교에서 호몰로기아 homologia, 즉 고백의 체계란 “고백의 내용과 고백의 행위 양자를 함께 아우르는 대표적인 자기 포함적 화행 언어”(최승락,2007,49쪽)라는 정의를 참조한다면, 개인은 신과 신의 대리자를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입으로 드러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육체를 성과 속의 기준 속에 순응시킬 상태로 지속시키는 의례에 참여함으로써 '고백적 개인'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고백적 개인은 푸코가 고안한 핵심 테제 중 하나인 '진리 게임'에 동참하게 되면서, 종교 권력이 만들어 놓은 '진리의 성소'에 기거하는 수행자로 살 것을 맹세하게 된다. 그러나 '진리의 성소'는 결국 진리들의 충돌과 합의로 구성된 '진리의 시장'인 것이며, 권력자들은 효과적인 담론의 정치, 즉 담론이 규정하는 선택과 배제의 기술로 진리의 정당화를 추구하면서, 진리들의 쟁투를 감춘다. 진리들의 쟁투를 감추기 위해서 종교 권력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공포와 불안의 담론을 유포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포의 과정 속에서 해결의 주체를 개인으로 설정함으로써, 개인에 대한 책임을 더욱 강조한다. 개인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는 것은 고해성사라는 제도가 공동체적인 것에서 점점 개인적인 것으로 바뀌어가는 것과 결부된다.2)

 16세기 종교개혁은 고해성사의 성격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해성사의 변화된 지점을 종교개혁 이전과 종교개혁 이후로 나누어 볼 때, 고해성사의 형식성과 고해 신부의 권한 강화에 반기를 들었던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에 반해, 고해성사를 점점 강화시키려 했던 반종교개혁자들의 움직임은 고해성사에 대한 개인의 의례화를 촉진시켰다. 빈번해진 고해성사는 속인으로 치부된 민중들이 성사를 관습적인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낳음과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에게는 개인의 고백이, 가톨릭에서는 회중과 격리된 고백자와 사제 간의 사적인 고백이 중시됨으로써 종래 고해 성사를 매개로 한 자선과 축제의 장, 그 역할과 의미는 거의 퇴색되었다. 신, 구교의 신도들은 매주 하나님과의 고백을 중시하도록 훈련받음으로써  이웃과 사회와의 화해에 대한 통로는 사실상 막혀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최재호,2007,144쪽 참고). 고백의 의례화와 사사화가 증대하면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개인'과 '이야기 되어지는 개인'이 전시되는 경향이 강화된다. 우리는 여기서 누가 고백의 개인들을 전시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종교의 전술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지배의 심급은 말하는 사람 쪽이 아니라 듣고 침묵하는 사람 쪽에, 알고 대답하는 사람 쪽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질문자 쪽에 있다"(Foucault,1976/2004,p.84)는 푸코의 주장이  고해 사제, 고백신부라는 종교적 주체의 형성에 유관함을 의미한다.  

  

 

 

 

 

 

 

 

 

 

 

 

 르 고프는 고해자의 자성을 도모하는 고해 사제의 존재에 주목하면서, '고해 사제는 고해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질문들, 그리고 고해자가 저지른 죄를 통회나 소지로 분류하기에 적합한 질문들을 던져야'(Le goff,1989/1998,p.14)하는 노력들을 요구받았다고 언급한다. 고해 사제의 권한은 16세기 이후 점점 더 강화되어 '전담 고백 신부'라는 제도로 정착하게 된다. 당시 전담 고백 신부 제도는 특히 '국가의 주요 지도자들과 사회 엘리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바티칸이나 교회 제단의 뜻에 따라 유력인사들을 통제하려는 교회의 의도를 담으면서도 교회 규율과 조율해 양심 정치를 하고자 했던 제후나 귀족들의 원하는 바를 만족시켜 주는 제도'(Dülmen,1997/2004,p.70)로 자리 잡음과 동시에 주체를 부도덕하게 몰아가는 사목권력이 근대의 권력 양식과 다르지 않은 형태로 민중에게 행사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필자는 여기서 ‘종교적 가치 부여와 이념적 통제를 통해 지배를 유지하고자 하는 신정적 권력들’(김명숙,2001,58쪽)과 ‘복지적, 이념적 역할을 충실하게 함으로써 구성원들로부터 복종을 얻어내고자 하였던 가산 군주들’(김명숙,2001,58쪽)의 권력 실천이 제도 및 영역들의 분화와 전문화 과정으로 점철된 근대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종교적인 것의 산포를 은밀하게 도모했음에 주목한다. 종교에서만 행해지던 실천들이 종교적인 것으로의 실천으로 산포되는 과정은 종교 권력이 내세우는 '도덕의 정치'가 국가의 정치와 연관되면서, 교회, 국가, 학교 등 근대적 단체들이 강조하고 요구하는 실천의 명명들을 민중 스스로 거부감 없이 순응하게 만든다.3) 이러한 순응을 도모한 실천은 -'도덕의 정치'가 내세우는 기준에 맞춰- 학교를 통해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을 합리적으로 성찰하고 분석하도록 교육'(cf.Dülmen,1997/2004,p.71)받는 현상, 신문 제도를 갖춘 '근대 초기의 형벌 체계와 법정 제도 안에서 추상적인 법과 국가 권위의 이름으로 인간적인 행동의 진실함 등을 시험'(cf.Dülmen,1997/2004,p.96)했던 것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덧붙여 고백이 더욱 교묘한 현실 권력의 테크놀로지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에, 고백 효과의 의학화라는 요소를 빠뜨릴 수 없다. 18세기에는 몸의 표현 양식과 성격 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와 상응해서 인간의 마음, 즉 '내면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유럽에서 18세기 후반 심리학이 독립 학문 분과로 인식되면서 관찰과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심리학은 강단철학과 독립된, 독자적인 경험 학문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철학자 ㆍ설교자ㆍ작가ㆍ의사들을 망라하는 다양한 전통에서 그 내용이 채워졌다(cf.Dülmen,1997/2004,p.144).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 심리요법에 기반을 둔 수양의 풍조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였으며, 미국의 경우 프로이트 심리학의 미국식 리모델링은 19세기 후반 종교적 혼란기에 발전한 모든 테라피적 종교 운동과 심리학 사이의 우연한 만남에 의해 가능해졌다(Peck,2008/2009,p.55). 푸코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의 문명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섹스에 관해 털어놓는 속내 이야기를 담당자들이 주의 깊게 들어주고는 보수를 받는 유일한 문명이다"(Foucault,1976/2004,p.31)라며 고백효과의 의학화를 비판한다. "고백 효과의 의학화에 의해, 고백의 획득과 고백의 효과는 치료 활동의 형태로 재코드화된다"(Foucault,1976/2004,p.87)는 그의 분석은, "쾌락의 표본도감을 작성했고, 쾌락의 분류법을 정립했으며, 일상의 흔해빠진 결함을 병적인 이상이나 증상의 악화로 묘사했"(Foucault,1976/2004,p.86)던 서양사회의 정신의학에 대한 일갈로 이어진다.

  결국 "담론의 부양책, 청취와 기록의 장치, 관찰과 질문과 표명의 절차가 마련"(Foucault,1976/2004,p.53)되어진 공간으로 현실 권력을 간파했던 푸코는, 경제학, 교육학, 의학, 사법 영역의 다양한 메커니즘이라는 근대성의 체계들이 산출한 효과가 "우리의 문명이 요구하고 조직화한 것은 바로 엄청나게 많은 말"(Foucault,1976/2004,p.54)이라고 표명함으로써, 고백이라는 실천을 통해 증대된 언술에 내재된 체계 - '이야기되는 언어'와 '이야기되어서는 안 될 언어'로 구성된 '금지의 분류표'들이 작동되는 체계 속에서-의 정당성을 해체시키고자 했다. 푸코의 관점에서 고백이라는 권력 테크놀로지는 종교적인 것으로의 은밀한 산포를 통해, 근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일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향력이 여전히 유효함을 경험하고 있다. 

 그 진리의 정당성을 타파하기 위한 예비적 고찰로, 첫째, 일상에서 '당위적 지향의 명제'로 쉽게 / 강하게 치부되는 법을 '법사회학'적 관점4)에서, 둘째, 푸코가 의혹을 품고 있는 정신의학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적용해봄으로써,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이해관련자들의 물질적, 이념적 이해관계의 얽힘과 다양한 권력 지향’(김명숙,2001,34쪽)의 관계들을 보려고 한다.     특히 이 관계들 속에서 필자는 "법정의 조사 과정은 고해 과정과 상당히 유사"(Dülmen,1997/2004,p.96)하다는 뒬멘의 견해, 정신의학이 은밀히 주도하는 권력관계 안에서 전개되는 관례로서의 고백이 주는 부정성을 인식한, 푸코의 견해가 뒷받침되는 역사적 풍경을 조망할 것이다. 이는 종교가 고해라는 행위를 통해 고백적 주체로 형성된 개인에게 선택된 삶의 수행성을 강요한 것처럼, 법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개인에게 부과되는 법 전문가들의 법 담론, 법 집행에 동원되는 정신의학자의 담론은, 죄와 함께 자신의 서사를 고백해야만 하는 개인을 낙인과 추방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게 했음을 살피는 것이다. 이것을 푸코의 시각으로 접근했을 때, 낙인과 추방의 테두리 안에서 법적 효력을 행사하는 법 집행자들과 정신 의학자들의 담론은 문제화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법 앞에서 선 개인은 고백이라는 실천을 통해 '정당화로 여겨지는 법의 담론, 진리로 간주된 의학적 담론을 거부하는 본보기'로 명명된다는 결론을 두드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측면은 법 담론과 의학 담론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 결과인 죄의 유, 무를 확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푸코적인 것은 죄의 유, 무를 판별하는 권력자의 실천이 긋는 경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악 속에 쉽게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법 담론과 정신 의학 담론의 분류 체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제 진리로 정당화된 법적 분류 체계, 의학 담론의 분류 체계 안에서 광인으로 규정되었던 두 청년, 리비에르와 조승희의 고백을 통해 현실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서 나타나는 고백의 의미에 더 가까이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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