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폴리테이아 총서 1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5년 9월
구판절판


상품시장에서 소비자의 이탈은 상품공급자인 기업에게 소비자의 선호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자기조정의 효과를 갖지만, 선거시장에서 유권자의 이탈은 정당이라고 하는 정치기업에 변화를 강제하는 효과가 약하다.-24쪽

나는 해방 이후 국가의 특징을 정의하기 위해 '과대성장국가'라는 개념을 사용한 바 있다. 이것은 원래 파키스탄의 정치경제학자 함자 알리비가 탈식민사회의 국가를 분석하는 데 사용했던 개념이다. 그것은 식민통치를 위해 제국주의 국가의 잘 발달된 국가기구가 식민지 사회에 이식된 결과, 독립 이후에도 경제적 토대나 사회적 기반보다 과도하게 강한 국가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55쪽

1960년대에 이미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고리 핸더슨은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말로 한국사회에서 모든 사회적 자원과 가치가 서울과 권력의 정점으로 집중하/는 현상을 한국정치의 가장 큰 특징으로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핸더슨의 집중화테제는 유교적 관료문화를 거의 유일한 동인으로 강조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59~60쪽

결빙효과 :립셋, 로칸이 서유럽 정당체제의 형성과 관련하여 사용한 개념. 대중정치로의 이행기였던 1920년대에 형성된 정당체제가 이후 장기간 지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63쪽

이승만 대통령의 제1공화국을 사인적 권위주의 권력이라는 의미에서 '세자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중략) 제도화된 정부구조 안에서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야당은 권위주의 정부의 '충성스런 야당'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야당은 제도화된 정치권 밖에 있는 시민사회로부터 운동의 형태를 띠고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정부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약해지거나 그들의 태도가 비판적이 될 때 국가기구를 통해 억압의 정도를 높이는 과/정, 즉 권위주의화 없이는 유지될 수 없었다. 이는 헌법을 포함하여 제도는 민주주의적인 반면, 정치적 실천은 권위주의적인,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기묘한 결합을 만들어 냈다. -66~67쪽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 도입되고 실천된 민주주의의 주요 특징의 하나를 조숙한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조숙하다는 의미는 한국인들이 역사,문화,의식면에서 서구인과 같이 민주주의를 할 수준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빨리 민주주의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최초 도입의 국내 정치 세력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주도했던 분단국가 형성 과정에서 하나의 제도적 세트로 도입되었다. 즉 민주주의는 분단국가의 제도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토착적 기반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그 제도적 형식만 들어온 필연적 결과, 그 내용을 채울 역사적, 정신적, 이념적 면을 결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71쪽

이념적 불러내기 :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사회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이 동원되고 접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루이 알튀세르의 개념으로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종속적인 주체로 호명되면서 지배의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 사회에서 지배적인 구조나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단순히 생산관계상의 계급구조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나 이데올로기와 같은 상부 구조의 중층적 결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정치사회 : 그람시, 토크빌 등이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중간층위로서 설정한 개념. 코헨, 아라토, 린츠 등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사회는 정당, 정치조직 등 공적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정치 세력들로 구성되고,그 핵심적인 제도는 정당, 선거, 선거규칙, 정당연합, 의회이며,정치체제 구성원들이 공공권력과 국가기구에 대한 통제력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경쟁을 위하여 스스로를 특수하게 조직하는 영역이다.-79쪽

198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 정치학계에서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 사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등장한 군부권위주의정권의 발생원인을 이론화한 오도넬의 BA(관료적 권위주의)이론의 1972년 유신체제 성립에 적용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둘러싸고 활발한 논쟁을 벌인 바 있다. 그의 BA모델은 수입대체산업의 고갈과 산업구조의 심화라는 경제적 변수를 통해 권위주의체제가 성립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다시 말해 수입대체산업화가 가져왔던 내수시장의 성장을 통해 사회의 광범위한 계층을 끌어안는 민중주의동맹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산업 구조의 심화단계에서 해체됨에 따라 정치적으로 활성화되고 전투적이 된 민중부문을 억압하기 위해 민간경제부문 군의 테크노크라트, 외국의 다국적기업을 주축으로 한 쿠데타동맹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로 권위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중략) 관료적 권위주의이론은 유신체제발생을 둘러싼 인과적 설명보다는 유신체제의 통치양식으로서 더 설득력을 갖는다고 하겠다.-83~84쪽

립셋으로 대표화되는 근대화론은 간단히 말하면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은 중산층을 성장시키며 교육과 문화적 태도의 확산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가치가 널리 수용되고 정치참여의 증대를 가져오며, 사회적 갈등을 제도화하여 갈등과 통합의 변증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84쪽

민주주의 공고화 : 쉐보르스키의 정의에 따르면 주어진 정치적, 경제적 조건하에서 특정한 제도들의 체계가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임이 되었을 때, 즉 어느 누구도 민주적 제도 밖에서 행동할 수 없는 상황, 패자가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패배한 바로 그 제도 내에서 다시 경쟁을 시도하는 것 뿐인 상황을 일컫는 개념이다.-87쪽

지시적 개념 : 1950년대 이래 프랑스의 경제개획 모델을 지칭하는 개념. 이는 정부의 고위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사기업에게 성취할 목표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목표를 제시해주는 방법을 통하여 운/용되는, 사회주의식 계획경제와 자유시장경제 사이의 어느 중간에 위치하는 경제체제이다. 지시적 계획은 어디까지나 고위정부관료와 대기업의 경영진 사이의 자발적 결탁행위가 본질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과 조직 노동의 대표들은 배제된다. -90쪽

산업화 시기 한국의 국가는 BA이론에서 말하듯이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활성화된 민중부문처럼 사회의 강렬한 반대세력과 대면하지도 않았고, 체제변화의 사회적 기원이론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지주계급과 도시의 상업부르주아지 등 그 어떤 강렬한 세력과도 대면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 시기 국가주도의 빠른 산업화는 바로 이런 조건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군부 엘리트가 주도한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부와는 달리 지지를적극적으로 동원했다. 그 핵심적인 수단이 고도성장을 통한 산업화이다.-92쪽

박정희 정권 하에서 경제기획원으로 대표되는 경제관료체제는 1920~70년대까지의 일본 통산성과 거시경제 기획 및 집행과정에서 경제 관료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경제관료가 단기적인 정치적 사이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적인 국가경제의 이익을 위해 행위할 수 있는 자율성을 충분히 누렸던 것은 아니었다. (중략)즉, 정치(권력)의 논리가 경제관료의 기술합리성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97쪽

기술관료적 경영주의 : 막스 베버의 관료주의의 목적합리성과 현대 기업조직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경영적 원리를 결합한 개념. 수단적 가치와 효율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조직 및 조직운영의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비정치적 내지는 반정치적 가치를 핵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기술관료적 경영주의는 사기업조직과 정치적인 권위주의체제와 잘 상응한다. 사회의 다양한 이익 갈등에 기초하고 이를 조정하고 타협하며, 효율성보다는 갈등의 조정과 통합을 중심 원리로 하는 민주정치의 특성과는 상반된다. 엘리트 내지는 전문가 중심의 폐쇄회로식 결정방식과는 달리 결정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이 공적 통제하에서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민주주의적 정치과정 및 정책결정과는 정반대되는 조직이나 제도의 운영원리이다.-109쪽

한국의 민주주의 이행을 운동에 의한 민주화라고만 규정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협약에 의한 민주화, 두 과정이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전적으로 운동에 의한 민주화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것은 정치 엘리트간 협약에 의한 것이었다. -127쪽

위로부터의 개혁 : 한국정치체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분리된 상황에서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을 배제한 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여 개혁을 수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람시와 무어가 사용한 수동 혁명, 위로부터의 혁명, 보수적 근대화와 같은 의미-128쪽

편향성의 동원 : 사츠슈나이더는 모든 형태의 정치조직들이 특정 종류의 갈등에 대해서는 선호하는 반면, 그외의 갈등에 대해서는 그것을 억압하려는 성향. 즉 일종의 편향성을 갖게 된다고 말하면서, 이를 편향성의 동원이라고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정치사에서 계급 갈등의 상쇄를 위해 인종 갈등을 이용하거나 급진적 농민운동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지역 갈등을 이용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131쪽

민주화로 인한 국가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국가를 두 수준으로 나누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하부구조적 수준에서의 국가이다. 우리가 보통 국가를 항상적으로 제도화된 역할의 체계라고 말할 때 그것은 권력의 중앙집중화를 구현하는 방대한 관료기구와 이를 운용하는 국가기구의 관리자로서의 인적 집단을 말한다. 베버가 말하듯이 그것은 비인격적, 비개인적 충원, 공적 목표, 역할, 업적평가의 체계를 갖는 대규모 조직으로서 관료행정적 형태로 제도화된 체제를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한국의 국가를 강력한 국가라고 말할 때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 말한 국가의 하부구조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정부적 수준에서의 국가이다. 정부는 초헌법적 힘의 사용을 통해서든 경쟁적인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적 방식으로든 권력을 획득하고, 특정 형태의 방법으로 권력을 행사하며 국가기구를 운영하는 일단의 정치 세력을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권력의 획득과 행사 과정에서 사회적 지지를 조직하고 동원하고자 하는 특정의 이념적 정향 내지는 정책적 정향을 갖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53쪽

오도넬, 위임민주주의 : 위임민주주의의 경우, 대통령은 그 어떤 정당이나 조직화된 이해의 상위에 위치하고 의회나 정당, 법원은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방해하는 제도로 인식되거나 자주 이를 우회하여 정책결정과 변경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통령의 주도하에 정책의 수립과 변경이 쉽게 이루어지며, 집권 초 대통령의 정책을 사회의 조화로운 이익을 실현하는 것으로 환호되지만, 곧 정책집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비용의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둘러싼 반발과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제도화의 수준이 낮음에 따라 정책의 실패는 대통령 개인에게 그 책임이 돌아가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집권 초 높은 대중적 인기를 향유하다가 집권 말에 이르러서는 저주에 가까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163쪽

권위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시장은 크게 세 가지 특성을 갖는다. 첫째는 국가가 경제의 성장목표를 설정하고 여기에 민간기업을 동원하여 자원의 할당과 분배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한 국가주도성이다. 둘째는 이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육성된 소수의 거대 기업이 국가의 거시경제정책의 성장목표를 대리 추진하면서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재벌 경제체제이다. 셋째는 노동의 배제이다. 이는 생산적 자원의 할당과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나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에서 사회의 대표적인 생산자 집단인 노동의 참여와 대표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19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