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문화연구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느꼈던 것은 교수나 학생이나 똑같은 유령에 홀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령은 한 때 나도 홀려있던 것이기도 했다. 2008년 수업 시간과 연구실에서 나는 동기들에게 '민속지학의 강령'을 외쳤다. 그것은 한때 나의 확신에 찬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그 신념, 그 강령은 무엇이었던가. "아, 우리는 삶과 동떨어진 연구를 하고 있어. 이론의 틀에 우리 너무 얽매여있는 것 아냐? 우리 삶에 더 신경을 쓰자. 우리 더 현장에 가까이 가자구!" 그런 외침이 한때나마 행복감을 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갈수록 그 강령은 내 지성의 힘을 소모시켰다. 2009년 그때 나는 슬럼프였던 것 같다. 다들 질적연구방법론 시간에 "선생님, 우리가 기자와 다른 것이 무엇이죠?"라고 하며, 연구자 스스로의 정체성에 회의감을 표출할 때 쯤이었다. 나 또한 그 회의감 표출을 거들었지만,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편치 않은 것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이론에 대한 갈구'. 그러한 갈구가 바로 찾아오지 않은 것은, 상식적인 문제였다. 즉, 이론은 늘 삶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이것만한 오류적 신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현재 내 입장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세미나에서 교수들은 모두 미셸 드 셰르토의 강령에 취한 듯 했고, 너무나 상식적인 분위기에서 상식적인 멘트를 즐기며, '이론의 부정'을 쉽게 내뱉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장에 대한 눈치가 강했다. 그들은 촌스럽게 '거리(distance)'로 이론을 부정하며, 기술(description)친화적인 발언을 해댔다. 그러나 과연 이론과 기술이라는 것, 특히 민속지학자들이 늘 강조하는 그 '거리감'의 문제가 이론의 거리와 기술의 거리를 조정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시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론이 삶과 멀리 있다는 신화는 깨져야 한다. 오히려 더 깨져야 할 신화는  삶의 '기술'이 더 그들의 삶을 가깝게 조망할 수 있다는 신화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민속지학자들이 늘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문구들이 다시 나오자 발끈한 것이다. "이론적 개입, 해석의 틀이 연구대상자들의 생동성을 죽이는 것 같습니다"라는 지적 말이다. 그것만한 진부한 문제제기는 없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이론적 개입에 눈치를 봄으로써, 민속지학자들이 결정적으로 범하는 오류가 있다.  

그것은 '기술'과 '이론'을 통해 채워진 그 현장성에 대하여, 연구자들이 자신이 세워 본 가설과 이론의 '엇나감'을 초래한, 현장 내 우연성을 마치 연구자 스스로의 성찰성으로 지나치게 신념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이론은 논문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도구적 대용물로 전락하고, 수사적 전략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서 결국 문화연구의 성찰게임을 즐기는 자들은 문화연구의 이론이 부재하다는 관행적 지적을 즐기고 있다니. 

한국 문화연구자들, 특히 민속지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론을 설정하는 부분, 개입하는 부분에 있어 그 이론적 깊이에 대한 지점들을 더욱 심도있고 강력하게 추구해야 한다.  그러한 추구가 이루어지 않으면, 민속지학은 '인본주의적 소비'에 갇혀, 연구대상자에 대한 연애편지만을 쓰는 사태를 계속 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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