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00240.html 

-> 아바타에 주눅든 '한국영화 3D 딜레마' 

지난 주에 가장 닭살 돋았던 기사는 한겨레의 <아바타에 주눅든 '한국영화 3D 딜레마'였다. 이제 이런 구도의 기사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내 스스로에게 일깨우기보다는 언론의 게으름을 탓하고 싶다. 마치 문화를 하나의 '침입'으로 보는 이러한 시선에 동조하며, 아이맥스관에 뱀이라도 풀어놓고, 삭발 투쟁이라도 해야할까.  

방송에서도 <아바타>에 대해 연일 찬사를 보내며, 우리도 영화 테크놀로지에 신경쓰자고 종일 외쳐댄다. 근데 말이다. 테크놀로지의 혁신이 영화사에 한 켠에 쭉 자리를 차지할지는 몰라도, 그 혁신으로 말미암아, 영화 관객들이 그동안 지켜왔던 어떤 본질에 대해 손을 놓을 것이라는 점, 혹은 그동안 지켜왔던 가치관, 수용 방식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애정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만큼이나 어리석은 이야기는 없을 듯하다. 그것은 지나친 설레발임을 우리의 역사는 그동안 증명해줬다. 

하지만 문제는 '쌍팔년도식' 발언으로 아직 살고 있는 영화인들 많네?라며 영화계를 질타하기에 앞서, 이러한 프레임을 일찍 만들어 놓고, 그런 대답으로 사람들의 향수를 자아내려는, 이 미디어의 태도다. 그들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문제화를 시키기보다, 이미 문제화를 다 시켜 놓고, 목소리를 '딴다'. 고로 봉준호의 저 말(캐머런이 전 세계에 민폐를 끼쳤다)도 왠지 앞,뒤 다 자르고 한 것 같다. 한 유명 감독의 유머로 인식이 되는 저 말도, 왠지 80년대 민족주의 영화비평의 그 세계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마치 모든 영화에 3D의 외피를 입혀야할 것 같다는 설레발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런 외피를 입혀야 '살아남는다'는 그런 '공포 효과'는 그만 보여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 시간에 <500일의 썸머>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창의성,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보여주는 진정성 담긴 오마쥬를 심층적으로 다뤄주길 바란다.  

다른 한 편으론 <아바타>를 둘러싼 논쟁에서, '이야기가 진부하다' 대 아니다의 갑론을박도 왠지 식상한 풍경이다. 차라리 우리는 그런 식상한 풍경의 한 축을 담당한 이들을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게 응원하기보다는, 그런 식상함이 왜 매번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스스로 솔직하게 한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런 측면에서 김봉석도, 정성일의 코멘트도 조금은 아쉽다. 언제까지 '이런 영화'에, '이야기의 혁신'같은 안티테제로 맞설까. 그 대항의 논리가 너무 녹이 많이 슨 느낌이다.  

'이런 영화'앞에 정말 필요한 자세는 대중들이 나에게 또 '에그, 이 사람 평론가란 사람치고 나보다 분석안이 시원찮네"라는 걱정에 미리 주눅 든 평자의 공포가 아니라, "이런 영화 앞에, 나 정말 영화비평 못해 먹겠다"라는 또 다른 인상적인 '비평의 공포'가 아닐까. 차라리 한 번 속 시원하게 망한 자신의 모습을 비평에 그대로 실어보는 건 어쩌면 지금 우리 영화비평계에 필요한 혁신일 것이다. 그런데, 모두 자기가 똑똑하지 못한 비평가라는 욕을 먹을까봐, 있는 비평의 언어에서 있는 것만 챙겨먹느라 바쁘다. 불쌍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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