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원신문에서 우석훈 선생이 오늘날의 20대를 진단하는 기고문을 올렸다. 글의 말미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석훈 선생이 그동한 줄곧 주장해왔던 이야기인지라, 별 낯설음은 없었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상징자본'이 가장 많은 20대 대학원생들에게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을 걸어본다는 언급을 보고, 나는 그가 한국의 20대 대학원생들에게 행여 너무 큰 기대를 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물론 우석훈 선생도,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들이 교수들의 '시다바리'로 살아가는 그 인생을 모를리 없는 바, 그 부분을 얕게라도 지적해 준 것은 고마웠지만, 문제는 사실 오늘날 대학원을 둘러싼 존재의 여건들보다 '인식의 전환'이 얼마만큼 대학원생들 스스로에게 있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할 것 같다. 예전에는 대학생들에게 '지식인'이라는 명명이 참 친숙해 보였지만, 난 오늘날 대학원생들에게 이러한 표현을 붙여주고 싶다. '기능인'. bk 프로젝트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논문을 공장 기계돌리듯이 '찍어내는' 현실 속에서, 그 어떤 좋은 사유가 나올 수 있을까. 사회를 진단하고, 자신의 학문 영역 속에 뿌리 박은 고착된 불편함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긴 할까.  문제는 대학원생들 스스로도 '성과주의'와 학문의 장 안에서 내가 어떤 모델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지향점을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나머지, 자신을 둘러싼 학문적 환경의 다양한 문제와 제도의 생성에 대한 의식적 성찰을 거의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는 모든 20대 동료 연구자들이 자신의 '교육사'를 써보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학교에 들어와서 대학원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내가 반드시 청산해고 가야했던 것은 없었을까를 묻길 바란다. 이른바 오늘날 20대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연장된 폐해'를 거부하지 못하고,계속 가져간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대학교에서 대학원으로. 한 단계 밟아나가는 가운데, 그 어떤 습성의 존재들이 우리를 계속 '순응하는 아이'들로 만들어버린다. 나이는 점점 먹지만, '어린이' 그 상태로 머물게 하는 사회적 구조들. 머리에  든 이론의 조각들은  많지만, 그것을 사회 현실 속에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은 전혀 없는 사람들. 그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대학원생들이라면? 죄송하게도 나는 과감하게 말하건대, 이 질문에는 어느 정도 우리나라 대학원생들에 대한 어두운 기운이 깔려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들어갔다고 시인한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먹구름이 빨리 사라지길 그 누구보다 희망하지만,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오늘날 20대를 둘러싼 진단의 지형, '누구누구탓의 정치'로 돌린다면, 그것만큼 무책임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20대들은 새로운 지식들을 접속하는 능력만큼은 뛰어난 듯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론과 정보들을 '알고 있다고' 나타낼 수 있는 능력도 좀 괜찮은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지식의 정치학'의 부재다. 이것은 지식을 현실 정치와의 교전을 향한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지식을 늘 움직여줘야 하는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푸코의 통치성을 알았다고, 베버의 이해사회학을 알았다고, 부르디외의 장 이론을 알았다고.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가 의심할 수 없다고 여기는 지식들에 대한 의혹을 나타내야 한다. 그 다음, 그런 의혹의 태도와 더불어 우리는 우리 사회를 성찰할 수 있고, 부당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나라에서 대학원이란 곳은 단지 비싼 돈을 주고, 자신의 몸에 '지식 액세서리'를 둘렀다고 자랑하는 패션쇼 공간일 뿐일게다.  

독설이 이어져서 미안하지만, 나도 그렇고, 내 주위 대학원 동료들도 그렇고 이런 지식의 신상품들을 소유했다고, 지식의 액세서리를 몸에 둘렀다고 으시대는 '패션모델'들이 너무나 많은 듯하다. 지식 자체를 앎에서 그치고, 지식 자체를 내 안에 소유했다고 느끼는 데서 그치는 것을 너무나 잘 하는 오늘날 20대들의 현실 속에서, 우석훈 선생의 <88만원세대>또한, 기업의 면접 질문 중 하나로 들어가버리는 이 상황을,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정말 '정답'처럼 술술 외우며, 사유는 커녕, 성공하기 위한 진입의 기능적 도구로 이용해버리는 태도에 대해 그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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