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주문한 지 일주일이 다되가는데 소식이 없다.
저번 주 수요일 책 4권을 주문해서 늦어도 금요일엔 받고, 주말에 맘먹고 읽을려고 계획했는데, 금요일은 커녕 오늘, 화요일까지 오지 않고 있다.
도착 메시지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아, 수령처로 지정한 편의점을 몇 번이나 가봤지만 허탕이었다.
결국, 월요일 배송지연신고를 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택배사 직원들이 파업중이란다.
처음엔 짜증이 났다. 반품을 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지연에 의한 반품은 없고 단순 변심, 그것도 수령한 뒤의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서점에서 살건데" 후회도 들었다.
정상적인 기다림은 설레임을 동반하지만, 한도를 넘어선 기다림은 조급함과 초조함을 일으킨다.
택배직원들에 대한 원망과 배송만 하면 할일을 다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알라딘도 미웠다.
책 몇권때문에 몇일 동안 얽매여서 이게 뭐람. 별것도 아닌 것이 계속 신경쓰이게 한다.
그러나, 퇴근 길에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은 불가피한 것이다. 내 잘못도 아니고 택배사 직원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고 알라딘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택배사 노동자가 근로조건, 아니 노동조건을 개선하여 삶의 질을 높이자고 파업을 하고 있다지 않은가? 이 상황에 대한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지하철 근무 노동자의 파업으로 지하철 운행 중단, 지연으로 출퇴근길 혼잡이 극심하다고 뉴스에서 얼마나 떠들었던가
대기업 공장 근무 노동자의 파업으로 몇 억불 수출감소로 경제가 어쩌구 저쩌구 또 얼마나 시끄러웠던가?
그들의 파업으로 내가 불편하거나 피해를 본다면 뉴스에 동조하여 노동자들을 같이 규탄해야 될 것인가? 아닐 것이다.
내가 겪는 잠깐의 불편때문에 -사실 따지고 보면 못참을 만큼 힘든 경우는 별로 없다- 그들을 매도하고 몰아 붙인다면, 그래서 파업을 방해하여 그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될 기회를 막는다면, 나중에 그 결과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나 역시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부와 자본가의 교묘한 합동 플레이에 세뇌당해 공장에서 기계로 작업하는 사람들이나 노동자고, 사무직이나 자영업자는 노동자가 아니란 생각을 은연중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생산시설을 소유하지 못한 우리는 분명 노동자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파업을 싫어한다면 자본가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불편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닌 노동자의 생존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노동자가 파업을 한다 해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응원을 보내야 마땅하다.
나는 이름 모를 택배회사의 노동자가 하고 있는 파업을 지지한다.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가, 하고는 상관없다.
그들이 고임금이든 저임금이든, 환경이 좋든 나쁘든, 기업주가 악덕이든 아니든 별개다.
연봉이 억대여도 노동자고 몇 백만원이어도 노동자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연대만이 살 길이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나를 불편하게 한 택배회사 노동자의 파업을 당연히 지지하고, 그들의 조건이 수용되어 파업이 끝나고 내 책이 올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내 몸뚱아리를 굴려서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외에는 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땅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