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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텔레비전, 비디오, 그리고 이제는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네필'과 '영화광'을 섞어 쓰지만, 사실 영화사적으로, '시네필'은 고유의 의미를 지켜줄 필요가 있는 개념이다. '영화관에 가는 체험'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시네마'라는 개념 안에서, 영화광의 원초가 되는 '시네필'들은 늘 영화관에 '가는' 체험을 강조해왔다. 모두가 잘 아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전기를 보면, 그가 극장에 '가는'것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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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오프라인보다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요즘. 선거를 앞두고 유명 정치인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인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소멸하는 정치적 열정을 걱정하는 내 마음을 씻어버리는 수많은 이들의 어떤 열광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그래 차라리 온라인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이 기운을 이어나가기 위해 인터넷으로 전자 투표하는 세상을 빨리 만들자구!하는 상상. 그런데, 조금 더 생각을 가다듬어보니,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보는 게 제 맛이요, 투표는 투표장에 가서 하는 게 제 맛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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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들은 단순히 영화관 안의 어둠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봤던 연인들의 그 은밀한 동작들부터, 수많은 영화평론가, 그리고 영화감독들이 증언하는 영화관 문화 안의 흔적들. 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기, 티켓을 끊기, 옛날 분들은 오징어를 직접 구워 검은 봉지 안에 땅콩과 함께 넣어 갔을 것이며, 더 옛날엔 좌석에 붙은 껌딱지를 밟아 영화를 놓치고, 화장실 오줌 지린내에 기분을 잡친 채로 영화의 본모습을 잊고 나오는 추억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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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장'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영화관만큼 흥미로운 추억은 없겠지만, 줄을 서고, 약간 후덥지근한 날씨 안에서 선거로 인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사람들의 안내를 받고, 내 신분증을 보여주며, 투표용지 안에서, 누구를 찍을 지 이름을 확인하기. 그리고 몇 번을 접어, 투표함에 손수 넣어보기. 그리고 나오면서 느끼는 얇은 책받침같은 두께의 추억들 혹은 그것보다 더 두터운 스스로의 뿌듯한 보람이 담긴 추억으로서의 한 풍경.
투표, 그 '시네필'적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