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경향에 당대비평 신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대한 서평이 올라왔네요. 최재천 변호사의 글입니다. 혹시 민주당 전 의원? 최재천?  

원문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0912171045541&pt=nv 

 

공동체의 문제를 정치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로 풀어나가지 못하는 정치가 주범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바로 정치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무덤은 그 자체가 핑계이다. 죽은 자를 상징적 질서 속에 기억으로 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합당한 핑계, 그것을 망각하거나 기억하기 위한 핑계이다(김성태).” 이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할 것 같다. 며칠 전 용산참사 미사 현장에서였다. 신부님의 강론을 듣다 말고 나치 시절을 담은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떠올렸다. 당대비평 기획위원회의 사유 구조도 비슷했다. ‘당비의생각’ 3권이 ‘누구에게나 기억되는 죽음’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을 제재로 불길하고도 불편한 질문을 던져 왔다. 애도도 아니고, 회고도 아니고, 생뚱맞게 무슨 ‘기억’이냐고? “기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진작시키는 역할을 수행(정진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대의 젊은 논객들이 2009년 한국 사회 일상의 죽음 가운데 ‘정치적 공간을 배회하던 죽음’을 비판적 반성의 무대로 불러올렸다. 초혼제다. “죽음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삶의 정체성을 헤아리고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적 정치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보려는 의지(서동진)”에서다.

먼저 죽음의 성격을 정리했다. “노무현의 죽음이 ‘정치적’ 죽음이라면 김대중의 죽음은 ‘역사적’ 죽음이었다. 그리고 용산은 ‘정치 자체의’ 죽음이다.(엄기호)” 그렇다면 애도와 기억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떤 차이를 드러냈을까. “김대중과 노무현의 죽음은 기억할 만한/기억해야만 하는 죽음이었는 데 반해 용산의 죽음은 침묵되는 죽음”이었다. 용산은 애도를 거부당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됐다. 개인과 집단의 전반적인 삶 자체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시민이 되고자 했던 용산 철거민들의 투쟁을 “국가가 각 사람을 계급과 계층에 맞게 자리와 기능을 분배해 위계를 유지시키는 협상과 관리의 기술인 ‘치안’의 대상으로 환원(정용택)”시킴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여름 ‘6·9 작가선언’은 “용산 참사로 상징되는 ‘벌거벗은 삶’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작가들의 한 줄 서명으로 표명하면서 ‘이명박 정권 하의 한국 사회를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로 명명’했다(권명아).” 그렇게 해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만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그렇다면 용산의 불길을 회피해 온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는 어떠해야 한다는 걸까. 애도와 기억이면 되나?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부끄러움’ 역시 실상 ‘죄의식’이기보다 우울증적 증상의 변형(정용택)”에 불과하다고 했다. “애도의 광장에는 ‘종교’만 있을 뿐 ‘정치’가 보이지 않고, 그러므로 문제는 더 이상 ‘죽음’만이 아니(김성태)”라는 것. “슬픔의 연대만으로는 아직 정치학이 아닌 것처럼 애도 역시 아직 적절한 정치학에 이른 것이 아니(김영민)”라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를 정치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로 풀어나가지 못하는 정치가 주범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바로 정치다. 애도와 기억을 뛰어넘는 정치의 복권이다.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자기조직화(김원)”다. 이렇게 되는 순간 애도와 기억의 대상은 전복된다. “오히려 추모받아야 하는 이들은 노무현이나 김대중이나 용산 철거민 열사들이 아닌 살아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궁핍과 무지와 나약함인지도 모른다(송경동)”는 논리가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노여워할 줄도 모른다. 분노를 잊은 지 오래다. 이런 슬픔과 노여움과 수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오늘도 용산을 우회한다. 애써 망각하려 한다.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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