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산에 대하여 - 자크 비데 서문 동문선 문예신서 346
루이 알튀세르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7년 10월
절판


이것이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대이론가인 그람시가 옹호하는 주장이다."인간은 누구나 철학자이다"라는 것이다.그람시는 흥미 있는 세부적 내용을 제시한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민중 언어에서 "철학적으로 사태를 대한다"는 표현은 그 자체가 철학에 대한 어떤 관념을 포함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이 관념은 합리적인 필연성에 대한 관념과 연결되어 있다. 고통스러운 사건에 직면하여 "사태를 철학적으로 대하/는"자는 거리를 두고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자이다.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사건의 필연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에는 수동성의 요소가 있을 수 있다고 그람시는 말한다.('철학자이다'는 말은 '자신의 정원을 가꾸며,'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자신의 일이나 하고' 자신의 관점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또한 대개의 경우 필연성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며 이러한 체념 속에 틀어박힌다는 말이다. '사태가 잘 해결되길' 기다리면서 자신의 내적인 사적인 삶, 자신의 작은 일들에 파묻힌다는 것이다).-41~42쪽

우리는 대문자 철학이 항상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겠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사회들에서만 대문자 철학이 관찰된다. 1.사회적 계급들(따라서 국가)의 존재 2. 과학들(혹은 과학)의 존재 -46쪽

즉시 지적해야 할 것은 마르크스가 '사회'의 개념을 매우 일찍이 (1847년에 <철학의 빈곤>에서 프루동과 가진 논쟁에서부터) 비과학적인 것으로 배척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용어는 도덕적, 종교적, 과학적 울림이 과부하되어 있다. 요컨대 그것은 사회 구성체(마르크스, 레닌)라는 과학적 개념으로 대체해야 할 이데올로기적 개념이다. 단순히 하나의 낱말을 다른 하나의 낱말로 대체하자는 게 아니다. 사회 구성체의 개념은 과학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라는 관념적인 개념이 연결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개념들의 체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념들의 이론적 체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생산 양식이라는 개념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이 개념 체계를 개진할 수는 없다. 다만 각자 모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할 수 있는 점은 하나의 사회구성체가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구체적인 사회를 지칭한다는 것이고, 그같은 사회는 개별화되어 있고, 따라서 그 사회에서 지배하는 생산 양식을 통해 여타 동시대의 사회들 및 그 자신의 과거와 구분된다는 것이다. -54쪽

생산 양식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르크스가 한편으로 생산력이라 부르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생산 관계라 부르는 것 사이의 통일체이다. 따라서 각각의 생산 양식은 그것이 지배적이든 피지배적이든, 그것의 통일체 안에 고유한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소유하고 있다. -56쪽

하나의 생산 양식이 지닌 생산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등장시키는 복잡하고 정연한 판의 통일체에 의해 구성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노동 대상(단순한 바람이나 흐르는 물이 되었든 어쨌든 '손에 넣거나'-중력처럼- 이용해야 하는 자연적 에너지를 포함해) 여러 형태의 자연뿐 아니라, 무엇보다 수동적 원료(광물)와 활동적 원료(짐승, 땅)
- 생산 도구 - 직접 생산자(혹은 노동력). 마르크스는 노동 대상과 노동 도구(혹은 생산 도구)를 합쳐 생산 수단이라 부른다. 마르크스는 노동 과정의 행위자들 전체, 그러니까 비/협동 노동이나 협동 노동에서 요구되는 형태의 기존 생산 수단을 기술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개인들 전체가 수행하는 활동의 다양한 형태들 전체를 노동력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러한 용어들을 다시 고찰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문제의 등식을 갖게 된다. 생산력 = 생산 수단 + 노동력으로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 이 모든 것을 일정한 하나의 생산 양식을 위한 것이다. -62~63쪽

하나의 정해진 생산 양식에 고유한 생산력과, 다른 한편으로 하나의 구체적인 사회 구성체 안에 존재하는 생산력 전체를 분명히 구분하는 것은 이미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독자는 이해했을 것이다. 사회 구성체에는 지배적인 생산 양식 아래 여러 개의 생산 양식들이 존재하는 것이다.-63쪽

자본주의의 생산 양식은 제1의 목표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물건들의 생산이 아니라 잉여 가치의 생산과 자본 자체의 생산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동력은 이익의 추구라는 일반적인 표현이 표현하는 것이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동력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물건들을 생산하는 수단을 통한 잉여 가치를 생산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생산 수단을 통한 착취의 중단 없는, 따라서 확장된 증대이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물건들의 생산은 잉여 가치에, 다시 말해 자본의 확장된 생산에, 마르크스가 '가치의 가치화'라 부르는 것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중략) 이 생산 양식은 다음과 같은 단 하나의 유일한 목적으로 노동력이라는 그 상품의 구매를 통해 재화들을 상품으로 생산한다. 즉 초과 생산의 가치와 임금의 가치라는 두 가치 사이의 불평등한 게임을 통해 노동자들로부터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것, 다시 말해 갈취하는 것이다. -73~74쪽

우리가 노동의 사회적 분할을 통해 지칭하는 것은 생산 과정의 내부 자체에 있는 착취 관계로서의 생산 관계의 효과이다. 우리의 적은 다시 한번 동일한 것인데, 다/름 아닌 우리가 경제주의적이라고 부르면서 특징지을 수 있는 기술지상주의적-기술관료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이다.-75~76쪽

엔지니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하물며 경영진이 되는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 박물관의 전시품 같은 것이 된다. 이 전시품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믿게 하며, 사회적 계급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자로 태어나고 노동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계급을 넘어서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만들기 위해 전시된다. 매우 단순하고 적나라한 현실은 이런 파렴치한 전시에 항의한다. 노동자의 엄청난 다수는 종신토록 노동자이다. 그 반대가 훨씬 맞는다. 즉 엔지니어나 고위 간부는 재앙적인 경제 위기가 닥친 경우를 제외하곤 결코 노동자의 조건으로 추락하지 않는다.-79쪽

동시에 법은 포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실상의 어떤 법률적 발견으로 허를 찔리지 않도록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가능한 사례들의 포괄을 지향하는 규칙들의 체계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발견을 통해 체계의 완전성을 저해하는 비법률적 관행들이 법 자체 안으로 도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8쪽

법은 기존 생산 관계에 따라서만 존재한다. 법은 생산 관계에 따라 존재하는데, 이 생산 관계가 법 자체에 완전히 부재하는 조건이 충족됨으로써만 법의 형식, 다시 말해 그것의 형식적 체계성을 지닌다. 법 자체가 완전히 빼버린 내용(생산 관계)에 따라서만 존재하는 법의 이런 이상한 상황이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고전적 표현을 설명해 전다. 즉 법은 그것의 규칙 체계 속에 이 생산 관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러니까 그것을 감추면서 그것을 표현한다. -110쪽

국가는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주의 고전파가 국가 장치라 부르는 모든 것이다. 우리가 이 용어를 통해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법률적 실천의 요구에 입각해 그 존재와 필요성을 인정한(좁은 의미의)문화된 장치, 즉 경찰-법원-감옥뿐 아니라 군대를 말한다. 군대는 '국가 방위'의 기능(프롤레타리아는 이 경험의 대가로 피를 흘려야 했다)을 넘어서 경찰(그리고 보안 기동대와 같은 전문화된 경찰 조직들)이 사건을 감당하지 못할 때 최후의 보급 진압군으로 직접 개입한다. 이 모든 것 위에 국가 장치로는 국가 원수, 정부와 공무원들이 있다. 이런 형태로 제시된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 이론은 본질과 관련되고 있으며 이것이 본질이라는 점을 단 한순간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125쪽

국가의 제1문제는 국가 권력의 보유 문제이다. 모든 정치적 계급 투쟁은 이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55쪽

국가 장치는 다음과 같은 두 유형의 장치들을 포함한다. 1) 억압적 국가 장치(정부, 행정 조직, 군대, 경찰, 전문화된 진압 조직, 치안유지군, 법원, 사법관, 감옥 따위). 이 장치는 중앙집권화된 유일한 기관이다. 2)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우리의 사회 구성체에서 교육, 종교, 가족, 정치, 노동조합, 정보, 문화 등에 속하는 장치들). 이 장치들은 다양하고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며, 국가 이데올로기의 전체, 혹은 부분을 통해 분명한 체계로 통일되어 있다. 억압적 국가 장치는 (물리적 혹은 비물리적)억압에 따라 지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은 이데올로기에 따라 지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156쪽

노동자 계급의 정당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체계의 게임에 (수정주의적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법이 존중되면서도 회피될 수 있는 가능성에 달려 있다. -183쪽

국가는 국가 권력하에서 한편으로 억압적 국가 장치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이다. 국가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의 통일성은 국가 권력을 보유한 자들의 계급 정치에 의해 확보된다. 이들은 계급 투쟁에서 직접적으로는 억압적 국가 장치를 통해,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 속에 국/가 이데올로기의 구현을 통해 행동한다.-217~218쪽

이데올로기는 상상적인 임기응변적인 물건과 같은 것이고, 완전하고 실증적인 유일한 현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존재를 물질적으로 생산하는 구체적, 물질적 개인들의 구체적 역사라는 현실의 나의 잔존물들에 의해 구성된 비어 있고 헛된 순전한 꿈이다.-268쪽

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이데올로기가 부인하는 그 부정이 이데올로기의 효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나는 이데올로기적이다"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293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이 완벽하게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더 이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모든 주체들의 의식 속에 생산 관계를 재생산하지 못하게 될 때, 그때 다소간 심각한 이른바 '사건들'이 터진다.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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