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논쟁'이란 말을 들으면, 뉴스에서 사람들을 '낚으려고' 너무나 쉽게 쓰는 '파문'이란 말을 대할때의 부정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이것들, 사람 또 낚으려고 하는구나"하는 그런 좀 못된 심보말이다. 이건 사실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한겨레나 경향을 보던 지인들이 어떤 논쟁들을 보면, 그 논쟁에 대해 '개입적인' 말을 하기보다는, 언론이 또 '괜히' 의제를 만들어보려고 안달이 났구나라는 반응이 의외로 많았다. 그래서 그 논쟁에 참여한 이는 '흥행 없는 배우'들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또 그렇게 '관중'의 위치에만 머무른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조정환-이택광의 '중간계급- 촛불' 블로그 논쟁이 아니었나 싶다. 최 원의 개입을 통해 달궈질 가능성이 농후했던 논쟁이었고, 흥미로운, 나름 유의미한 논쟁이었다고 보는데, 주변 반응은 그냥 두 지식인의 '팬덤' 대결이 아니었냐는 의견이었던 것 같다.  

예상보다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논쟁이 있으니, 그것은 요즘 <레디앙>에서 벌어지는 '체제 논쟁'이다. 나는 아직 20대고, 그렇기때문에 과거 '사회구성체논쟁', '한국 자본주의 성격 논쟁', '시민사회 논쟁' 등등 뜨거웠던 논쟁사를 역사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험한 세대이다. 하지만 요즘 워낙 이런 '생산적' 논쟁이 희소한지라, 옛날 그 뜨거웠던 논쟁의 나날들이 그리워진다. (사실, '그리워진다'라는 표현은 당시의 경험을 '글'로만 체험한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리라. 하지만 왠지 이 표현을 쓰고 싶어졌다. 일정한 양해를) 

사실 조희연 - 서영표 vs 손호철 구도에 머무른 채, <레디앙>에서 억지로 살려보려고 기를 쓴 느낌도 들지만, 그런 '불투명한' 의심은 하기는 싫고, 중간에 최 원 선생이 '지배어'의 생산이라는 고민의 의제를 잘 던져놓은 덕분에, 논쟁의 불씨는 계속 남은 형국이다. 이 논쟁 덕분에 얼마전 윤건차 선생의 <한국 현대사상의 흐름>을 다시 집어들어 정독했다. '레디앙'에서 본 조희연 선생과 손호철 선생의 사진을 보다가, 윤건차 선생의 문자 속에 새겨진 조희연과 손호철이라는 이름을 보니, (과장됨 없이)뭔가 가슴이 뜨끔하는 느낌이 들었다(미어진 기운보다는 약간 덜한). 그 뜨거운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그렇기때문에 그 뜨거움을 유지하고 싶은 이 지식인들의 열망, 욕망. 이 열망과 욕망이 가로새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짚을때마다, 그 어떤 사상과 이념의 적대를 떠나, 그 적대를 아우르는 지성에 대한 존경은 감히 숨길 수 없는 그 어떤 보존의 존재로 남는다는 것은 당연하리라. 

하지만, 이런 '추억의 경제'가 지금 이 논쟁을 '효율과 실리'에 머무르게 만든다면, 그것은 '탈정치'보다 더 못난 얼굴을 가진 게 분명하다. 고로 나는 이런 '생산적 논쟁'이 더 뜨거워지길 바란다. 사실  비평과 해석의 의미에 흠뻑 빠진 우리 젊은 세대에게, 진중권이 시사인에서 언급한 '제작학'으로서의 학문적 의식이 참 없다는 게 안타깝다. 늘 다가오는 현상의 해석에 힘을 쏟은 채, 그 현상의 모순을 극복해보려는 대안의 시간은, '당연한 말만이 돌아올 대답'을 해대는 '당연한 질문'의 시간으로 전락한다. (사실 고단수 선생들은 이런 젊은 제자들의 뻔한 질문질이, 제자들 그들의 '인정 투쟁'임을 안다. 그 인정 투쟁에 결국 '나'는 있고, 사람은 간과된다. 오 인간이 죽어있는 학문이여! 대학생들 반성하자!) 

그런 맥락에서 '체제 논쟁'은 현상 분석의 시간을 넘어, 현상 극복의 시간을 창발적으로 이야기해보려는 '장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태의연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다만 이승원 선생이 말한 것처럼(좀 더 정확히 말해 해석해보면), 이런 전략들이 지나친 '현실 정치와의 접점 형성'으로 간다면, 이론이 가진 '지속가능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리라 본다. 이 맥락에서 나 또한 조희연 선생이 던진 '어떤 민주주의인가' 그리고 최 원 선생이 언급한'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의제임을 고백해본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라는 개념에 이어,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개념 속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는 희망의 지속가능성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수사'가 되지 않길 바라며) 

조희연, ‘반신자유주의 연합’ 비판…"국민정치적 공간+반신자유주의"(9월 10일, 레디앙)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481

 

[조희연-서영표 비판] "97년체제론에 대한 왜곡에 답한다"(9월 16일, 손호철)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530

 

[논쟁-손호철 선생님께] 추상적 논의-경험주의 편향 넘기 위해(9월 23일, 서영표)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616

 

[서영표 교수에게] ‘공허하고 추상적인’ 체제논쟁의 이유(9월 24일, 손호철)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632

 

[손호철 선생께①] ‘반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정치’ 고민하자(9월 28일, 조희연)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662

 

[손호철 선생께②] “08년 체제는 87년 체제에 대한 역전”(9월 28일, 조희연)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670 

 

[투고-체제논쟁] 조희연-서영표와 라클라우-무페…김대중-노무현에 대한 착각(10월 5일, 최원)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733 

 

 [정치사회비평-체제논쟁] 민주후보-독자후보 논쟁 넘어 삶의 변화로(10월 9일, 이승원)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785

 

[체제논쟁] 최원씨에게…헤게모니 전략과 ‘민주주의적 변혁주의’(10월 19일, 조희연)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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