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주의에 대해 불편한 어떤 부분을 갖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고, 내 불편한 한 부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590 

 관변 다문화주의 비판
‘포섭’-‘배제’의 모순 되풀이하는 국가동원체제
‘다문화’라는 이름뒤의 획일성·서열화 깨뜨려야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구사한 사회통제 시스템을 국가동원체제라고 부른다. 국가동원체제는 대중의 동의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국가 독재를 정당화한다. 대표적인 것이 새마을운동이었다. 1970년대 국가동원체제의 핵심인 새마을운동과 200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달구는 다문화주의 열풍은 기이하게도 닮아 있다. 첫째, 철저하게 국가 주도로 진행된다. 둘째, 대상 대중의 역량 강화와 사회 통합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분할통치(divide and rule)에 의한 내적 분열과 사회적 배제다. 셋째, 당사자들의 주체적 자율성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새마을운동의 이념과 조직은 철저하게 국가 주도로 위에서 아래로 전파되고 확산되었다. 이런 이유로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하에 수행된 모든 사업은 권위주의적이고 전시행정적’이었다. 그러나 명목적인 수준에서는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야 했기에 ‘대중동원적’ 성격을 띠었다. 다문화주의도 다를 바가 없다.

갑작스런 다문화주의 바람

한국은 반이민국가이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동질화의 압력이 강한 사회이며, ‘순혈’에 대한 강박을 바탕으로 전근대적 인종주의가 작동하는 사회다. 게다가 다문화주의는 유럽과 미국에서 퇴조하고 있는 정치철학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주의는 대유행하고 있다. 불과 2~3년 사이에 놀라운 속도로 주류 담론이 되어버렸다. 바로 국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다문화주의는 2006년 급작스럽게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공했다. 2006년 5월 개최된 ‘제1회 외국인정책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은 ‘다문화·다민족 사회로의 전환’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제시한다. 이후 각급 지자체를 포함하는 정부의 모든 부처는 ‘표류와 과잉’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련 제도와 시설의 선점 경쟁에 뛰어든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하는 다문화주의는 허구적이며 모순된 효과 이상을 낳을 수 없다. 국가는 국가 통합성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 이질적인 소수자 집단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의 입장에서는 소수자들의 ‘포섭’과 ‘배제’라는 상반된 작업이 일관된 통치 행위의 일환으로 수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혈통 중심의 편협한 국민주권 개념을 고수하는 한국의 경우 이런 문제는 좀 더 노골적인 형태로 발현된다. 한편에서는 다문화주의를 부르짖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들이 지원했던 ‘다문화’ 활동가를 가차없이 쫓아내야만 하는 것이 한국 다문화주의의 현실이다. 2009년 10월 23일 미누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다문화 사회에서 이주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서울 가이드라인’이 공표된 2008년 11월 12일, 마석가구공단에서는 법무부와 경찰 직원 280여 명이 투입된 ‘인간사냥’식 합동단속을 통해 13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붙잡혔다. 그 가운데 5명은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국가 주도 다문화주의의 위선적 양면성은 ‘다문화’라는 상징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다문화’라는 상징이 대중의 내면에 친숙한 일상성으로 착근되는 과정은 ‘새마을정신’이 내면화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새마을운동은 대중매체와 학교 교육 그리고 국가가 지정한 85개 사회교육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국가 주도 다문화주의 역시 다를 바 없다. 1990년대 10년간 다문화와 관련한 기사 건수는 총 235개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다문화주의가 공론화된 이듬해인 2007년 한 해에만 무려 2만7894건으로 급증했다. 2008년에는 3만6778건으로 더욱 늘어났다. 공익광고를 통해 다문화 사회는 ‘사랑하는 마음도 더 많아지는 사회’로 칭송된다. 다문화 시범학교들이 지정되고 다문화 교육센터, 다문화 복지센터,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 등 전국적으로 수백 곳의 ‘다문화’ 관련 기관들이 설립되어 운영된다. 법무부가 지정한 ‘ABT’(Active Brain Tower)라고 명명된 ‘다문화 사회통합 주요 거점 대학’만도 20여 곳에 이른다. 이 기관들을 중심으로 ‘다문화 전문가’, ‘다문화 복지사’, ‘다문화 멘토’, ‘다문화 전문 상담원’, ‘다문화 지도사’ 등으로 불리는 전문가 집단이 속성으로 양성되고, 수많은 의사(擬似) 자격증이 남발된다. 다문화를 주제로 하는 각종 행사와 강좌에는 자원봉사자와 수강생으로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렵다. 
 

새마을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명목적으로는 농민층의 자기 역량 강화와 사회통합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로는 농민층에 대한 차별적 접근을 통해 ‘농민층을 분해’시키고 국가 통제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새마을운동은 영세 소농에게는 오히려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적 강제로 작용했다. 한 월간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1960년대 전반에 농촌 인구 100명 가운데 13명이 ‘헌마을’을 떠났는데 1970년대 후반에는 해마다 37명이 ‘새마을’이 된 농촌을 떠났다.” 이 점에서 역시 다문화주의는 새마을운동을 꼭 닮아 있다. 영세 소농이 ‘새마을’에서 쫓겨났듯이, 이주민 역시 ‘다문화 마을’ 만들기라는 명목으로 추진되는 개발 프로젝트에 의해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있다. ‘다문화 특구’로 지정된 안산시 원곡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인위적인 개발 프로젝트는 이주민의 삶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뿐이다.

제2, 제3의 ‘미누’들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짐짓 이주민의 사회통합을 목표로 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분할통치 방식으로 이주민 공동체의 내적 분열과 인종적 서열화를 조장한다. 다문화주의에 의해 선진국 출신 이주자와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자, 비자 소지자와 만료자,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주자와 비국적 취득 이주자 사이의 경계와 위계는 더욱 엄격하고 뚜렷해진다. 이주민 공동체는 ‘선별적 포용’과 ‘폭력적 배제’의 대상으로 뚜렷하게 분리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 민족’ 역시 1세계 거주 에스닉(ethnic) 코리안, 남한인, 3세계 거주 에스닉 코리안, 북한 이탈 주민 등의 순으로 ‘인종적으로 서열화’된다.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혹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이주민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집단이다. 2009년 1월 현재 한국에는 64만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존재한다. 그 가운데 약 27%에 해당하는 18만여 명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들의 90%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근무한다. 내국인 노동자의 40~50%의 임금으로 하루 평균 11시간에서 12시간을 일한다. 2007년 이주노동자의 재해율은 1.01%로 한국 노동자 전체 재해율인 0.72%보다 훨씬 높았다. 그들은 ‘국내 노동시장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소중 제조업의 생존에 절대적 기여를 하는 한국 사회에 필수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의 대다수는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일회용 노동자’와 ‘불법 인간’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을 뿐이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2007), ‘거주외국인지원조례’(2007), ‘다문화가족지원법’(2008) 등 2006년 이후 제정된 일련의 이주민 관련 법령으로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단속 및 강제 퇴거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며 매년 말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미등록 체류자 합동단속을 통해 수많은 ‘미누’들이 강제 퇴거당한다. 2007년 한 해에만 2만2546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단속되었고 그중에 1만8462명이 강제 퇴거당했다. 대부분의 단속반원들은 사복 차림이다.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동의나 허락을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79.5%가 수갑을 사용했으며, 4.5%는 경찰 장구를 사용했다. 전자충격기와 그물총을 사용하는 경우도 2.9%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2003년 이후에만 무려 100여 명의 이주민들이 사망했다.

‘국가 관료’가 주도하는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농민은 ‘실질적 주체’가 아니었다. 농민의 자조적 민주주의가 강조되었음에도 농민의 ‘자율성’은 보장되지 못했다. 한국 다문화주의의 가장 큰 특이성은 바로 이 점과 관련된다. 한국의 다문화주의에는 이주민이 설 자리가 전혀 없다. 이주민 대중에게는 그 어떤 주도적인 역할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다문화주의가 공론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이주민 인구의 증가였다. 1990년에 5만여 명이 채 되지 않던 외국인 인구의 규모는 2007년에는 106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인구의 2%를 웃도는 규모였다. 이 시기를 전후해 ‘다문화·다민족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문제의식이 전 사회적 의제로 확산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문화주의 담론에서 이주민 자신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은 한국인들만이 결정한다. 그런 방식으로 획일적인 (곧 반다문화적인) 다문화의 규정, 자격, 기준, 매뉴얼이 작성된다. 이주민은 ‘온정과 연민’, ‘교육과 상담’의 대상일 뿐 결코 문화적 주체로 존중되지 않는다. 이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양자택일의 선택지만이 강요될 뿐이다. 한국인에 의해 주도되는 다문화주의를 수용하든지 혹은 거부하든지 둘 중 하나만이 가능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외적인 강제가 되어버린 다문화주의는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다문화의 주체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킨다. 자신들의 절박한 현실적인 욕구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왜곡하는 한국의 다문화주의에 대해 이주민 당사자들은 냉소적인 무관심과 침묵으로 대응한다.

성찰, 비판 그리고 재구조화

국가동원체제로서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다문화 사회’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여러 가치와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다문화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약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다름과 평등’이라는 가치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회다.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으며 ‘평등’을 이유로 동화를 강요하지 않는 사회, 다시 말해, 사회 구성원이 제 각각의 개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향유하되,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공유하는 사회가 다문화 사회인 셈이다. 이를테면 어떤 다수 집단(과 그들의 정체성 혹은 문화)도 ‘보편(표준)의 지위’ 혹은 ‘주류의 권위’를 주장할 수 없는 사회가 다문화 사회다. 물론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심’과 ‘표준’, ‘주류’와 ‘다수’의 위상을 누렸던 기존의 인식틀과 제도들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비판, 그리고 재구조화가 요구되는 탓이다. 그 핵심에는 민족국가를 재규정하는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구성원에게는 인위적 동질성을 강요하고 소수자에게는 자의적 차별을 자행하는 ‘표준화된 권위’의 근간이자 거점이 민족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민족국가를 재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문화 사회를 추구하는 철학이요, 정치 지향이요, 문제의식이자 전망으로서의 다문화주의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국가가 추구하는 목적 실현을 위해 행정 및 관변 조직을 최대한 활용해 국민을 동원하고 참여시키는 정치’적 슬로건일 뿐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위선과 모순을 정당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중의 동의를 동원한다. 대중에게 다문화는 친숙한 일상으로 내면화되지만, 정작 다문화 사회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이주민 공동체는 내적으로 분열되고, 한민족의 인종적 서열화가 이루어지며, 이주민의 자기결정권과 삶의 주도권은 더욱 취약해진다.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1987년 이후 쇠퇴한 것으로 평가되는 국가동원체제가 재가동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새마을운동이 그러했듯이 ‘정치·사회·경제적 위기를 관리하고 통치체제의 안정성을 도모하려는 목적’임은 분명하다. 만약 다문화주의를 재가동되고 있는 국가동원체제로 이해한다면, 다문화주의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 태도는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다문화주의가 보여주는 위선과 모순의 분열증은 서구적 이론과 개념에 의존해서는 이해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가동원체제의 맥락에서라면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국가 통치술의 일환일 뿐이다. 국가는 우리에게 ‘다문화주의’를 ‘강요’하고 있다. 전 국가적이며 전 사회적인 수준에서 ‘다문화’는 우리의 강령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결코 다문화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모두가 똑같아지고 있는 것이 싫을 뿐이다.

글·오경석
한양대학교 다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여러 동료들과 함께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한울,2007)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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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13: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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