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는 철학을 ‘낯설게 보기’라고 했다. 처음 배를 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 멀미로 고생한다. 배 멀미는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것과 만났을 때 낯섦에 대한 반응이며 적응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침으로서 우리 몸과 마음은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고 더 이상 배 멀미를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바다를 더 이상 낯선 것으로 보지 않게 된다.

 

거꾸로 장기간 배를 타다가 육지에 내렸을 때 선원들은 ‘육지멀미’를 한다고 한다. 장기간 흔들리는 것에 익숙하다가 움직임이 없는 육지에 내리면 오히려 배 멀미 아닌 육지 멀미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육지에 내리자마자 술을 마시고 비틀 비틀 걸으며 육지의 생경함을 이긴다고 했다.

 

내가 미국에 오랫동안 살아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면 그 때 한국이 낯설게 다가오고 한국에 사는 동안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낯설게 보기 시작함으로서 익숙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이처럼 여행을 비유로 제시했으며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나와 다른 세상을 만남으로서 내가 살았던 세상에 대한 재정립을 하는 것이고 이는 철학적 사고 방법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여행으로 내 삶을 더듬어 보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많기에 독서로 대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간 편중된 독서를 하는 경우 익숙함으로 인해 낯설게 보기 효과가 덜해질 수 있다는 말도 되겠다. 결국, 내가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책을 계속 읽어야 낯설게 보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은 전문가가 되는 방법이지만 대신 편협한 사고에 고착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참신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첩경인 것이다.

 

처음, 철학에 관한 책을 봤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보물창고를 찾은 느낌. 알 듯 말 듯 오묘한 말장난 같은 내용을 읽고 또 읽으면서 어렵지만 재미있는 역설을 경험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내용은 분명 다른 책임에도 더 이상 철학에 대한 두근거림이 일어나지 않았다. 철학 자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이해도를 떠나 내게 철학은 새로움이 아닌 익숙함이 돼버렸다.

 

독서에 대한 느낌도 그러하다. 새로운 내용의 책을 만나도 더 이상 충격이 오지 않는다. 읽지 않아도 읽은 느낌. 알지 못해도 아는 느낌은 신상을 찾아 쇼핑몰을 이리 저리 방황 하는 중독을 불러일으킨다. 이젠 형식적인 낯설기에서 실질적인 낯설기로 발을 옮겨야겠다. 단순히 파격적인 내용을 찾을 것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에 따른 미세한 차이와 비교를 통한 새로운 만남을 찾아야겠다.

 

그러나 처음 새로운 책을 만났을 때 가슴 두근거림에 대한 짜릿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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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장정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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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을 읽는 편이 아니다 보니 소설가하고는 거리가 있기에 장정일의 책은 처음이다. ‘독서일기’라는 제목으로 독서관련 책을 계속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도 당기지 않아 보지 않다가 이번에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이 눈에 들어와 구입했다. 이 책은 서평이라기보다는 독후감이라고 해야겠다.

 

주제가 다른 별개의 책이 아닌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 한꺼번에 읽고 한 맥락으로 글을 쓴 것이 흥미로웠다. 단권보다는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보는 것이 효율적인 독서법 중의 하나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잘 안 된다. 일주일 내내 힘들게 읽고 나면 피로 회복 및 기분 전환 겸 새로운 주제의 책을 찾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는 한 분야의 지식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습득하기보다는 단편적인 지식들의 눈요기로 그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대로 읽은 사람이 일목요연하게 핵심을 정리한 요약본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보다가 내가 관심 없는 내용은 상식으로 넘어 가고, 재미있는 주제는 관련 도서를 더 보면 된다.

 

나이 마흔이 되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밝힌 저자의 글 씀씀이 내 취향과 맞는다. 그의 독서 목록을 보노라면 새삼스럽게 이 세상에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음을 느낀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이렇게도 많은 세상의 일들을 담고 있는데 내가 죽을 때까지 과연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문제는 중요한 것은 대부분 아니, 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몰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세계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그것을 관통하기 위해선 본질의 주인공이 되거나 혜안(慧眼)을 갖고 있는 수 밖에 없으니,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은 핵심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변죽이나마 유일한 통로인 독서를 통해 진실의 한가락이라도 움켜쥐려는 것이다.

 

물론, 진실과 핵심을 파악했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의 차이일 뿐. 그러나 난 알고 살고 싶다.

진실을 담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에 달려 있는 자물쇠의 맞는 열쇠는 한 개다.

단지 열쇠가 많을 뿐. 그러나 맞는지 안 맞는지 꼭 넣어 보고 싶다.

 

맞는 열쇠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돌려 보는 것이 독서요, 인생의 과정이리라.

장정일의 공부는 그 많은 열쇠 중 몇 개를 선사한다. 물론, 맞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본인이 맞춰 보는 과정에 맞을 것 같은 것만 추려 줬으니 말이다.

 

장정일은 말한다. 나머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안내는 해줬으나 먹여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안내만 받고 만족해도 그의 책은 충분하다. 그러나 더 나아간다면 그의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그에게서 수많은 책을 소개 받았고 그 중 몇 권의 책을 구입하려 한다. 그의 소개로 내 생각의 지평은 또 넓어 질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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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을 지나가는 것은 힘들다. 더구나 총 같은 무기나 별다른 도구도 없이 맨몸인 경우 더더욱 어렵다. 굶주린 맹수에게 언제 목줄을 물어 뜯길지 모르고,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와 늪을 만나 휩쓸려 사라지거나, 길을 잃고 헤매다 굶주림에 쓰러져 벌레의 먹이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이렇게 위험한 정글을 오직 시뻘건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통과하려는 바보가 있다.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걸어가면 통과할 수 있으려니 한다. 아무런 대책도 없다. 만나는 순간, 싸울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정글의 맹수도, 헤엄쳐서 건너기에는 너무 깊고 넓은 급류도, 한 발만 내딛어도 돌이킬 수 없는 늪지대도, 길을 잃고 헤매다 쓰러질 것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주릴 것도, 폭우가 쏟아져 잘 수 없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가 가진 관심의 전부는 오직 정글을 한발자국이라도 빨리 들어가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정글에서 필요한 것들을 일러 주었다. 위협에 맞서 나를 지킬 무기를 준비하자고 했다. 무기 없이 적을 만났을 때, 맨몸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머리를 쓰고 손과 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끊임없이 단련하고 연마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쉽고 편하게 정글을 탈출하기 위해 다들 총을 구입하기 위해 노력한다고도 했다. 총은 조준하고 방아쇠만 당길 줄 알면 되지만 맨몸은 내 맘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총은 상대와 상관없이 위력을 발휘하지만 손발은 나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상대를 만나면 힘들다고 했다.

 

그렇게 세세하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정글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눈치다. 총의 위력 따위에도 관심이 없다. 맨몸이 얼마나 허약한지도 관심 없다. 그렇지만 난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 언젠가는 정글로 보내야 한다. 그것도 혼자.

그는 정글이 놀이공원인 줄 안다. 그곳에는 친구들만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어리석은 친구를 난 그냥 정글로 보내야 할까? 아니면 총을 억지로 쥐어줘야 할까? 아니면 맨손의 전사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는 철없는 내 첫째 아들이다. 바보 같은 놈. 총을 쥐어줘야 하는데......

 

아들아~~ 총 가져가야지 ♬

아버지~~ 무겁고 걸리적거려요 ♪♪

아들아~~ 몽둥이라도 갖고 가거라 ♪

아버지~~ 알아서 할게요. 걱정 마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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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7-06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라조의 수퍼맨 라임이 느껴집니다 ㅋㅋ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7-07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위대한 인물이었는데 자식이 영 아닌 경우를 보면. 물론 저의 경우는 아니지만^^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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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보고 책을 살 수 있고, 사도 후회하지 않을 확신이 드는 몇 안 되는 분 중 한 분이다.

선생의 책이 신간으로 나온 것을 안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바구니에 넣었다. 오랜만에 좋은 글을 하나 읽나 싶어 내심 반가웠다.

선생의 글은 차가운 폭포수가 내리 붓는 절벽 밑에서 정좌하고 읽어야 될 글인데 건방지게 소파에 누워 읽었다. 그리고 한 번 읽고 덮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책장에 꽂지 못하고 놔두었다.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도록.

 

처음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만났을 때 납득이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선생이 비록 감옥에 가기 전에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교편을 잡고 있었긴 했지만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후 금방 대학교에 복직하는 걸 보고 저 분이 무엇을 가르칠까? 명색이 대학교수직 인데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을 저렇게 쉽게 임용할 수 있는가? 내심 의아 했다. 통혁당사건의 무기수라는 배경으로 사회적 배려를 받지 않았나 생각도 했다.

 

그 의문이 이 책을 보는 순간 완전히 풀렸다. 선생의 사상적 범위와 사고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었다. 그건 단순히 학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생의 글에는 틀에 박힌 딱딱한 이론이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고, 그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정이 깊게 배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이론이 결국 인간을 위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던 그다. 그 간단하고도 중요한 점을 늘 간과했기에, 수많은 책속의 글은 그냥 인쇄된 활자로 남았을 뿐 난 단 한 글자와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선생은 감옥을 대학이라 칭했다. 말 그대로 크게 배웠다는 것이다. 감옥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식의 껍데기를 벗겨 버리는 곳이라 했다. 인간 그 자체로만 판단되는 감옥의 정직함은 그로 하여금 인간을 알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고 했다.

무려 20년 동안 만났던 수많은 죄수들의 삶은 오롯이 그의 공부가 되었고 사람에 대한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이해와 성찰은 그들이 준 선물이었다. 무기수의 삶은 곧 구도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구도의 목적을 개인의 완성으로 보지 않고 인간관계로 보는 그의 탁월한 분석은 깨달음을 얻은 자의 성찰과 통찰의 날카로움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한 사람의 수준은 그의 인간관계의 수준을 결코 넘을 수 없다는 말이 너무나 아프게 내 가슴을 흔들었고, 오직 책을 통한 자아실현을 지향했던 무지와 어리석음에 머릿속까지 아렸다. 내가 행한 모든 것의 성과는 지금 타인과의 관계가 샅샅이 증명하고 있다. 단순하고 천박한 생각으로 허술하게 엮은 나의 관계에는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고, 연대와 실천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창고의 풀풀 날리는 먼지였다.

 

인문학은 사람을 위한 학문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빠진 인문학은 뿌리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다. 그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자아의 성찰을 이야기한다.

공맹, 노장 등 선생이 좋아하는 동양사상을 중심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수형생활의 경험으로 깨달은 인간에 대한 성찰을 말한다.

물론, 세상에 대한 인식도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한 과정일 뿐임을 강조한다.

노자의 한 구절, 공자의 한 구절을 곱씹으며 우리의 삶에 연결시키는 선생의 탁월한 식견은 우리가 왜 책을 봐야 되는가, 무엇을 읽어야 되는가, 어떻게 읽어야 되는 가를 똑똑히 가르쳐 준다.

 

우리가 그토록 본받으려 애쓰고 신봉하는 서양의 어렵고 고상한 이론보다 그의 쉽고도 간단한 글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어둡고 불행한 역사를 온 몸으로 관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역사의 수레바퀴에 찢기는 삶을 체험하며 공유한 아픔을 쓰다듬으며 들여다보고 생각하며 찾은 길은 그대로 우리의 철학이 된다.

 

외세와 반민주에 의해 짓밟힌 우리의 삶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따스함으로 꿋꿋하게 버티며 헤쳐 나온 그의 글에는 멀찌감치 떨어져 재잘대는 어떠한 이론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평범하면서도 또박또박 쓴 글에는 세상의 어떤 위대한 사상에도 밀리지 않는 강인한 철학이 우뚝 솟아오른다.

 

그에게는 공자가, 맹자가, 노자가 보이고 장자도, 한비자도 보인다. 그러나 그는 공자도 노자도 그 누구도 아니다. 그는 단지 사람을 사랑하는 이일뿐이다. 그것도 광풍에 휘둘리는 여리디 여린 풀잎 같은 이들만 골라서 사랑하는 이다. 어쩌면 그에게 감옥은 광야나 보리수 아래였으리라. 사랑과 관심으로 맺어진 사람의 연대! 그것이 감옥에서 깨달은 선생의 진리였다.

인간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노학자의 가슴시리도록 진한 글에서 난 내가 가야할 길을 보고 내가 살아야 할 삶을 생각한다. 그는 나의 선생이다. 내 삶의 스승이다. 난 그의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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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3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님 글이나 님 서평 모두 솔직함과 담백함이 묻어 납니다. 좋은 리뷰 잘 보았습니다. ^^
 

요새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사건이 일단 당사자의 마지못한 인정과 사과로 일단락 되 가고 있는 것 같다.

객관적인 자료가 있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사건을 크게 벌려 놓다, 결국 정치, 외교 스타일로 인정하는 모습이 그의 글 솜씨 답지 않아 아쉽다.

 

그의 글을 단 한 줄도 읽어 본적이 없고, 그의 책을 단 한 권도 사 본적이 없지만, 그가 가진 문화적 위상과 권력을 감안한다면 책을 좋아 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지금의 상황이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다.

 

법적으로 창작과 경제는 동위에 있다. 굳이 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타인의 시간과 노력의 결과를 강탈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기에 창작엔 엄격한 저작권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창조는 없다고 했다. 인류의 모든 지적 자산은 과거의 유산이다. 과거에 빚지지 않고 현재를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책을 필사하는 방법으로 작가수업을 했기에 내 생각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는 궁색한 변명의 소리가 들린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난 이해가 간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의 글을 뼛속 깊이 내면화했기에 어는 순간 내 생각이 되 버렸다는 말이다.

 

가슴에 팍 꽂힌다. 블로그에 어쭙잖은 몇 줄의 글이라도 끼적거리려면 누군가의 책을 읽어야 가능하다. 이것저것 쓰다 보면 창작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기에 법적인 표절은 아니겠지만 다 누군가의 생각과 글이다. 그리고는 남의 생각을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떠들고 다닌다. 처음엔 누구의 말이라고 하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 의식하다가 나중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생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신경숙의 표절 논란과 별도로 과연 한 권의 책에 저자의 순수한 생각이 몇 줄이나 될까 궁금하다. 내 글에서 순수한 나만의 생각은 과연 한 줄이라도 있는 것일까?

언제까지 배우는 과정이라고 얼버무릴 수 있을까?

 

물론, 쓸 데 없는 걱정이다. 나 같은 초짜는 베끼는 거라도 잘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제 때 제 곳에 잘 갖다 붙일 수 있는 것만 해도 상당한 기술이다.

닥치는 대로 베끼다 보면 언젠가는 창의성이 문제가 될 날이 올지 누가 아나? 열심히 공부하고 사정없이 베끼자. 나는 신경숙이 아니고 학생이니까.

 

“창의성의 비밀은 그 원천을 숨길 줄 아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라.” <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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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2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세상에 자기 고유의 생각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베낀 것과 약간이라도 비튼 글 사이에서 흥분합니다. 만약 전자에 많이 가깝다면 분노하는 게 통념인 것 같습니다. 마치 약간의 노력도 하지 않았냐는 듯 합니다. 그 약간이 필요하다고 본다면 따라야 할듯 싶습니다. 헌데 쉽지 않습니다, 언제나 쉬운 길엔 유혹이 많습니다.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6-26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줄의 글 중 99줄의 남의 글 보다 단 한 줄의 내 글이 더 소중한 것은 내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한 줄의 생각을 위해 읽고, 생각하고, 쓰고 고민하니까요.
가끔 정말 내가 생각해도 신통하다 싶을 정도로 기적적인 문구 하나가 나올때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