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매혈기 - 글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킨 한 평론가의 농밀한 고백
김영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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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문화원 막내 세대 중 - 영화에 관심이 옅은 관객이라면, 굳이 극장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취향이 독특한 관객일수록 점점 극장에 가는 것이 귀찮아지는 시대를 맞고 있다.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되면서 영화관에 모여 일종의 동지에를 갖고 영화를 즐기는 것이 점점 어려운 일이 돼가고 있다. 영화를 DVD 플레이어나 컴퓨터로 보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특정한 영화공동체도 사이버 공간으로 상당 부분 옮겨갈 것이다. 이럴 때 영화는 특유의 주술적 마력, 집단 최면의 감흥을 잃어버리는 대신 단속적인 관람이 가능한 다른 매체가 돼버린다.-17쪽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듯이 컴퓨터로 영화를 보다가 화면을 정지시킨 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메모를 할 수 있고, 보다가 흥이 떨어지면 다음에 볼 수도 있다. 서가에 꽂혀 있는 dvd는 책과 같은 기능(17)을 부여받은 채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게 된다. 이것이 영화의 미래를 위해 불행한 현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어쩌면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 대안의 영화를 꿈꾸는 이들의 또다른 창작수용공동체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각자 발품을 팔아 특정한 시간에 특정 공간에 모여 영화를 보는,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적극적인 관람의지는 당장은 드러나지 않아도 장차 형성될 영화 문화의 에너지를 위해선 여전히 중요한 행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17,18쪽

개인적인 체험으로는, 스무 살을 전후해 거의 출근하다시피 프랑스 문화원에 드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 초중반 무렵에는 영화를 보러 따로 갈 데가 마땅치 않았고 저질 시비에 휘말린 한국 영화나 <람보>류의 헐리우드 상업영화를 제외한 다른 영화를 볼 데라곤 외국문화원이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제작자가 된 모 시가 그 당시 프랑스 문화원에서 일하면서 토요일마다 일종의 시네클럽 비슷하게 모임을 운영했고 기술적으로 열악한 누군가의 단편영화를 상영한 뒤 그 자리에 참석한 청년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소아병적인 관념의 성찬이 대다수였지만 그때 그곳에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영화계로 유입돼 90년대 이후 한국 영화계의 일부를 차지했다. -18쪽

그 당시에 관한 기억은 꽤 많다.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들어온 어느 선배가 소중히 품에 지니고 들어온 오손 웰스의 <위대한 앰버슨가> 비디오테이프를 프랑스 문화원의 조그만 강당에서 프로젝트로 상영하고 난 후 자막도 없이 본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교환하느라 허름(18)한 중국 음식점방에서 술과 혼탁한 말들로 보낸 밤은, 훗날 돌이켜보면 허접한 말의 수준 때문에 창피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좀더 시간이 지난 후엔 미숙한 각자의 관념을 정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던 귀중한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것이다. -18,19쪽

그때 영화를 좋아하고 심지어 나중에 영화로 밥을 먹고살 욕심이 있었던 또래들 사이에선 영화 지식과 정보를 거의 백과사전 수준으로 지니고 있는 몇몇 청년들에 관한 전설이 돌고 있었고 문화원 시사실에서 그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면 과연 그들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 솔깃 귀를 세워 엿듣곤 했다. -19쪽

그 당시의 내게 외국 문화원은 일종의 시네마테크였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바로 이렇게 극장 안에서, 그리고 극장 바깥에서 조금씩 쌓이는 공동체의 우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훗날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인들이 20대 초반 시절 시네마테크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내공을 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느낀 동질감도 이와 비슷했다. 세상은 몰라주는 영화를 우리들만 발견한 것 같은 그 은밀한 희열의 축적 속에서 일종의 영화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21쪽

천대받던 미국 영화를 제멋대로 재평가하고 주류 언론에서 크게 대답하지 못했던 막스 오퓔스와 같은 감독에 열광하면서 새로운 비평적 기준을 세웠던 1950년대의 프랑스 청년들이 글로, 영화로 자신들의 영화관을 증명하고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영화에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발견하는 일, 거기서 새로운 의미와 감성을 건져내는 일, 그걸 오늘의 감성으로 번역해 재창조하는 일이 바로 이런 시네마테크,또는 그와 유사한 극장 체험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21쪽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은 서울아트시네마이지만 자주 가보지는 못한다. 그곳 프로그래머인 김성욱 씨와 사적으로 친하다면 친한 사이여서 사역 비슷하게 상영작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자리에 곧잘 불려나가는데도 그렇다. 가끔 그곳에서 관객들과 대화하면서 문득 현재의 시네필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동시에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 직업이 되면서, 그리고 가정사에 매달린 생활인이 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영화(21)를 덜 보게 된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보다는 집 서가에서 챙겨봐주길 기다리고 있는 dvd와 비디오에 더 눈이 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시점부터 이런 영화관람 공동체에서 완전히 이탈해버렸던 것이다.-21쪽

영화를 정말 열심히 보던 시절,나는 프랑스 문화원이나 서강대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극장에 걸리는 영화 이외의 다른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문화원밖에 없었으니까. 서점에 가면 옛날 영화진흥공사에서 발간한, 오자투성이의 엉터리 번역 영화이론서가 한 줌밖에 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대학 도서관에 서구의 영화이론서가 수백 권 꽂혀 있는 데가 별로 없었으니까. 나는 다분한 지적 허영기로 뜻도 모르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꽤 열심히 훑어보기는 했다.그때 몸에 받아둔 지식과 정보가 훗날 90년대 초에서 중반에 이르는 영화비평의 계몽주의 시대에 쓸 만한 먹고살 거리가 됐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제는 영화지식과 정보의 독점보다는 해석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영화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35쪽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고 있다. 감독도,관객도 함께 변하고 있다. 미국 영화계의 '신동 세대'를 대표했던 스필버그가 이제 할리우드의 어른이 됐다. 그 세대만 해도 전통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데이비드 린의 영화와 겨루고 싶다는 야심 말이다.이제는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 감독들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있다.나는 좀 애매하게 걸쳐 있는 인간이다. 60년대가 영화가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대라고 생각하며 그 시대의 감독에게서 오히려 동질감을 느낀다.-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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