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5면. 1976.1.13. 보고싶은 프로를 원하는 시간에. 

76년에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텔레비전 혁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TV 혁명이 이루어지면 시청자들은 TV방송국의 프로변화에 더이상 구애되지 않게 될 것이며 어린이 쇼우프로를 보려는 아들과 축구경기를 보려는 아버지간의 다툼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시청자들은 오늘날 녹음기나 전축으로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쇼우를 쉽게 녹화할 수 있고 좋아하는 영화나 연주회 강연등을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TV혁명의 기수는 아직 시판단계에 있는 비디오 녹화장치를 갖춘 새로운 TV수상기인데 이것이 금년에는 미국전역에 보급되어 그같은 TV 혁명을 대중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TV수상기는 한편으로는 TV영상이 브라운관에 나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브라운관에 나타난 것은 물론 나타나지 않은 다른 방송국의 프로를 동시에 녹화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다른 방송국들의 2개프로 중 하나는 그 시간에 보고 다른 하나는 녹화해두었다가 편리한 시간에 볼 수 있으며 꼭 보아야 할 프로가 방영되는 시간에 외출을 하게 되는 경우 그 시간에 보고자하는 프로가 녹화되도록 해놓았다가 귀가해서 볼 수 있으며 인간의 달착륙과 같은 역사적인 장면을 녹화하여 영원히 보관해둘 수 있게 되었다.   

박완서(1979.11.9). 살아있는 날의 시작<34>.동아일보 4면. 

"(전략) 과외방은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하죠. 방음장치도 잘 돼 있고요. 그리고 누구네 다 있는 테레비말고 아직은 귀한 비디오가 있어요. 통때는 그림의 떡이던게 갑자기 신기한 실용성을 띠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죠. 먼저 입맛을 다시는 놈이 비디오를 조작하죠. 엄마 우리는 나무라지 마세요. 우린 그게 거기 있었으니까 본 것 뿐이니까요. 거기있는 비디오테이프는 다 일본말로 녹음된거죠. '대부'도 '광야의 무법자'도 연기는 코쟁이들이 하는데 시부렁 거리긴 일본말로죠. 구경군은 열여덟 살의 한국소년이고요. 상상력이 풍부한 나이죠. 코쟁이는 행동하고, 왜놈은 말하고 엽전은 사고한단가요? 그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야말로 코메디죠."  

박완서(1979.11.12).살아있는 날의 시작<36>.동아일보 4면. 

"엄만 '에마뉴엘 부인'을 보셨어요?" 

"뭐라고? 너 지금 뭐랬니? 그럼 거긴 그 테이프까지 마련돼 있더란 말이냐?" 

그 여자는 불에 덴 것처럼 잡고있던 아들의 손을 뿌리치며 대경실색했다. 

"아니예요. 전 봤다고 안했어요? 보셨느냐고 여쭤봤을 뿐이죠?" 

"못봒다. 안봤어. 그 해괴한 걸 왜 보니?" 

"보시지 않으셨다면서 해괴한 건 어떻게 아셔요?" 

"소문도 못듣냐? 세상에 아들하고 이런 얘기까지 해야하다니.." 

"엄마, 어제던가요. 그제던가요. 아뭏든 가외에서 시험을 본 날이었으니까요. 며칠전서부터 시험본다, 시험본다로 협박받다가 마침내 시험을 보고난 다음이었기때문에 우린 모두 다 어지러울 정도로 피곤했죠. 어두운 골목에서 한 녀석이 책가방을 드립다 태질하면서 말했어요. 야아 새끼들아 우리 심심한데 계나 하나 모으자고요. 참 시시한 놈도 다 있죠. 쳇 대학 뒤구녁으로 들어갈 기부금 계라면 우리 엄마가 이미 하고 있을 걸. (중략)그랬더니 녀석 씩 웃으면서 뭐랬게요? 야, 왜 그렇게 말이 많니? 내 계는 '에마뉴엘 부인'계다. 들래? 안들래? 우린 모두 다 어두운 골목에서 말없이 더운 침을 삼켰죠." 

"얘야,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엄마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못알아듣겠다." 

"보충설명을 하죠. '에마뉴엘 부인'의 비디오테이프는 빌리기만 하는데도 돈이 꽤 든다는군요. 그래서 그 자금을 우리끼리 합자를 하자는 소리였어요." 

(중략) "실망했어요. 엄마도 다른 엄마들과 조금도 다르지않군요. 우리들의 책상서랍속의 담배 한 갑, 우리들 속에 있는 '에마뉴엘 부인'에 대한 호기심만 얼핏 엿보고도 대경실색, 우리를 죄인취급 하려는 건, 학교에서 가끔 예고없이 우리의 주머니나 가방을 뒤져서 꽁초나 연애편지를 찾아내가지곤 사건 난 것처럼 우리를 망신 주고 수틀리면 퇴학이나 정학까지도 불사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에요. 엄마는 물론 담배보다는 '에마뉴엘 부인'이 더 용서할 수 없는 무도덕이라고 생각하시겠죠? 근데 왜 제 방에서 담배만 찾아내고 '에마뉴엘 뷰인'은 못찾아 내셨나요? 문맹도 아니면서.." 

 


 

음반법 개정안 마련 제작 업자에 체형도. 경향신문(1980.2.23).7면. 

정부는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법적규제를 신설하고 불법,불량음반제작자에게 체형을 가할 수 있도록 단속벌칙규정을 강화한 음반법개정안을 마련했다. 22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임시국회에 상정될 음반법개정안은 음반에 영상과 음이 함께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포함시키고 음반제작업체의 등록 취소요건을 강화, 등록을 취소당한 자는 1년 이내에 재등록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또한 단속공무원에게 불법불량음반을 적발, 수거할 수 있도록 새로 규정, 단속공무원의 권한을 법적으로 뒷받침했고 벌금형으로 그치던 벌칙도 강화, 2년 이내의 체형을 부과하거나 벌금을 현행 1백만원이하에서 3백만원 이하로 대폭 인상했다. 

김성녕(1980.2.26).VTR.경향신문.4면. 

하오 7시. 어둠이 깔린 서울의 신흥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H씨 집앞에 3대의 택시가 동시에 멈췄다. 10여명의 장년들이 그 집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돌 잔치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 집에서는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한 곳을 향해 시선들을 집중하고 있었다. 성인용 VTR을 보기 위해 퇴근 후 직장동료들이 몰려든 것.  

VTR, 곧 비디오테이프레코더는 TV화면에 나타나는 영화로서 성인용의 총아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돈푼깨나 있다는 집에는 한 대쯤 준비돼 있는 일종의 '스테이터즈 심벌'이기도 하다. 밤만이 아니다. 낮에는 그집 주부의 친구들이 요지경(?)을보기 위해 모여 들어 똑같은 장면이 벌어지곤 한단다. 이에 뒤질세라 아이들까지 어른들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안방에 들어가 슬쩍(?)해 본다니 문제는 여기서부터 벌어진다.   

김유경(1980.4.29). 유익한 문화정보 생생히..주한 문화원들-자국 문화영화 상영. 경향신문.4면. 

독일 미국 프랑스 문화원은 서울에 모여 있는 주한외국문화원 가운데 그중 활동이 두드러진 곳이다. 도서실 이용과 함께 여기서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영화나 영상녹화필름(VTR)은 해당국의 각 분야에 걸친 문화권을 생생히 보여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어 이용도가 높은 편이다. 영화상영의 경우 어느나라보다 번잡한 일정을 잡고 있는 프랑스 문화원은 68년 문화원 창설 당시 매주 2회의 필름을 상영하던 것을 74년부터는 연 72편으로 늘려 매일 4회씩 상영하고 있다. 프랑스 국내 제작회사 소유의 흥행권에 대한 상업성이 소멸한 영화를 16MM필름으로 복사, 각국의 문화원으로 보내지는 것인데 1940년대 영화에서부터 70년대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망라돼있고 작품수준 역시 형편없는 영화에서부터 화제를 일으켰던 수준작까지 다양하다. 

서울에서 보게되는 프랑스영화는 방콕을 중심으로 동남아권을 도는 필름 중 연초에 주한 프랑스문화원에서 선택해오는 것들이다. 매주 화,목요일에는 특별히 전문영화인을 위해 또는 보통 때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일반인을 위해 상영되기도 한다.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는 감독이나 작품을 대할 수 있어 긴요한 참고자료가 된다는 게 이용자들의 말이다.  

영화클럽에서는 감독이나 그 영화기법에 따른 관찰자료로 문화원의 영화상영프로그램을 애용한다. 모두 영어자막이 따라나와서 영화의 이해는 불어를 듣고 이해하거나 영화를 해독하는 층만이 감상이 가능하다.  낮은 천장으로 불편한 1백10석의 자리는 대부분 학생들로 메워진다. 이곳의 입장권은 1백50원. 

(중략)77년부터는 영상녹화기에 의한 비디오필름 4백80여편이 확보됐다. 최근에는 아비뇽축제 파리오페라단등이 비디오필름에 담겨 소개됐다.  (중략) 미국문화원은 불규칙적으로 매달 1회나 2회 '흘러간 명화'의 상영이 있다. 그러나 영상녹화기의 이용이 높고 16MM의 문화영화필름이 예술 경제 등 각 분야 별로 수백 편이 비치돼 있다. 
 

김상(1980.4.11). 늘어가는 비디오이용. 동아일보.5면.  

"아빠 우리는 비디오 안 사" 이웃집에서 VTR로 컬러만화영화를 신나게 보고 온 꼬마가 아버지에게 매달리져 졸라댄다. "생일날엔 꼭 비디오를 사달라"는 아들의 말에 김모씨(37.회사원)의 표정은 심각해진다. 특권층의 표상으로만 여겨오던 VTR가 언제부터 아이들의 입에서까지 오르내리게 됐을까. (중략) 1956년 개발된 VTR가 우리나라에 흘러들어온 것은 10여년전부터, 해외여행자 및 미군 부대등의 복잡한 루트를 통해 음성적으로 침투한 음향과 영상의 이 마술상자는 일부 특권층과 부유층으로 퍼졌다.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공급하는 프러덕션도 없을뿐더러 여러가지 정치 경제적 여건에 묶여 VTR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비디오를 갖춘 상류층에서는 일본에서 제작된 혹은 일본 프로그램을 복사한 외설테이프를 구입해서 돌리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라 비밀요정 등의 고급유흥업소에도 비디오를 설치, 비밀영화관을 차리게됐다. 

그러다 7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VTR의 대량생산으로 가격이 1백50만원 정도로 다소 떨어지고 대중의 관심이 쏠리자 VTR는 대중업소에도 등장했다. 낙지집 주점 다방 등에 설치된 VTR는 주로 일본의 스포츠나 쇼프로그램을 복사한 것. 청소년들은 비디오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두컴컴한 '청소년출입금지구역'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어 자막에도 별 저항을 느끼지 못한 채 저질테이프에 몰두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VTR의 건전한 이용도 시도되고 있다. 요즘 고급주택가나 호화 아파트 주변의 유치원에서는 "비디오가 있어야 유지가 된다"는 말까지 생겼다. 동기야 어쨌든 이렇게 설치된 VTR는 유희 등의 유아용테이프를 사용, 교육에도 이용되고 있다. 또 회갑이나 결혼식의 모습을 비디오 카세트에 담아주는 대행업소도 늘어나는 추세. 주로 아파트촌과 고급호텔예식부를 무대로 활약하는 이들 잔치녹화업자들은 건당 5만~8만원씩 받으며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고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는 못되지만 그런대로 VTR의 올바른 이용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이나 대학에서도 연수 특별교육용에 사용, 제방향을 잡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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