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업둥이가 왔어요

지난 일요일 밤, 아무런 연락도 없이 큰딸이 내려왔다.

"아니, 누구셔? 뉘신데 불쑥 집에 들어오십니까?"

남편도 나도 무방비로 있다가 놀라서 물었다.

딸 아이는 서재방으로 가서 주섬주섬 제 짐을 두고 나와 하는 말이

"원룸 가까이 000가 있으니까 방문도 안 잠그고 잠간 나갔다 돌아와 방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똥냄새가 나는 거야, 무슨 냄샌가 놀라서 살펴보니 누군가 내방에다 똥을 싸 놓은 거야."

깜짝 놀란 주인 아저씨가 방마다 살펴보니 1.2층에 똥을 싸 놓은 방이 여럿이었단다.

주인 아저씨는 누가 들어왔었나 CCTV를 돌려보고....

 

딸아이는 똥을 치우고 뭔가 없어진 게 있을까 샅샅이 살펴봤지만

노트북이랑 돈이 될 만한 건 하나도 없어진 게 없이 똥만 싸 놓아서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도저히 00에 있을 수 없어 무작정 집으로 내려왔단다.

 

뭔 이런 똥 같은 경우가 있는가?

 

집이란 이렇게 무작정 내려와 안길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우리 모녀가 좀 무심하긴 하지만, 제 앞가림 잘 하고 살거라 믿기 때문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고 지낸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이야기 한다고 막내도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고,

놀다 들어온 아들녀석도 제 누나의 깜짝 출현에 놀라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침에 막내를 기숙사로 보내고 다시 잠들었는데, 서재방에서 뭔 소리가 들렸다.

살글살금 다가가 들어보니 방 한가운데 놓인 옷을 담는 상자에서 나는 소리다.

'아니, 저 속에 쥐가 들었다는 거야? 그럴리가 없는데.... '

상자 위에 있는 까만 비닐봉지를 내리치니 잠잠해진다.

 

잠자는 딸아이를 깨워 옷상자에 뭐가 들었느냐 물으니

키우던 토끼가 너무 커서 도저히 더 키울 수 없어 데리고 왔다고 이실직고한다.

원 세상에~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오니 딸아이는 토끼장 만들 철망을 사러 나갔고,

숲해설가협회 소식지 편집팀 모임이 있어 동태전 하나 부쳐놓고 출타했다.

 

한밤중에 귀가해서 토끼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는 사람이 토끼를 선물했는데, 차마 손바닥만한 원룸에서 산다는 얘기를 할 수 없어서 받았다고.

처음엔 작고 예뻤는데, 성토가 되자 수컷 냄새도 나고 좁은 방에서 키울 수 없어 집에 두고 간단다.

딸아이는 철망으로 큼지막한 집을 지어 베란다에 놔 둔 토끼가 추워서 움츠렸다며

안쓰는 방석이나 옷가지를 넣어 줘야 겠다고 마땅한 걸 찾는다.

 

토끼장 안에 방석도 넣어주고, 주변에 알라딘 박스를 펴서 두르고 야외돗자리로 덮어주었다.

딸아이는 토끼와 정이 들었는지 마치 애기를 돌보는 것 같았다.

"야, 저렇게 큰 토끼를 어떻게 집으로 데려올 생각을 했어?"

 했더니,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다.

 

 

 

 

 

"엄마, 내가 애를 낳아 데려온 것도 아니잖아! ㅋㅋㅋ"

"그러게 말이다. 엄마는 네가 애를 낳아서 데려와도 잘 키워줄 거야. ㅋㅋㅋ"

"정말?"

"그럼. 나보다 더 애를 잘 키울 사람 없을 거 같아서, 제 엄마가 못 키우는 손주는 내가 키워줄 거야."

 

우리는 딸아이가 데려온 토끼가 마치 손주라도 되는 양 낄낄거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웬 시추에이션! ㅋㅋㅋ

 

 

몇해 전, 2층 아이가 키우던 토끼가 탈출해서 우리집에 들어왔을 때

마치 업둥이가 들어온 양, 화단이 초토화되도록 풀꽃을 뜯어 먹으며 산 토끼가 생각났다.

우리 막내는 토끼를 어떻게 돌봐야 되는지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공을 들였는데...

새로운 토끼의 출현으로 추억 속의 토끼를 불러내게 된다.

사진 폴더를 뒤적여서 찾아 낸 그때 그 토끼!^^

 

 

딸아이가 데려온 토끼 덕분에 그동안 읽은 토끼책이 줄줄이 생각났다.

며칠 쉬었다 간다는 큰딸과 토끼 책도 다시 보고 영화도 봐야겠다.

 

 

 

 

 

 

 

 

 

 

 

 

 

 

 

 

 

 

 

 

 

 

 

 

 

 

 

아래는 아직 못 읽은 책들~ 토끼 책도 무지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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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1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업둥이 얘기에 뭔가 했어요. 완전 귀여운 업둥이네요.
큰딸이 불쑥 찾아와 더 반가웠겠어요. 딸 말이 진짜 걸작이네요, 언니^^
어느 큰 절을 찾아갔을 때 경내를 홀로 뛰어다니던 토끼 한 마리가 생각나요. 뭘 그리 찾고 다니던지...
근데 큰딸 진짜 황당했겠어요. 방에 덩이라니 ... 누구 그런 짓을..
언니 저도 오늘은 꼭꼭 우체국 갈래요. 현관에 한짐 그대로 두고는 계절이 두 번 바뀌도록 ㅋㅋ
저, 올여름부터 내내 어느 분 책 내는 것 도와주느라 사실 무지하게 신경쓰이고 좀 바빴어요.ㅠ
오늘도 하루 바쁘게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순오기 2012-09-12 08:45   좋아요 0 | URL
많이 바빠야 좋은 거지요.^^
생명있는 것을 거두는 일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죠.
방금 오늘 오후에 택배 배달한다는 문자 왔어요~ ^^

2012-09-13 0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9-12 08:44   좋아요 0 | URL
토끼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군요, 내가 토끼랑 눈맞춤할 시간도 없는 사람인데...^^
지난 가을 함께 걸었던 인사동 거리, 우리딸에게 얘기해줬어요. 배추 이야기도!!ㅋㅋ
우리달 사는 곳 둘러보러 가면 연락할게요.^^

양철나무꾼 2012-09-12 12:12   좋아요 0 | URL
꼭여~!!!!!

책가방 2012-09-1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것은 없다고 하나... 내 집에 누군가 몰래 다녀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 무서울 것 같아요.
저라면 다시 돌아갈 맘이 안 생길듯..
혼잣말 받아주던 토끼마저 없어서... 큰 따님은 어떡해요..??

순오기 2012-09-12 08:41   좋아요 0 | URL
우리딸도 그래서 무서웠대요, 사이코 아닌가 생각들어서...
토끼가 없으면 뭔가 대용품이 생기지 않을까요? 일테면 사람 애인?ㅋㅋㅋ

2012-09-12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9-12 08:3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방금 '아웃사람' 예매했습니다.^^

단발머리 2012-09-12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따님의 '애를 낳아 데리고 온 것도 아니잖아'에 토끼 업둥이는 완전히 가려졌네요. 뭐, 이 정도 쯤이야. ㅋㅎㅎ

그나저나, 딴 식구 생기면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고, 신경도 쓰이는데, 아이구, 바쁜 순오기님, 더 바빠지시겠어요. 그래도 온 식구 다같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그려져요. 참, 좋~~은데요.

순오기 2012-09-12 08:40   좋아요 0 | URL
하하~ 정말 그런 일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토끼쯤이야!ㅋㅋ
그러게요, 제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 토끼를 거둬 먹일지 모르겠어요.ㅋㅋ

icaru 2012-09-12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잘 만들어진 단편 소설 하나 읽은 느낌이네요~ ㅎㅎㅎ

순오기 2012-09-12 23:26   좋아요 0 | URL
아~ 단편소설이라니, 과분하지만 기분 좋은 댓글인데요.^^

blanca 2012-09-1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끼. 제 여동생이 데려왔었는데 너무 커서 아버지가 농장까지 수소문해서 데려다줬던 기억이^^ 나요. 토끼를 엄마 몰래 숨겨 키우려고 했던 아이가 이제 자기 아이 낳아 잘 키우는 모습 보면 대견합니다.^^ 토끼도 주인을 알아본다고 하더라고요. 건강하게 잘 키우세요. 좋은 추억이 될 거예요.

순오기 2012-09-12 23:27   좋아요 0 | URL
어릴 때 동물 키우고 싶어하는 건 수많은 아이들의 로망인가봐요.^^
토끼가 주인을 알아보는군요, 제 남동생에게 토끼 잘 돌보라고 어젯밤에 술 사줬답니다.ㅋㅋ

수퍼남매맘 2012-09-12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반응이 무지 쿨하세요. 전 못 그럴 것 같아요.
따님에게 잠깐 나갔다 오더라도 꼭 문 잠그고 다니라고 하세요. 워낙 세상이 험해서요.....

순오기 2012-09-12 23:29   좋아요 0 | URL
글쎄요, 현실이 되면 어쩔지 모르지만~ 쿨한 척 세뇌시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ㅋㅋ
문단속은 앞으로 철저하게 할 거 같아요, 엄청 놀랐으니까요.ㅠ

라로 2012-09-1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정말 아닌 방중에 홍두께도 아니고 웬 똥!!!너무하다.
너무 엽기적이에요!!!ㅠㅠ
그나저나 따님이 그렇게 등장을 했군요!!!ㅎㅎㅎㅎㅎㅎ
저도 언니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지금보다 더 잘 컸을것 같아요.
애를 낳아와도 잘 키워줄 엄마,,서로에 대한 신뢰에 눈물이 찔끔~~.^^;;

순오기 2012-09-19 09:09   좋아요 0 | URL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핵심이라는 걸 아시는군요.^^
나비님도 어머님도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이라는 걸 알아요!

희망찬샘 2012-09-19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똥 주인이 토끼인가 했어요. 음, 조심, 또 조심!!! 이제 순오기님 토끼 보면서 따님 생각하시겠는걸요. 딸 생각에 토끼에게 더 잘해주실 것 같은! 그 먼 길을 어떻게 데리고 왔을까요. 대단대단!!!

순오기 2012-09-19 09:10   좋아요 0 | URL
정말 못할 짓 하지 않고 사는 것도 조심조심 살아야 해요.^^
저는 가끔 토끼를 들여다보기나 하지 뭘 해주지는 않아요.
우리 아들이 제 누나한테 임무를 부여받아서 잘하고 있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