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구원
자크 르 고프 지음 / 이학사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종교라는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직종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직종은 바로 '고리대금업'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가 종교 스스로를 사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대상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대상은 사람이며, 고리대금업은 사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관계가 존재하고, 그 관계성의 정도가 종교 내에선 하나의 '일거리'로 떠오른다. 그 일거리란, 곧, 신의 섭리 안에 사는 '당신'을 영원히 신의 축복 속에 놓아둘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축복을 주실 신의 넓은 아량과 은총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속적인 삶의 길들을 따르려는 '당신'에게 일정한 훈계를 할 것인가다.  

역사학자 루이 고척 같은 사람의 말처럼, 고대, 중세, 근대 같은 역사적 구분은 참 편의적이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시대적 구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역사적 구분이 가져다 주는 편의성에 기대지 말고, 더 심도있는 관찰과 추적을 통해, 세밀한 역사적 시간을 발견하라고 촉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찍이 단순한 '사건사'를 넘어 그 시대의 장기지속을 추동하는 요인들을 발견하고, 엄밀한 고증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상을 던져주려 했던 유럽의 '아날학파'의 작업은 그 일원이었던 자크 르 고프의 본 책에도 드러난다. 

우리가 이른바, 히스토리오그라피, 즉 '역사서술'의 측면에서 먼저 이 책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을 본받는다면, 자신이 주목하려는 그 대상에 대한 분명한 집요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역사서술에 있어 '방만한 욕심'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학은 그 무엇보다 겸손함을 요구하는 학문이다. 자신이 아무리 유능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보려는 그 시대의 상 전체를 다 볼 수는 없다. 고로, 역사학은 '겸손함의 한정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문제의식으로 글쓰기를 하기를 요구한다. 자크 르 고프의 이 책이 가진 미덕은 '고리 대금업자'라는 그 하나의 포인트를 가지고, 일관되게 그 대상을 추적했다는 것이다. 르 고프는 이러한 추적을 통해, 일정한 중심을 잡고, 그 시대상의 확장을 꾀함으로써, 자신이 중세 전체를 다 이야기하려는 듯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또한, 히스토리오그라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글쓰기 일반에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서술'의 논리'다. 고리대금업자가 왜 중세 시대에 그렇게 성직자들의 미움을 받아야 했던 것일까? 그 미움을 추동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표는 역사서술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역사서술의 기초를 논할 때, 자신이 궁금한 역사적 문제의식을 하나의 주제어가 아닌 일정한 문장, 그리고 그 문장 속에서도 의문문 형태의 가설로 표현해보길 권유한다.  고로 르 고프의 본 책의 키워드인 고리대금업자가 당시 중세 시대의 종교 장 안에서 어떻게 초기에 인식되었고, 왜 고리대금업자가 점점 더 종교적 질타에서 벗어나, 보다 완화된 부정적 인식의 틀 안에속할 수 있었는가? 그것이 바로 역사서술의 논리로 풀 수 있는 문제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뒤르켐'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는 성과 속으로 세상을 구분한다. (이는 지금도 종교가 쓰고 있는 구분법이다.) 이러한 성과 속의 딜레마는, 결국 종교와 인간의 문제인데, 인간이 접촉하고 있는 사회라는 곳이 과연 성과 속의 온전한 구분법을 그대로 용인하는 가의 측면이다. 종교는 바로,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가 그러한 사회의 움직임을 거리를 두는 것은 일종의 '인식론적 이상'일 뿐이다. 종교는 스스로를 믿는 인간의 '물질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혼돈과 싸워야 하고, 그러한 혼돈을 일정한 질서 안에서 잠재우려면, 교화가 필요하고, 회개의 동원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르 고프가 연구한 중세 시대의 직종 중,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종교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본보기였다. 무엇으로? 그것을 혼냄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갈수록 발전되는 사회의 형태 속에서, 그 형태가 계속해서 인간의 물질성을 강조하고, 그 물질성이 결국 인간과 인간의 교환적 체제라는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가야 할 때, 그러한 속성을 간과할 수 없는 종교는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열어두게 된다. 그래서 발생한 하나의 종교적 아이디어는 바로 '연옥'이다. 일을 하지 않는 당신이여! 그냥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가, 당신이 빌려준 돈의 이자를 챙겨먹는 그 불쾌한 직업을 당장 때려치울지라!하는 준엄한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래..요즘 세상에..그런 일들도 일어날 수 있지 뭐..걱정하지말거라...너 예전에는 바로 지옥의 뜨거운 불구덩이를 맛봐야 했지만,,,이제는 천국을 갈 수 있는 중간 방 정도는 사후에 예약받을 수 있어..연옥이라는 곳 말이야. 르 고프는 고리대금업의 자본주의적 속성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연시켰는가에 주목한다. 그리고 고리대금업이라는 직종이 추후 유럽의 자본주의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그 의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맑스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의 탄생에 대한 그의 말. 정말 인간이 소망하려는 그 형상이 바로 신을 탄생시킨 것은 또 아닐까. 오늘날 '돈'이 신이 된 세상에, 종교는 정말 자신이 신봉하려는 그 가치를 신으로 내세우고 있는가. 그 가치에 개입된 물질적 가치는 단순히 신의 강건한 모습을 보완하려는 도구일 뿐인가. 오히려 그 물질적 가치가 더욱 강조된 종교를 우리가 더 자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지적일까? 돈과 구원. 이 분명한 책 제목 만큼이나, 분명한 메시지가 책 안에 들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