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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분토론에서 20대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가 이런 테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은, 결국 누가 냉소와 회의를 섹시하게 표출할 수 있는가에 있다는 점이다.어떤 긍정과 어떤 부정이 다 쳐들어와서 가장 무기력한 상태가 된 20대 담론에서, 섹시한 냉소주의는 그나마 지금의 20대가 이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소심한 나르시시즘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냉소주의의 승리를 통해 기성세대 패널은 20대의 그 어떤 발언이든, "맞다, 우리가 잘못했다"라는 반성의 발언으로 대응한 채, '착한 토론자'가 되기에 급급하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의 차원보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의 차원까지 넓게 퍼진 냉소는, 요구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불신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내가 보기에 오한숙희 선생이 이 토론에 참여하기 전에 20대 학생들에게 받았던 우려라는 "꼰대형 발언'의 진실은, 사실 "너 이렇게 개념없이 살지 말아라"라는 훈계의 측면이 아닐 것이다. 내가 보기에 가장 식상한 꼰대는 자신이 생각하는 20대에 대한 시선을 이야기하자마자, 함께 자리에 참여한 20대에게 반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래, 사실 난 너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어. 너 세상살기 많이 힘들지?"라고 갑자기 자신의 견해 수정에 급급한 그 모습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게다. 

이번 백분토론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인간'이란 것 자체가 수사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홍대에서 밴드를 하고 있다는 어느 여학생의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늘 카운터 펀치 흉내를 보여준다는 느낌만을 주는 또 하나의 '수사'같아서 싫다)

가장 실망했던 장면은, 가장 꼰대와는 거리가 먼 생물적 나이를 가진  한 패널이 갖고 있는 '꼰대'스러운 현실 감각의 배설이었다.  '방황의 권리'를 가져보라는 신문과 잡지에 무수히 게재된 칼럼보다 더 늙고 주름많은 '방향을 생각해보라'는 대안 제시는,그가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나이에 쓰고 싶었던 책 속 구절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홍윤기 선생이 계속 '솔직하게 말해보자'라고 하면서 던진 "이러다 망할꺼다"라는 말이 차라리 더 위로가 된다. 망하거나 죽은 자리에 꽃이 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내가 갖고 있는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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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8-0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상했던 일이지만, 손석희 이후 백분토론이 실망스럽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저도 이전에는 일부러 챙겨서 보다가 요사인... 얼그레이님 글을 읽으니, 짐작이 갑니다만.

얼그레이효과 2010-08-01 23:14   좋아요 0 | URL
박미지님이 짐작하신 대로일겁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장악하는 사회자의 맛이 없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