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열흘~ 미친듯이 책을 읽었다.

모든 책을 꼼꼼히 정독한 것은 아니고, 전에 읽었던 책은 휘리릭 훑어 읽거나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었다.

하나를 차분하게 읽기도 했지만, 이 책 저 책 찾아 읽느라 책상에 쌓인 책이 족히 스무 권은 되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1.5권에 이어 7권을 읽다가, 장영희 선생의 책을 소개하는 글에 반했다.

저자의 에세이는 아주 평범한 소재를 평이하게 서술해 가다가 끝부분에 이르러 주제의 확대와 반전이 이루어지곤 한다. 그래서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가운데는 장영희의 모든 글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대목이 있다.

"자서전적 에세이니 불가피하게 나의 신체장애에 관한 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의도는 '장애인 장영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형태의 삶의 장애를 갖고 있는 '인간 장영희'에 대해 쓰는 것이다."

실제로 이 두 권의 책에 실린 에세이의 많은 경우는 저자 자신의 인간적 약점과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중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특히 <내 생애 단 한번>에 실린 글 가운데 <못 줄 이유> <겉과 속> <미안합니다>는 앞서 지적했던 단편소설적인 재미와 함께 자기 '마음의 장애'를 드러내는 것으로 독자의 마음마저 움직이는 명편이다. (143~144쪽에서 인용)

 

 

이렇게 되면 장영희 선생의 책을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책읽기는 이렇게 누군가 꼭 짚어서 알려줘야, 예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것에 화들짝 놀라며 새로이 눈을 뜬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을 때마다 장영희 선생이 인용한 시에 흠뻑 취하며, 집나간 나의 감성을 불러들이기 바쁘다.
인용한 시를 다시 보면서, 이렇게라도 집나간 감성을 가끔은 잡아 들일 수 있구나 위안을 삼으며 만끽한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방법을 꼽아 볼게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31쪽,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 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 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74쪽, 에밀리 디킨슨,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내 생애 단 한번> 이번에 중고샵에서 건져올려 장정일이 소개한 세 편만 우선 골라 읽었다.

<못 줄 이유>를 읽으며, 말은 나누는 삶을 살자고 하면서 사실은 아까워서 주면 안되는 이유를 찾는다는 말에 부끄럽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으로 선물한 후 아까워한 적도 있고, 내가 받은 선물과 값을 견주어 보기도 했다는 걸 자백하게 되더라. 

<겉과 속>은 보여지는 나와 실제의 나가 다르다는 것, 특히 신앙인으로서 겉과 속이 다른데 묵주 기도를 3초 빨리 끝내기 위해 '주님의 기도'는 영어로, '성모송'은 우리말로 해야지 생각했다고.^^ 그때 어디선가 주님이 '정말 못 말리네! 앗핫핫' 크게 웃으시며 알량한 딸을 또 용서하고 기다리시는 모양이라는...

 <미안합니다>는 아버지인 장왕록 선생이 몸소 보여준 겸손함과 공동으로 영어교과서를 집필하며 가르쳐 준 원칙에 대해 말한다. 늘 아버지 앞에 미안한 일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꿋꿋하게 교과서를 써내어 장왕록의 딸 장영희가 되었다. 그래서 다음에 아버지를 뵐 때는 '아버지, 미안해요!'하며  울지 않아도 될 거라는.... 찡한 감동을 주는 글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2009년 6월에 생일선물로 ㅁ님에게 받은 책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데 3년이 걸렸다. 책도 인연이 닿아야 읽게 되는지...그림도 이쁘고 내용도 좋은데 정독의 기회를 자꾸 미루었는데, 장정일씨 덕분에 제대로 읽게 됐으니 고맙다.^^

장영희 선생은 2009년 5월 9일 57세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 책은 항암치료를 견디며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기적이라는 것을 김종삼의 시에서 따 온 제목으로 생전에 엮은 책이다.

골목에서 함께 자라던 친구들은 몸이 불편한 어린 영희를 배려해 술래잡기를 하면서 어디에 숨을지 미리 알려주고 숨기도 했고, 함께 뛸 수 없는 고무줄놀이나 달리기를 할 때도 심판을 시키거나 신발주머니와 책가방을 맡기는 등 소외되지 않도록 역할을 주었다. 혼자 집앞에 앉아 있는데 골목을 지나던 깨엿장수는, 지나쳤던 길을 다시 돌아와 깨엿 두 개를 내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간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라고 말했단다. 그때 어린 영희는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의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131쪽)고 말한다. 188쪽의 '오마니가 해야 할 일'은 남북분단의 아픔이 절절하게 그려져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집권세력들이 이런 글을 읽어야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에 힘을 쓸텐데...현실은 통일과 거리가 먼 정신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축복, 생일, 이 아침 축복의 꽃비가>

세 권도 중고샵에서 건졌다.

거의 새 책 같은 중고를 싼값에 건져서 주머니가 가벼운 독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출판계는 점점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의 독자지만... 책을 읽는 순간은 그런 생각없이 즐겁다.

 

 

 

 

 

그동안 미친듯이 읽은 책 중에 <이혼 지침서>는 아주 흥미로운 책으로, 이혼을 생각해본 독자라면 필독할 책이다.^^

이혼이 하고 싶어 환장(^^)한 남자 양보, 아내 주윈은

"정 이혼하고 싶으면 2만 위엔(약 250만원,  중국 공장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의 20배)만 주면 돼. 줄 수 있어? 줄 수 없으면 이혼 얘기는 꺼내지도 마." 라고 하지만, 그런 거액이 있을 리 없는 양보는 빚을 내서라도 이혼하려고 별별 수를 다 쓴다. 아내 주윈은 그런 양보를 혼내주기 위해 또 별별 수단을 다 쓰고.... 이미 오래전에 지난 일이지만, 나도 세번쯤 이혼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법원에도 가보고, 이혼서류도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이혼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아무도 이혼하는 법을 가르쳐줄 수 없어요. 이 책은 죄다 개소리예요."

라는 양보의 결론에 격하게 공감한다. 이혼을 꿈꾸거나 정말 이혼하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필독을 권한다. 이혼지침서 앞 뒤로 실린 '처첩성군'과 '세 개의 등불'도 부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박완서 님의 작품도 줄줄이 쟁여놓고 여기저기 들춰 읽는 중~

 

<잃어버린 가방>에 나오는 여행지 안동 하회마을, 섬진강과 김용택, 토지의 악양마을과 곽재구 시인 이야기 등은 내가 다 가본 곳이고 만나뵌 분이라 공감대가 형성돼서 좋았다.

 

언제든 다시 읽어도 좋은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정말 글을 참 잘 쓰셨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독서에 관련된 글은 신문에 실었던 글이라 원고지 7매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이야기를 하다 만 느낌이라 좀 아쉬웠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빨갱이 바이러스'만 못 읽어서 구입했는데, 역시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족에게 레드 콤플렉스는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 이전까지는 정말 치명적이었다. 작품 속 그녀의 가족사에 얽힌 빨갱이가 드러나기까지...세 여자가 풀어내는 비밀 이야기와 별장집 여자가 결코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은 하늘과 땅 차이!!

 

 여성동아 출신 작가들이 풀어낸 박완서 작가와의 추억 이야기, 그 속에서 발견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면면이 새롭게 다가왔다. 문학동네 편집자는 내가 문의 한 조혜경 작가님 연락처 좀 알려주지, 가타부타 답이 없네.ㅜㅜ 조혜경 작가님과 찍은 사진이라도 올리면 알려주시려나?^^

 

 



그리고 독서에 관한 책들을 마구잡이로 골라 읽는 중이다. 내가 읽은 책 이야기를 중심으로~

2008년 겨울, 책따세 추천도서였던 <독서>는 김열규 교수의 독서추억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요즘처럼 책이 흔하지 않고 귀하던 시절 이야기에 공감도 되고, 평생 책과 연애하는 삶이 아름답다.

 

막내가 '이반데니 소비치의 하루'를 읽기에 청춘의 독서에 나온 '이반데니 소비치의 하루' 이야기를 같이 보라고 권해주면서 나도 읽었다. 그리고 '죄와 벌' 이야기도.... 여기 수록된 책 중에 공감할 수 있는 건 달랑 그것 뿐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알라딘 서재에서 훔쳐봤던 것들을 더 꼼꼼하게 볼 수 있어 좋지만, 나에게는 좀 벅찬... 여기저기 관심있는 것을 골라보는 재미로 읽는다.

책에 수록된 것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어떤 책에 무엇이 실렸는지 아는 것은 참 좋다. 이렇게 필요할 때 찾아 읽으면 되니까...^^

 


 

 

 

정작 다음주 토론도서인 <난설헌>은 손도 못댔는데, 날새면 빌리러 온다는 회원에게 빌려주고 나는 토론 전날에나 읽게 될 거 같다. 그래도 난설헌과 관련한 책들은 전에 읽어 둔 게 있어서 다시 찾아 읽었다. 시집도 꺼내 읽는 중이고....


난설헌이 나온 <한국사전3>은 아직 없다. TV에서 한국사전 방송할 때 봐서 내용은 알고 있지만, 책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은데... 야호, 알라딘중고샵에서 건졌다. 

 

 

 


와중에 이런 책도 읽는데, 4월 총선 전에 사람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다.
내가 속한 독서회에서 3,4월 토론도서로 정하면 적어도 15~ 20명은 이 책을 읽게 되겠지... ^^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2-02-2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혼 지침서.. 이런 책도 있다니! 하고 봤는데 음.. 저는 물론 '결혼 지침서'부터 찾아봐야할 사람이지만 어쩐지 이 책도 읽어보고싶어요. 실용도서로서가 아니라, 그렇다고 흥미때문도 아니고.. 그저 주변인 때문이라고 해둘까요. 음.. 10년 전엔 주변인들이 '결혼' 이야기를 주로 하더니 지금은 주변인들이 '이혼' 이야기를 해요. 심심챦게 말이지요. ;;

'미친듯이 책을 읽는 순오기님'을 상상하면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 추가할 그림 또는 사진 한 장을 상상하다가 가요. ^^

하늘바람 2012-02-2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픈 책이 그득하네요
책읽는 오기 언니는 정말 그림책 속 한장면 같아요.
정말 가까우면 도서관가서 책 읽기에 동참하고 프다는^^

섬사이 2012-02-2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듯,이, 책을 읽다니~!!!
저도 그러고 싶어요~

blanca 2012-02-2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좋아요. 부럽기도 하고요. 장영희 선생님 책은 꾸준히 읽고 소장하기도 했었는데 리뷰도 안 쓰고 책도 친정에 두고 흩어져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순오기님이 짚어주시니 새롭기도 하고 색다른 감동도 느껴집니다.

수퍼남매맘 2012-02-24 0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알라딘에 뜸하시다 했더니 이렇에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계셨을 줄이야. 재충전이 팍팍 되셨을 듯해요.

순오기 2012-02-2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만 올리고 다시 읽으며 확인하지 않았더니 '오타'가 많았네요.
지금도 바빠서 장영희 선생 책까지만 확인해서 수정하고 그 아래는 다녀와서 다시 봐야겠어요.ㅜㅜ

카스피 2012-02-2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많이 읽으셨네요.전 사놓고 못 본책도 아직 많은데... ㅜ.ㅜ

꿈꾸는섬 2012-02-2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미친듯이 책을 읽어야하는데......요새 책을 멀리하고 있어요.ㅜㅜ
이 게으름을 떨쳐내야겠어요. 힘이 나는 페이퍼에요.^^

희망찬샘 2012-02-25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삽에서 건진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저도, 그 인연의 끝을 마무리짓지 못했는데, 이번에 읽어봐야겠네요. <이혼지침서>라, 아직 관심없어도 읽어보면 재미있겠네요.

마녀고양이 2012-02-2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난설헌 샀답니다.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요.
그런데 정말 많은 책을 읽으셨군요... 대단하시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