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보내며 시아버지를 모시는 문제가 집안의 화두가 되었다.
시아버지는 남에 대한 배려도 잘하시고, 유머감각도 있으시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존심이 세서 마냥 편하기만 한 분은 아니다.
더우기 나보다 한세월을 먼저 사신 분인데 어찌 편하기만 할수 있겠는가....
어쨌든 시아버지는 이제까지 팔십이 되도록 자식 신세 지지 않고 혼자몸을 건사해오셨었다. 그것도 왠만한 여자어른 뺨치게 깔끔하고 단정하게.
그런분이 이제는 아들집으로 가고 싶다 속내를 비추셨는데, 평생을 살던 섬을 나가고 싶지 않으니 근처에 사는 막내네 집으로 들어가서 살며 혼자 사시던 집에 가끔 들러 집안도 샆펴보고 싶어 하셨다.
굽은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더니, 타의든 자의든 서울로 대학을 간 자식들은 서울에 터전을 잡아 노인이 살기엔 마땅찮은 모양이 되었고, 같은 자식입장에서 고향근처에 자리잡은 막내아들에게 부담을 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휴가에 내려가 손아래동서를 다독이며 어른과 같이 산다는게 쉽지만은 않으리라 말하며 힘들면 내년엔 내가 모셔가마 약속을 했었다.
약속을 하면서도 그어른이 객지에 나와 사시는게 적응이 되지 않으리라 싶어 어떻든지 형님하고 의논을 하여 막내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을 찾아보겠노라 약속을 하였었다.
경제적인 문제며, 며느리로서 답답할수도 있겠다 싶어 시아버지가 눈치채시지 못하게 일년에 몇달쯤은 건강진단도 해보고 서울에 있는 자식들 집도 둘러보고 가시게 하면 좀 낫지 않겠나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시아버지는 아직 가시지도 않았건만, 이리저리 의논들이 오가는 사이 자식들사이에 조금씩 감정이 상해가는 모양이다.
딸들이 보기엔 다른집어른과 달리 깔끔하고 젊은사람 배려도 잘하시는 내부모 모시는 일에 어려워하는 며느리의 마음씀씀이가 못마땅했을 것이고, 같은 며느리면서 첫째도 둘째도 아닌 막내가 어른모시는일에 불편해하는것을 내몰라라 하기가 어려웠다.
시누이들은 아래동서의 편을 들어주며 짐을 나누어주는게 당연하지 않냐는 말에 서운한듯 하였다.
자식들에게 단순한 애정이 아닌 깍듯한 존경을 받고 있는 어른인지라 어느며느리라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조차 쉬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일까?
급기야는 어차피 서울로 올라오려 하지 않으실 어른, 가실때까지 체면지켜드리고 마음편하게 사시게 주변에서 그냥 좀 도와주면 안돼겠냐고, 딸들 마음이야 이해는 하지만 현실은 또 현실인 것이니 그걸 무시할수는 없는것 아니냐고 일단은 봉합을 해버렸다.
중간에 끼어 이리저리 정리를 하다보니, 조목조목 다 끄집어내어 따지는 막내의 계산도 짜증이 나고, 그를 서운해하는 시누이들도 답답하였다.
며칠간 여기저기 역성을 들다보니 사는게 여름날 베란다에 잘못 내어논 김치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어차피 시작한일 결론은 내야지 싶어 주말엔 손위형님을 만나 방안을 논의하고 대충 매듭을 지었다.
한낮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도시고속화도로 옆의 아파트단지들이 살풍경하다.
아직 창창한 내게도 쉬 적응이 되지 않는 주상복합의 숲을 스치노라니, 사그러들듯 스러지는 노인들이 적응하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싶다.
세상에 누군들 세월앞에 장사가 있겠는가.
앞을 보며 열심히 운전을 하는 건우아빠도 세월앞에 눈이 침침해질 날이 있을 것이며, 책을 집으며 주섬주섬 안경을 챙길날이 조만간 내게도 닥치리라.
초가을 노을처럼 안타깝게 그러나 품위를 지켜가며 늙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