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초능력에 대한 영화는 많이 있었다. 대부분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사건으로 극을 진행하기 위한 하나의 배경이나 도구로만 이용했지 이 영화에서처럼 초능력을 정면으로 다루진 않았다.

그래서 초능력을 특별한 능력이 아닌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각은 참신하다.

 

인류는 진화의 과정에서 육체적인 진보를 포기한 대신 정신을 택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조류의 비행능력, 물속을 헤엄치는 어류의 수영 능력, 100㎞를 훨씬 넘는 치타의 달리기 속도, 나무를 뿌리 채 뽑을 수 있는 곰의 완력, 초음파로 눈을 대신하는 박쥐나 의사소통을 하는 돌고래의 능력 등 인간이 포기한 자연의 초능력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무심코 보아 넘긴 자연의 모든 생물들이 가진 능력이 다 초능력인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능력을 포기하고 뇌의 능력을 선택한 것 뿐이다. 사실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 최고의 초능력을 가진 존재는 인간이다. 우주를 날아가는 우주선, 물속의 잠수함, 치타를 비웃는 스포츠카의 속도, 기중기의 어마어마한 힘 등 이미 인간의 능력은 모든 자연의 생물을 압도한다.

 

그럼에도 욕심 많은 인간은 포기한 육체의 능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줄 모른다. 우수한 지적 능력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이 육체적인 능력까지 소유하길 원한다. 그것도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지배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길 원한다.

 

진화의 의의는 생존과 불완전함이다. 생존에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진화에서 돌연변이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보폭이 더 큰 발걸음일 뿐이다. 돌연변이를 타자로 만들어 버리는 평범한 인간도 우매하지만 그렇다고 우월한 능력을 과신하며 열등한 인간들을 응징하는 돌연변이들의 시각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자연은 대체로 공평한 편이다. 모든 생명에게 나름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한 가지 이상 주었다. 주어진 능력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맞을 진대 인간만이 모든 능력을 갖고자 욕심을 부린다.

지적인 능력과 육체적인 능력을 다 갖춘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신인 것이다. 사실, 자연에서 본다면 이미 인간은 신의 경지에 다다른 존재로 보일 것이다.

 

그냥 초능력으로 액션만 보여주었으면 말았을 것을 자꾸 돌연변이와 인간의 대결을 꼬드기기에 하는 소리다. 특히, 엑스맨 5편인 퍼스트클래스는 돌연변이 세계의 선과 악 양대 축인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의 기원을 나치시대와 핵전쟁의 위기로 일컫는 소련 쿠바 핵미사일 설치 사태가 일어난 때로 되돌리며 난데없이 사실 아닌 사실성을 지나치게 부각하며 환타지에서 리얼리티를 찾는 생뚱함을 보여 준다.

 

굳이 돌연변이의 초능력을 찾을 것도 없이 이 이 세상엔 이미 차별과 편 가르기로 가득 차 있다. 사는 게 힘들고 벗어나고 싶을 때 가끔씩 “내가 세상을 지배할 초능력을 갖고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다음에 벌어질 심각한 상황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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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45 - 더 이상 예측 가능한 미래는 없다
박영숙.제롬 글렌.테드 고든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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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거주자의 패턴에 따라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고 커튼이 걷히며 벽면에 가득 찬 대형TV는 3D로 뉴스를 보여준다. 3D프린터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시간에 맞춰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무인자동차를 타고 잠깐 눈을 붙인 채 출근 한다. 시속 6,000km로 달리는 진공자기부상열차를 타고 뉴욕에 출장 가서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 가상체험으로 취미를 즐긴다.

 

혼자 먹고, 혼자 놀며, 혼자 자는 1인 가구의 삶이 보편화되지만 항상 내 주위엔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나를 돌봐주기에 크게 외로운 것은 없다. 신체에 이식된 바이오칩은 내 몸의 건강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여 알려주며 긴급 상황 시 병원에 연락해준다.

 

미래의 하루를 간단하게 요약해봤다. 온통 우리 주위를 에워싼 첨단 기계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미래 인간의 모습이 한없이 편해 보인다.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의해 이식된 인공장기는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 대한 논란을 야기할 것이고, 컴퓨터와 자유롭게 연결된 인간의 뇌는 육체 없는 의식만으로 과연 인간이랄 수 있는지, 만약 인간이라면 생명의 궁극적 목적인 영생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일으킬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라는 유명한 격언은 지난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은 발명이 필요를 이끄는 시대다. 이동전화는 필요에 의해 발명됐지만 스마트폰은 아니다. 먼저 발명되고 필요가 만들어졌다.

이 책은 미래에 우리가 보유하고 향유할 기술들에 대한 내용을 말한다. 우리가 현재를 기본으로 예측할 수 있는 한계를 특이점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2045년은 현실적으로 예측 가능한 지점의 끝이다.

 

수많은 미래의 첨단 기술들에 대해 일일이 열거할라치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우주기술, 바이오테크놀로지, 에너지 기술, 의료 기술 등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실현이 예견되어 있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바로 과학기술의 발전 만큼이다. 미래엔 과학이 모든 세상을 점거할 것처럼 보인다. 온 세상이 스마트폰 같은 것으로 꽉 채워진다면 어찌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의 분별을 말할 수 없는 과학기술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기준은 과연 미래에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조지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꼭 독재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필요는 없다. 나의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통제되는 사회. 그 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미래. 과연 미래는 모든 것을 노예에게 맡기고 철학에 몰두했던 고대 그리스의 귀족들만의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진정 인류가 꿈꿔온,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불편함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인류 문명의 최고 정점에 다다를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기술의 발전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인간의 문명이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미래의 우리가 미친 말처럼 질주하는 과학기술의 고삐를 놓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가슴 뛰는 미래다. 물론, 인공심장이겠지만.

그때도 심장을 가르키며 마음이 있다고 말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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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벌 1~9권 박스 세트 - 전9권
이현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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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새 일본과 종군위안부 합의 문제로 꽤 시끄러운 것 같다. 우연이었을까? 이 만화가 눈에 띈 것은?

남벌(南伐)’이라는 제목처럼 이 만화의 주제는 일본과의 전쟁이다. 우리 역사와 민족을 늘 맴돌며 고통만을 안겨준 저 일본이라는 나라와 민족은 우리에게 함께 하기 정말 힘든 이질적인 존재다.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에 대한 어떠한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저들은 지금도 큰 소리 치며 잘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일제 치하 36년간의 피 값을 고작 3억 달러의 무상자금, 5억 달러의 차관으로 보상받았다. 지금도 구천을 떠돌며 안식처를 찾지 못했을 이 땅의 수많은 원혼들을 팔아먹은 몇 푼으로 이룩한 상처투성이의 경제 개발로 이제 우리는 밥술이나 먹는다고 위안을 삼는다. 썩은 씨앗이나마 거둔 결실의 대가인지 아니면 무슨 큰 약점을 잡혔는지 우리는 죄인 인양 늘 저들에 눌려 살고 있다.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에 관한 것 마저 행여나 분쟁에 휩싸일까 알아서 설설 긴다.

 

이 만화가 나온 것은 20년 전이다. 그런데 다시 봐도 세월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현실적이 되었다.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바꾸기 위해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2차 대전의 일급전범들을 신사에 모셔 두고 신성시하는 일본 우익들의 작태는 그들을 지도자로 뽑은 일본인의 속마음을 등에 업고 결코 우리에게 사죄할 뜻이 털 끝 만큼도 없음을 이야기 한다.

 

나를 때린 사람이 미안해하지 않는데 먼저 용서를 한다는 것은 성자가 할 일이다. 개인 간에는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간에는 그래서는 안 된다. 따질 것은 따지고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줘야 한다. 그게 세상의 올바른 거래고 정당한 관계다.

 

용서하고 싶진 않지만 차츰 잊어 가고 있는 일본과의 우중충하고 찝찝한 과거사의 깨끗한 종지부를 영원히 찍을 날이 올 것 같진 않다. 이 만화의 결말처럼 무력을 통한 강제력이 동원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픽션의 장점은 내 맘대로 상상이다.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집어넣어 일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만화속의 대한민국과 그 대한민국을 이끄는 위대한 대통령, 국민의 군대들에 대한 뜨거운 감동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니까.

 

이현세의 만화의 한 경향기도 하지만 오혜성이라는 영웅이 모든 것을 해결해나가는 극단적이고 단순한 스토리는 리얼리티를 떨어 뜨려 유아수준의 오락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며 특히 이 만화에서는 국가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등장인물들이 애국의 표상으로 묘사된다. 일본만 만나면 모두가 애국자가 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가 그대로 들어 있다. 비록 선의이며 피해자의 입장이지만 감상적인 방법으로 선동된 애국이 가미가제특공대식으로 변질되는 건 쉬운 일임을 역사는 늘 말해 준다.

 

이 만화를 아이들한테 읽히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생각해 본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증오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는 온전히 알아야 한다. 퍼즐 맞추기를 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정사를 알기도 전에 특정 부분에 대한 퍼즐만 던져주는 것은 왜곡된 역사관을 키우는 씨앗을 심어주기만 할 뿐이다.

비록 일본과의 역사가 불행한 일의 연속이었지만 감정적인 것으로만 채워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고민인 것이다. 이 만화를 본다면 일본은 나쁜 놈이고 한국은 피해자며 그들과의 관계를 픽션으로 채워진 만화에서의 잘못된 방법으로 이기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상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막상 아들이 읽는 다면 못 본 척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현세와 그의 만화에 대하여 한 말 안하고 넘어갈 순 없다. 8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이란 만화로 대본소를 휩쓴 이현세는 80~90년대 한국만화계를 휩쓴 대가중의 대가다. ‘오혜성은 성인만화로 대본소에서, ‘설까치는 아동용으로 보물섬 같은 어린이 만화잡지 쪽에 등장했던 그의 대표 캐릭터다. 오혜성의 영원한 여인 엄지와의 순애보적인 사랑은 그의 어떤 만화에서도 빠진 적이 없는 단골 메뉴였다.

오혜성은 외롭고 제멋대로며 황야의 늑대나 정글의 사자를 연상시키는 강한 남자지만 그의 영원한 베아트리체 '엄지에게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다.

물론, 이현세의 만화가 남성우월적 영웅주의의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굵직한 붓 터치와 강렬한 선으로 스케일 있고 서사적인 내용 때문에 그의 만화를 찾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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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왜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나 -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한몽관계사
김운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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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를 끌어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인데 머리 아플 때 가볍게 읽기 딱 좋다.

‘몽고반점’이란 것이 있다. 어린아이의 엉덩이에 있던 푸른 반점을 일컫는 건데 크면서 없어진다. 어른들한테 몽고반점이란 것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와 몽골 사이에 무슨 혈연적 관계가 있나? 하며 궁금해 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TV에 몽골사람이 나올 때마다 놀라지 않는가? 우리나라 사람들과 육안 상으로는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 그네들의 외모를 볼라치면 그들과 우리의 관계가 늘 궁금했다. 이역만리 떨어진 먼 나라의 사람들이 왜 우리와 똑 같이 생겼을까?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우리와 몽골인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혈연적으로도 70%의 유사성을 가지며 언어, 생활 습관, 문화도 유사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 때 몽골이 우리나라를 멸하지 않고 국체를 보존시켜줬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이 처음엔 다소 황당했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다.

 

사실 난 세계를 정복한 몽골이 왜 우리나라같이 작은 나라를 40여년이나 공격했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누군가?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말이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을 점령하고 ‘팍스몽골리카’를 구축한 역사상 최대 정복 영토를 보유한 민족이 아니던가?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 유럽 속담에 아직도 몽골에 대한 속담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의문 하나, 그런 몽골제국이 겨우 손바닥 만한 고려를 무려 40여년간 7차례에 걸쳐 침략했다. 무신 정권이 강화도로 도망친 채 결사항전을 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육군 위주라지만 섬에 숨어 든 정부를 어찌하지 못하고 애꿎은 본토 백성들만 유린했다고? 침략했다가 무신정권에서 회해를 요청하면 회군하고 다시 침략했다 또 빌면 물러가고를 7차례나 하고서도 결국 무신정권의 붕괴 후에서야 전쟁이 끝났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의문 둘, 몽골은 원세조 쿠빌라이가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을 충렬왕의 간청이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나이로 할아버지 뻘인 충렬왕에게 보낸다. 다시 원세조의 손녀가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의 정비가 된다. 몽골은 정치적인 동맹으로 혈연관계를 이용한 예가 별로 없는 나라다. 그들에게 혈연은 실제 가족이 됨을 의미한다고 한다. 과연 고려가 원나라 황제의 부마국이 될 만큼 원에 위협적인 이해관계가 있었던 국가였던가? 왜 굳이 원은 고려를 부마국으로 선택 했을까? 속국의 공녀 수준의 사람들이 기황후처럼 황제의 비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기황후 말고도 2명의 황후가 더 있었다는데.

 

무신정권은 원과의 화해 조건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그저 임기응변식으로 그때그때 위기만 넘긴 후 모르쇠로 일관하며 원의 비위를 건들었음에도 원은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다. 물론 그 결과로 백성들은 엄청난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몽골군을 환영할 정도였다고 한다. 제 나라 백성을 버리고 오직 정권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었던 무능하고 이기적인 군사정부와 허수아비 왕을 믿을 수 없었기에 살고자 선택한 일일 것이다.

 

우리 민족의 70%는 북방계라 한다. 북방계는 남방계열의 중국 한족과 다르다. 시베리아와 바이칼호를 뿌리로 한반도까지 흘러 내려운 유목민이 농사를 짓는 남방 계열과 합류했다고도 한다. 고고학적으로 철기문화의 이동경로와 일치하는 북방계열은 결국 동아시아에서 한족을 제외한 오랑캐들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주장한다. 몽골 군벌 출신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자신의 출신성분을 세탁하기 위해 과도하게 한족인 명을 추종했고 정작 중국에서도 사라진 성리학을 조선의 건국이념으로 삼으며 같은 오랑캐면서 스스로 소중화를 자처하고 편협한 원리주의의 자가당착에 빠져들었다고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몽골, 만주족 같은 변방의 오랑캐들과 한통속이 된다. 자신의 조상을 멸시하고 다른 민족을 숭배하고 살아온 어리석은 민족이 되는 것이다.

 

난 저자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검토하고 연구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우리의 국사에서 침략국으로만 알았던 몽골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시 역시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파격적인 주장은 늘 정통사학자가 아닌 재야 사학자를 통해 나온다. 정통사학계는 당연히 무시하고 대응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누가 옳은지 우리는 알기가 힘들다.

 

과연 몽골은 이 땅의 수많은 백성들을 도륙하고 속국으로 만든 철천지원수일 뿐인가?

아니면 그 뿌리가 같기에 우호적이었음에도 미흡한 대응으로 불필요한 희생을 자초한 어리석은 고려가 진실인가? 저자가 정통사학자가 아니라는 것이 무조건 그의 말을 무시할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주장에 대한 기존 학계의 반대 의견을 들을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냥 재미있는 소설이나 가십거리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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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1-1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두가지 의문점의 이유는 없는가 보네요 ㅠㅠ
아침부터 잼있고 흥미진진한 얘기 잘 읽었습니다 ^^

초딩 2016-01-1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면 먹으면서 완전 잼있게 읽었습니다~
김밥 먹으며 댓글 답니다.
저는 제일 긍금한게 그랬던 몽고가 지금은 왜? 라는 것입니다 :-)

책을베고자는남자 2016-01-17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목문화의 한계이지 않나 싶네요. 농경문화는 한 곳에 정착을 하고 무리를 지어 살기에 당연히 문화와 제도가 발달하는데 유목문화는 그렇지 못했던 한계가 원인이 아닐까요? 유목민이라 당연히 말이라는 기동력과 호전적인 민족성때문에 통일이 되면 막강한 무력으로 나라를 세울수는 있었겠지만 나라를 지속하는 데엔 무력 뿐만 아니라 문화가 필요하니까요
 

첫 번째, 구입하고 읽지도 않은 채 서가에서 뒹굴고 있는 저 책들을 다 보기 전에는 절대 로  새 책을 구입하지 않겠다.

두 번째, 그 후 구입할 경우엔 꼭 구입할 필요가 있는 지 나 자신에게 3번 묻고 사겠다.

세 번째, 그러고도 구입한다면 한 번에 3권 이상 구입하지 않겠다.

네 번째, 산책은 반드시 읽은 뒤 새 책을 구입하겠다.

다섯 번째, 읽은 뒤엔 100자든 1,000자든 꼭 글로 남기겠다.

여섯 번째, 구입했으나 읽지 않을 책, 읽은 뒤 두 번 볼 가치가 없다고 판단 된 책, 장기간 읽지 않고 서가에 방치된 책들을 정기적으로 정리한다.

일곱 번째, 신간을 보관함에 무분별하게 집어넣지 않겠다. 어차피 다 구입하지도 못하고 구입한다 한들 다 읽지도 못한다. 무리한 욕심을 버리자.

 

이상 일곱가지를 꼭 꼭 꼭 지켜 쓸데없는 지출을 방지하고 스트레스 없는 독서 생활과 깔끔한 서가를 유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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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1-1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지금 20권이 저를 노려 보는데,ㅠㅠ 그냥 곶감 쟁여 놨다 생각하기로 했어요 ㅠㅠ :-)

책을베고자는남자 2016-01-14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10년전부터 저를 째려보는 놈이 아직도 있답니다 그냥 치워버리면 되는데 이상하게 아직까지 못하고 있어요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 같읍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