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문학평론가 권명아 선생이 제기한 문제,  왜 국문학이 이리도 '식민지 연구'에 매달리는가라는 문제는 요즘 국문학 수업을 청강하는 내게 흥미로운 사안이다. 몇 년 전부터 국문학, 역사학, 사회학 등등을 중심으로 '식민지 시기 연구'의 붐이 만들어지고 있다. 요즘 들리는 서점들 역사 코너에 가봐도 대부분이 이 시기 연구 저서들로 채워져 있었다. 알라딘 역사 파트 신간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해 있는 문화연구 진영도 요즘 '역사적 문화연구'라는 이름 아래, 슬슬 이 시기 연구에 동참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나는 좀 이런 분위기가 우려스럽다.  

권명아 선생이 잘 지적한 것처럼, 식민지 시기 연구의 과잉은 역사가 '현재의 진단학'으로 가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발굴'로서의 역사? 물론 좋지만, 그런 '발굴'로서의 역사가 역사 담론 속에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매개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요즘 연구자들이 그냥 '역사 연구'라는 큰 공간 속에서, 남들이 하지 않은 '소재'의 빈 틈을 찾아가는 것에 더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아마도 '논문'이라는 대학 사회 내 제도적  산물 속에서, 어떤 창의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발굴'로서의 역사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화살표가 서로를 겨누지 못하고, 난립의 상태만 조장하는 꼴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a라는 연구가가 한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은 그것 자체로 소비될 뿐, 그 이상의 반론과 논쟁이 붙지 않는 형국. 그러다보니, 역사 담론은 더 많이 증가될수록, 소비의 운명에 갇히게 되어버린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역사 담론의 과잉이 오히려 '비역사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사실 한국 사회가 '역사물'에 환호하고, 또 그런 환호가 실제로 많은지도 모르겠지만, 연구자들이 계속 '역사에 관심을 갖자'고 하는 말 속에서, 한정된 시기의 역사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되려 역사적인 것으로의 탈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오히려 그런 '과거' 시기 자체의 발굴에 집착함으로써, 우리는 역사에 대한 충실한 명제, 과거 - 현재 - 미래의 가교가 되는 역사의 개념을 잊으려는 것은 아닐까. 일상의 정치적 무기력함을 과거에 대한 신비스러움으로 치환해버리려는 것은 아닐까. 청강하러 들어간 국문학 수업 중, 젊은 연구자들이 너도나도 그 시기를 연구하겠다길래, 나는 좀 의아했다. 과연 당신은 그 시기가 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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