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인격의 관계. 이것에 대해 늘 거부하고 싶은 절망감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접한 시간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이 절망감을 그냥 받아들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를 꼽으라면, 교수의 아내라고 생각한다. 정의와 결혼한 남자의 아내에게 문득 다가가 묻고 싶은 건, 아픔의 틈새이리라. 그 아내에게 남편 분이 훌륭한 일을 하셔서, 뿌듯하시죠?란 말을 건네는 건 그녀의 남은 여생을 불행하게 예언하는 또 다른 행위가 아닐까. 이보다 더 불행한 교수의 아내는, 그동안 못 놀았다는 것을 술자리에서 촌스럽게 티내는 연구원, 강사들, 교수들의 인생에 동참해야 하는 그녀들일 것이다. 

"그거 그냥 이렇게 하면 며칠만에 끝나지 않아?"와 같은 말들을 자주 들을 때면, 그건 그 사람의 지적 능숙함으로 이해되기보단, 세상에 속하기 위한 동물로서, 글과 말을 잡아먹는 현세주의의 표효로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다. 이런 인생을 쳐다보는 두 젊은 신상 부류가 있다. 구석에 앉아. 소심하게 그들을 비웃거나, 교수보다 더 뛰어난 현세적 판단과 감각을 갖고, 교수들의 인사부장 역할을 처리하는 조숙한 괴물.  

가끔 이 괴물들이 다가와 누구누구의 공부사와 신상을 상세히 읊어준다. 누가 어디서 대학 석사를 땄고, 어디 박사를 했으며, 한국에 와서 무엇무엇을 했다는 말이 나보다 너무나 어린 년,놈들에게 나올 때면 주일학교 시간에 봤던 <슈퍼북>같은 만화 주인공처럼, 차라리 성경 속 이야기 안으로 숨고 싶다.   

영화 <권태>의 마지막 장면 대사처럼, "우리가 이 절망으로 인해 오히려 살아야만 해"라는 그 고백을 언제쯤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하게 될 날이 올까. 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 같다는 게 내 중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