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휴일 한 낮, 아이들이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해 시켜먹었다.

어른이 된 이후, 짬뽕만 먹었는데 오랜만에 간짜장을 먹었다.

별 맛은 없었다. 그저 평범한 짜장면 맛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짜장면은 내게 단순히 맛있는 것 이상이었다. 아니, 모든 어린이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 시절 짜장면을 먹는 것은 계모임, 가족모임같은 특별한 행사의 마무리를 찍는 일이었다.

 

설날, 추석과 함께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또 하나의 명절이 있었으니,  짜장면을 먹는 날, 어린이 날이었다.

 

재미있는 것들이 별로 없던 시절, 이 날 하루만큼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토 달지 않고 쿨하게 해줘야만 하는데 짜장면만한 것이 없었다.

비싼 장난감 보다 짜장면 한 그릇 사주는 것이 저렴했고, 아이들도 평소엔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별미 중의 별미짜장면을 먹는 것이 장난감보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부자집 아이들은 장난감도 받고 짜장면도 먹었을 터이지만(모르겠다. 부자집 아이들은 탕수육을 먹었을지...)

 

그렇게 해서 동네 중국집에서 먹던 짜장면은 그야말로 최고의 특식이었다.

시커먼 춘장에 버무려진 국수를 젓가락으로 급하게 비비던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왜 그리 더디던지...

급하게 비빈 짜장면 몇가락이 입에 들어온 순간, ! 그 천상의 맛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요....

먹으면서 성질이 났다. 한 젓가락 씩 먹을 때마다 줄어드는 면을 보면서 아쉽고, 안타깝고.

지금도 못 먹는 곱빼기를 배터지게 먹고 배가 불러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가스활명수를 찾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 후로도 짜장면은 특별한 날이면 먹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졸업식 때도 먹었다.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날, 이사한 날, 상을 탄 날.....

좋은 날엔 늘 짜장면이 있었고, 짜장면 먹는 날은 늘 즐거운 날이었다.

이렇게 내 인생의 밝은 날 동반자로 함께 했던 짜장면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짜장면 보다 얼큰하고 시원한 짬뽕을 먹고 있었다.

 “왜 이 맛있는 짜장면을 엄마, 아빠는 안먹을까?” 수수께끼였던 어른 맛이다.

아마도 짜장면이 잊혀질 무렵, 나는 어른이 된 것이라.

     

지금도 아이들은 짜장면을 좋아한다. 그러나 피자, 치킨, 햄버거도 좋아 한다.

짜장면을 열심히 먹는 아이들을 보며 물었다.

맛있냐?” “.”

얼마나 맛있냐?“ ”그냥.“

그럼 그렇지.

니들이 짜장 맛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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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문한 지 일주일이 다되가는데 소식이 없다.

저번 주 수요일 책 4권을 주문해서 늦어도 금요일엔 받고, 주말에 맘먹고 읽을려고 계획했는데, 금요일은 커녕 오늘, 화요일까지 오지 않고 있다.

도착 메시지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아, 수령처로 지정한 편의점을 몇 번이나 가봤지만 허탕이었다.

결국, 월요일 배송지연신고를 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택배사 직원들이 파업중이란다.

처음엔 짜증이 났다. 반품을 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지연에 의한 반품은 없고 단순 변심, 그것도 수령한 뒤의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서점에서 살건데" 후회도 들었다.

 

 

정상적인 기다림은 설레임을 동반하지만, 한도를 넘어선 기다림은 조급함과 초조함을 일으킨다.

택배직원들에 대한 원망과 배송만 하면 할일을 다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알라딘도 미웠다.

책 몇권때문에 몇일 동안 얽매여서 이게 뭐람. 별것도 아닌 것이 계속 신경쓰이게 한다.

 

 

그러나, 퇴근 길에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은 불가피한 것이다. 내 잘못도 아니고 택배사 직원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고 알라딘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택배사 노동자가 근로조건, 아니 노동조건을 개선하여  삶의 질을 높이자고 파업을 하고 있다지 않은가?  이 상황에 대한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지하철 근무 노동자의 파업으로 지하철 운행 중단, 지연으로 출퇴근길 혼잡이 극심하다고 뉴스에서 얼마나 떠들었던가

대기업 공장 근무 노동자의 파업으로 몇 억불 수출감소로 경제가 어쩌구 저쩌구 또 얼마나 시끄러웠던가?

 그들의 파업으로 내가 불편하거나 피해를 본다면 뉴스에 동조하여 노동자들을 같이 규탄해야 될 것인가? 아닐 것이다.

 

 

내가 겪는 잠깐의 불편때문에 -사실 따지고 보면 못참을 만큼 힘든 경우는 별로 없다- 그들을 매도하고 몰아 붙인다면, 그래서 파업을 방해하여 그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될 기회를 막는다면, 나중에 그 결과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나 역시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부와 자본가의 교묘한 합동 플레이에 세뇌당해 공장에서 기계로 작업하는 사람들이나 노동자고, 사무직이나 자영업자는 노동자가 아니란 생각을 은연중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생산시설을 소유하지 못한 우리는 분명 노동자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파업을 싫어한다면 자본가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불편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닌 노동자의 생존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노동자가 파업을 한다 해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응원을 보내야 마땅하다.

 

 

나는 이름 모를 택배회사의 노동자가 하고 있는 파업을 지지한다.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가, 하고는 상관없다.

그들이 고임금이든 저임금이든, 환경이 좋든 나쁘든, 기업주가 악덕이든 아니든 별개다.

연봉이 억대여도 노동자고 몇 백만원이어도 노동자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연대만이 살 길이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나를 불편하게 한 택배회사 노동자의 파업을 당연히 지지하고, 그들의 조건이 수용되어 파업이 끝나고 내 책이 올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내 몸뚱아리를 굴려서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외에는 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땅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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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5-1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택배는 우체국 택배가 최..고....가 아니라 공감하고 갑니다. ^^책을 사는 것도 그 책을 배송받는/하는 것도 정당한 대가와 서비스로 이루어지면 좋겠지요.

기억의집 2013-05-15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무한공감하고 갑니다. 무한 기다려야지요. 노동자들의 연대만이 살길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공부해라˝로 시작해서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라˝로 가다 ˝열심히 공부해라˝로 끝을 맺는 책. 대단한 분이다. 정약용이라는 분. 자식들이 아버지 수준를 따라가지 못해 고생했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아버지를 만났다면 아무리 둔재라도 기본 이상은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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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번쩍이는 경광등을 촌스럽게 달고 귀청이 찢어질 듯 굉음을 내며 경주마처럼 미친 듯이 내달리는 철가방들의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도로의 익숙한 풍경이 되버렸다.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인 운전자가 모는 CT-100 배달오토바이의 짐칸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 탕수육, 아저씨가 좋아하는 시원한 맥주에 치킨 한 마리, 여학생이 좋아하는 먹음직스런 피자가 실려 있다.

 

온기가 사라지면 배달료도 사라질 듯, 주문전화벨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고객의 집 현관벨은 울리고야 만다.

이 위험한 서커스를 아무런 생명보호장치도 없는 도로변에서 공연하게 한 이는 누구인가?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네 급한 성격과 딱 맞는 배달문화인가?

시간당 4,000원을 넘지 못하는 알바생으로 인건비를 줄여 겨우 입에 풀칠하는 동네영세자본가인가?

그나마 알바 중 시급이 높은 배달알바로 여자친구하고 데이트할까? 이왕 질주본능에 발동 걸린 김에 일제 가와사키 오토바이라도 한 대 장만할까? 너희들이 바람처럼 달리는 맛을 알아?

한푼이라도 벌어 부모님 무거운 어깨를 덜어드릴까? 취업의 압박, 부모와의 갈등, 보이지 않는 미래, 아니면 사춘기의 터질 것 같은 가슴을 후련하게 풀어버리려는 저 어리석고 겁 없는 아이들 탓인가?

 

그들보고 제발 좀 천천히 다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헬맷이라도 좀 쓰고 혹, 사고라도 나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장치라도 있으면 좋겠다.

 

아직 어린 그네들의 푸르디 푸른 목숨을 담보로, 공간이동을 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기름진 닭다리를 한입 베어 물며, 이 땅의 청소년을 이렇게 내던져도 되는지, 우린 꼭 이렇게 배달해서 먹어야만 하는지 석연치 않은 마음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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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하도 졸라서 햄스터 2마리를 마트에서 샀다.

크고 하얀 놈과 작고 갈색인 놈이었는데 얼마나 귀엽든지..

집을 사고 거기에다 나무 조각을 깔아주고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먹이였다.

똑같이 먹이를 주면 크고 하얀 놈이 다 먹어버리고 작은 놈은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뚱뚱해지는 큰 놈과 점점 야위어가는 작은 놈을 보면서 큰 놈의 탐욕이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먹이를 줄 때 큰 놈을 따로 가둬놓고 작은 놈이 먼저 먹도록 하기도 하고, 큰 놈이 배불리 먹고도 많이 남을 만큼 충분히 주기도 했다.

그러나 작은 놈은 살찔 줄 몰랐다. 비쩍 마른 나를 보는 것 같아 더욱 약이 올랐다.

 

큰 놈에 대한 거슬림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나도 모르게 작은 놈을 편애하기 시작했다.

햄스터 키우기는 점점 비극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게걸스럽게 먹어 대는 큰 놈을 다이어트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먹이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큰 놈은 배가 많이 고팠을 것이다.

 

그렇게 몇 달 이 갔을 까 어느 쌀쌀한 날 드디어 비극이 터지고야 말았다.

퇴근한 나를 보고 와이프가 햄스터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어 봤더니....

충격적인 장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놈이 작은 놈을 잡아 먹어 버린 것이다.

하루 만에 약간의 붉은 핏덩이로 변해 버린 작은 놈의 흔적.

 

난 분노에 휩싸였다. 큰 놈을 베란다의 차가운 날씨에 방치해버린 것이다.

너무 미웠다. 큰 놈의 탐욕이 미웠고, 큰 놈의 횡포에 저항한 번 하지 못하고 잡아 먹혀 버린 바보같은 작은 놈의 허약함이 짜증났고, 그 들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 하지 못한 나의 무능함에 화가 났다.

 

다음 날 퇴근 후 다시 한 번 비극이 벌어졌다.

큰 놈마저 죽어 버린 것이다.

친구를 배가 고파 잡아 먹은 죄책감이었을까 아님 멍청한 주인에 대한 저항이었을까

 

차갑게 굳어 버린 놈의 몸뚱아리를 보면서 한 참 멍하니 있다가 아파트 화단에 묻었다.

무엇이 이 놈들의 생을 마감하게 했을까배고프면 먹고, 잠오면 자고, 기분좋으면 놀고 하는 것이 동물의 본성이 아닌가?

인간에게나 통하는 규율과 통제를 가한 것은 내가 아닌가?

그냥 원하는데로 먹이를 듬뿍 주고 배가 터지게 먹던지, 말든지 그냥 재롱이나 보는 것이었는데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한낱 햄스터에게 나도 모르게 인간의 가치관을 투사한 것이 아닌 가 내심 후회스러웠다.

작은놈 묻은 자리 옆에 큰 놈을 묻으면서 문득, 자식들을 햄스터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햄스터도 인간도 태어난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게 행복한 게 아닌가?

 

비록 조그마한 미물이었지만 비극으로 끝난 그들과의 짧은 인연이 못내 서운하고 아쉬운 그날 밤. 아이들은 아빠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불행한 참극을 금방 잊어 버리고 잘 자고 있다.

또 내일 다른 걸 사달라고 하겠지. 하지만 햄스터는 다신 사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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