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면서 순간순간 긴장감이라는 놈이 찾아올 때가 있다. '어제' 학교에서 밤을 새고, '다음날' '참참'을 만났는데, 혹시 밤샐 때 신발을 신은 채 꼬박 시간을 보낸 터라,  남은 발 냄새 때문에 신경이 쓰일라고 하면, 그 날은 유난히 신발을 벗는 식당에 가게 되는 상황. 그럴 때 긴장감 말이다. 사실 그것보다 더한 긴장감. 나는 예전부터 '굽기'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어릴적에 내 밥그릇에 딱 하고 얹어주셨다구!로 시작하는 그 ㄷㄷㄷ한 도입부!)

아마도 '외동아들 = 마마보이'의 등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나는  그 편견의 틀에 대체로 갇히지 않은 편에 속하는 것 같다. 또 정말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그래도 최근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어떤 순간이 있었으니, 그건 식당에서 친구들 여럿을 만나거나, 교수님을 비롯한 윗사람을 만날 때 내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고기를 구워야 하는 때다. 하루는 내가 고기를 어설프게 굽는 모습을 보던 어느 교수님은 "아이그, 태어나서 이런 걸 구워본 적이 없으니..."하면서, 내가 조각낸 고기 부분을 째려 보시며 본인이 직접 집게를 집으셨다. 그런 순간이 여러 번 닥치다보니, 최대한 약속 자리에 늦게 들어가거나, 어렴풋이 눈치로 '나잇밥'순으로 내가 나이가 좀 윗축에 속한 곳에 끼어, 남의 고기 굽기 실력을 평가하는 '꾀'를 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사랑하는 사람과 고기를 먹으러 갈 때면, 그런 꾀는 통하지 않았다. 뭔가 점수를 따고 싶은 생각도 있었던 것이 사실. 나는 '삼겹살 굽기'의 진리인 "삼겹살을 잘 굽는 사람은 한 번에 딱 뒤집어야 해'라는 말을 얼른 체득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미안하게도) '참참'은 늘 나의 연습 대상이 되어 주었고, 그녀는 군말 없이 나의 성장을 바라봐주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요즘은 다행히 "고기 잘 굽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결국 잘 굽기 위해서는 어떤 술수나 법칙이란 없다. 그냥 열심히 굽고, 여러번 구워 그것을 나름대로 자신감으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고기를 구워 먹는 시간이 오면, 손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왼손잡이인)나의 집게 든 모습을 보고, "야, 너 왼손 쓰냐"하며, "그럼 그렇지"하는 판에 박힌 물음과 대답도 들어오고, 고기 굽느라 신경 못써 검은 옷 입혀버릴까 걱정되는 마늘놈 생각도 나고, 그러다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삼겹살집에 가면 당신은 늘 굽느라 정신없는 모습에 같이 나오는 된장찌개로 배를 채우는 아버지의 그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어머니는 더군다나 채식주의자라 연습도 제대로 못하셨을텐데. 아버지는 자신을 연습 대상으로? 

아버지와 정겹게 같이 고기 먹은지가 참 오래다. 

가끔씩 장 보러가는 길, 슈퍼 옆에 붙은 갈비집 투명창에서 서로 고기를 먹여주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일 때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남자분의 모습과 고기와 남자를 번갈아가며 흐뭇하게 쳐다보는 여자분의 모습을 볼 때면, 그 고기는 타도 맛있을 것 같다.

좋을 때다..하며 나도 모르게 영감 소리를 하고 나서, 예비군 홈페이지를 들어갔는데, 나 이제 예비군 훈련 받는 것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확인. 

어머나. '씨망' ㅡ.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02-26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3-04 17:49   좋아요 0 | URL
결국 그 집은 씨망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