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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에이, 이 더러운 나라. 이민이나 가야겠다"라는 소리를 낸 이, "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욕해. 더러우면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이가 일치하는 나라. '다문화주의'라는 이름 아래,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하자면서도, 인터넷에서 국가 우열 순위를 매기며 한국과 동남아시아가 비슷한 레벨이라는 의견에, "어떻게 우리나라를 동남아시아 따위"에 비교할 수 있냐며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 우리는 이 나라를 괄호나 물음표로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노자의 책을 읽으면 늘 그렇듯이, 괄호나 물음표 안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집어넣게 된다.
"어떻게 네가 '한국인'이냐, '귀화인'이라고 말해야지"라는 책 속 에피소드가 말해주듯이, 어쩌면 우리는 박노자의 한국 비평을, '경계인'이라는 차원에서 소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박노자는 실제로 법적인 절차를 거쳐 한국인이 되었고, 우리는 이 '되었고'의 차원을 의식하면서, 그를 '타자'로 위치시킨 채, 그의 비평에 뜨끔하는지 모른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그를 상징하는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박노자는 '한국인'이지만, '비-한국인'이라는 상징성을 옆에 둔 채, 존재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 묘한 구분의 심리는 따가움을 느끼고 싶은 비평의 참 맛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박노자 개인을 '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위치 안에서 바라보려는 심리 또한 강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국가가 무엇이며, 민족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고, 그 경계 짓기에 아슬아슬하게 손을 뻗치거나, 아니면 내면 속에서 '과감하게' 그 '경계 짓기' 에 동참함으로써 비평 속 따가운 맛을 받아들이되, 여전히 너는 '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까주거라"고 하는 이상한 '주인의 심리' 또한 이 연약한 자아는 드러내고 만다.
'주인의 심리'라는 이 위험한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주인됨'은 마치 (한국이란 나라를) '중국- 일본- 러시아' 가 둘러싼 한반도라는 영토 안에서 나는 태어난 사람이며, '한국적인 것'이라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역사라는 학습 효과를 통해 '한국인 됨'을 가졌다고 인식하는 나를 둘러싼 존재 증명이리라 그러나 이 존재 증명은 다들 알다시피 매우 불안한 것이며, 확언할 수 없다고 본다. 고로 이 '주인됨'에서 오는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과 성찰은, 딱 듣고 싶은 만큼의 비판, 듣고 싶은 만큼의 성찰에 머무를 것을 무의식적으로 주문해 버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박노자를 존경하는 것은, 그는 바로 이런 나의 '주인됨'의 판타지를 무참히 깨는 회의적인 시선을 던진다는 점,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따가운' 비평어들을 과감히 끄집어 내어 그 '날 것'의 효용을 체험하라고 제안하기 때문이다. [박노자의 만감 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국민의 이중구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원자화'된 개인들이 국가에 대한 자발적 동의를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그 책임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면서도, '국가'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사태와 사건들에 때로는 그 개인의 책임의식을 '희생양'을 삼을만한 대리적 존재에 맡긴 채, '근거없는' 사회에 대한 힐난을 일삼기. 때론 그 힐난을 무마하기 위해, '국가적 쾌락'을 내면화한 '스펙타클한' 국가적 카니발리즘에 자신의 육체를 던지고, 그것을 긍정의 힘에 맡기기.
우린 이런 지적을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그 지적을 이성과 논리로 받아들이려는 경우는 적었다. 그 지적을 '외국인/ 한국인'으로 구분하면서, 비판의 자격을 따지는 게 더 일상화된 것은 아닌가."아무리 그래도 외국인이 우리나라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비판하는 거 좀 그렇지 않나요?"라고 심정적 동의를 구하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곳의 부정성을 '합리화'하려는 것에 우리는 더 친숙하지 않은가.
재범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자본주의의 무서운 힘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민족주의를 넘어선 자본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주문을 쉼없이 외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야! 네가 뭔데 우리나라(에서 돈 잘 벌면 되었지. 우리 그릇이나 빼앗는 주제에) 함부로 말해!" 사실 여기서 '우리나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정작 우리의 입술에서 '우리 그릇이나 빼앗는 주제'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독촉한다. 자본주의가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생기는 사태들에 대하여, 우리는 이 '정념의 상품'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