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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류학이란 무엇인가
리햐르트 반 뒬멘 지음, 최용찬 옮김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몇 주 전, 책을 좋아하는 나의 스승과 함께 택시 안에서 ‘붐’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현상이 된 것 같은, 역사 관련 서적들의 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가운데 나는 미시사, 일상사, 풍속사, 신문화사 등등 새로운 역사적 접근 방식을 언급하며, 이러한 방식에 호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아마도 본 책의 저자인 리하르트 반 뒬멘이 이야기하는 ‘역사인류학’에는 내가 앞에서 말한 역사학의 새로운 조류들이 다 포함될 듯하다. 역사인류학이란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 책의 내용을 잠시 빌리자면,
역사인류학은 행동하고 생각하며, 느끼고 고통받는 구체적인 인간을 역사적 분석의 중심에 세운다. 이때 역사인류학적 발상은 철학적 인류학에서의 인간론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데, 이는 역사인류학이 역사 속 인간 존재의 일반성에 대해 묻기보다는 오히려 시간의 변화에 따른 문화사회적 조건의 다면성, 그리고 인간 행위의 독특성과 고유한 의미를 묻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폐쇄적이고 통일적 인간상은 배제된다. 인간상이란 오직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된다. (59쪽)
역사인류학은 저자도 강조하듯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강조함으로써, ‘역사주의’가 갖고 있는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제한성을 극복한다. 역사인류학자들은 ‘모든 인간’에게 관심이 많으며, 특히 이들에게는 문화사적 감수성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문화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결부되는 미시사적 접근 또한 강조점이다. 그러면서도 미시사가 놓쳐서는 안 될, 사회사가 견지하는 인간과 사회의 거시적 연결 고리도 지향한다. 역사인류학자들은 저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간을 공간으로 삼았던 이들의 문화적 경험들을 파헤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 행위 속에서 역사를 생동감있게 기술하려는 역사 쓰기의 실천성을 염두하여 둔다.
역사인류학은 인류학에서 파생된 학문이 아닌, 역사학에서 파생된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의 흐름들을 접목하면서, 방법론에서 ‘인류학’적 시선을 고려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여기서 ‘방법론’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어떤 명시적인 조사 방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학적 시선이라는 것을 하나의 인식론적 개념으로 간주할 때, 이 책의 저자이자 역사인류학의 제도화에 힘쓴 리하르트 반 뒬멘이 강조하는 것은 거대한 것과 사소한 것의 공유점을 이어, 사소한 것에서 어떤 정연한 논리와 행위의 규칙들을 찾으려는 노력, 그리고 인간에게 다가가 진정으로 인간들이 써 내려간 역사의 진실성 추구와 확보, 과거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교훈적인 차원으로 혹은 성찰적인 차원으로 격상시킴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 보급인 듯하다. 역사인류학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변동하는 사회와 그 변동의 영향을 받는, 그리고 그 변동을 직접 추동하는 인간의 살아있는 접점들을 만들어가는 학문이다.
역사인류학적 시각은 역사학이 고려하는 역사적 시각 간의 통합이자, 그러한 통합을 통해 역사를 보다 인간에 가깝게 놓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번역자인 최용찬은 키스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서 접했던 분인데, 역시나 당차고 분명한 문체로 책을 번역해 호감이 간다. 비교적 간결한 번역체 속에서, 역사학의 조류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리의 기분을, 입문하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지식의 통로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무래도 전자 쪽이 더 유리할 듯하다. 역사인류학적 시선이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본 책의 저자 리하르트 반 뒬멘의 [개인의 발견]을 다음에 언급함으로써, 이 논의를 더 이어나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