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 비디오드롬
박찬욱 지음 / 삼호미디어 / 1994년 4월
절판


한국판 비디오에는 셀리나가 캣우먼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빠져 있다. "여보, 나 왔어요...아 참, 난 독신이지"의 독백이 처절한 느낌으로 되풀이되고, 평범하 여성의 행복과 희망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파괴되고, 스스로 PVC의 상을 지어 입는 과정들 모두가 생략되었으니, 이야기 진행에 무리는 없으되 가장 의미심장한 표현 한 묶음이 사라진 꼴이다. 특히, 네온 싸인으로 벽면에 쓰여진 문장 '안녕 hello there'의 두 글자가 깨지면서, '여기는 지옥 Hell Here'으로 변하는 재치는 더욱 아까운 것. 단지 두 시간짜리 카세트에 영화를 구겨넣기 위해 이런 악행까지 서슴지 않는 상흔이니 만큼, 마지막에 붙어 있는 멋진 주제가 [face to face]역시 남아나지 못했음은 당연하다.[팀 버튼,배트맨 2]-89쪽

고다르는 평소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였던 [조용한 미국인](조셉 맨키위츠 감독)이 성우들의 더빙 때문에 그 다중언어의 묘미가 사라진 것에 심한 혐오감을 가져왔다. 그래서 그는 제작자의 여비서를 4개 국어 동시 통역자로 설정함으로써 영,불,이, 독어의 뉘앙스를 온존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노력마저도 이태리,미국 개봉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배급업자들이 한 나라 말로 모두 통일시켜 더빙해 버렸던 것. 미국판을 수입해 찍어낸 한국 비디오는 그래서 엉터리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들이 그림에도 손을 댔다는 사실이다. 있을 장면은 다 있으되, 지루함을 피한답시고 몇 초씩 줄여낸 쇼트들 때문에 배우들의 동작은 마구 튄다.[고다르, 사랑과 경멸]-112쪽

시작부터 서부극 팬은 배신 당한다. 광활한 평원의 아이드 스크린 - 물론 한국 비디오로는 TV 연속극과 다름이 없는 종횡비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으로 펼쳐지면 우리는 잠시 느긋하게 그 롱쇼트의 풍경과 곧이어 따라나올 장중한 남성합창을 감상할 준비를 하게 된다.[세르지오 레오네,석양의 무법자]-128쪽

최근에 [스팔타커스]는 오리지널 196분으로 복원, 전미 재개봉되었다. 여기에는 감독 의사와 무관하게 무식한 제작사에 의해 삭제되었던 부분이 추가되었는데, 그 내용은 로렌스 올리비에[크랏수스]가 자기의 노예 토니 커티스[안토나이너스]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이다. 권력의 본질에 관한 큐브릭의 이 야심적인 해부가 우리나라 비디오판에는 당연히 없다.[스탠리 큐브릭,스팔타커스]-148쪽

경찰서 장면을 눈여겨 보면, 짐이 형사의 방으로 옮겨가면서 넥타이 길이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영화에서 가장 저질러지기 쉬운 실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튿날 등교길의 짐이 실내에서는 넥타이를 매고 있다가 집밖으로 나올 땐 노타이 차림인 것까지 실수로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실수이다. 실내 마지막 쇼트 끝에서 짐은 넥타이를 풀면서 프레임 아웃한다. 다만 화면이 좌우로 잘려나가는 바람에 그 동작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부르주아 가정의 억압적 분위기에 대한 짐의 반항심을 표현하는 중요하는 코드가 비디오업자의 무지에 의해 파손당한 경우, [반항]은 무엇보다도 시네마스코프 미장센의 탁월함으로 유명한 작품이므로 마땅히 '우편함'처리를 했어야 옳았다.[니콜라스 레이, 이유없는 반항]-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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