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비평>을 다시 읽는다. 오늘은 첫번째 시간, 1997년 조세희 선생님의 창간문 몇 구절을 담아 본다.  



<창간호를 내면서>- 무산된 꿈, 희망의 복원 / 조세희(1997년 9월) -16p~17p

누구든 아주 조금만 생각해도 속으로 눈물 날 바로 이 1997년에 우리는 긴급한 마음으로 <당대비평>을 내놓는다. 시작은 셋이 했다. 우리는 이미 여름 기운이 느껴지는 어느 날 밤 아주 심각하고 또 더할 수 없이 비장한 마음으로 편집회의를 시작했는데,그 자리에서 우리가 결정하고 다음 날부터 급히 청탁에 들어가 만들어낸 것이 물론 미흡한 점이 수없이 많을 이 창간호이다.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주시고, 차근차근 준비해 알찬 내용의 책을 경제 상황이 나아질지 모르는 겨울이나 내년 봄, 또는 아예 1년 뒤에 내라는 분들의 충고도 있었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과의 합의나 계획, 대안, 그리고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1997년이 가하는 정신적 압박이 크니까 우선 그것에 저항하고 보자고, 우리는 생각했었다. 나 개인은 1995년에 시작해 1997년까지 이어진 두 나라 노동자들(두 나라는 한국과 프랑스, 얼그레이효과 설명)의 투쟁, 즉 신뢰할 수 없는 권력이 결정하는 조건에 따르지 않겠다는, 미래를 위한 당당한 저항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실제로 우리가 책을 만드는 시간에도 지난 긴 세월동안 우리를 지배하고 절망으로 이끈 구독재체제의 또 다른 얼굴들이 21세기까지 점령해버리겠다는 음모,거래,암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지난 독재시절 이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자기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자유인이 아니었다.  

내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 더욱 그랬던지, 나에게 그들은 손에 국민의 피를 묻힌 권력자 밑에서, 또는 그 권력자와 제휴한 또 다른 독재자 밑에 들어가 노예의 삶을 산 종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안겨다주었던 갖가지 절망이 지금 나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게 한다. 

20세기를 우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보냈다. 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헤어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죽었다. 선은 악에 졌다. 독재와 전제를 포함한 지난 백 년은 악인들의 세기였다. 이렇게 무지하고 잔인하고 욕심 많고 이타적이지 못한 자들이 마음놓고 무리져 번영을 누렸던 적은 역사에 없었다. 다음 백 년의 시작, 21세기의 좋은 출발을 위해서라도 지난 긴 세월의 적들과 우리는 그만 헤어져야 한다.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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