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잘 타는 사람은 타고 난단다 - 도파민 수용체
hnine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며칠 전부터 쓰고 싶었던 페이퍼를 비로소 쓴다.
hnine님이 아이에게 과학 지식을 쉽게 설명하는 페이퍼를 볼 때마다 참 부러웠다.
우린 가족 모두가 타고난 문과 체질이라 이과에 취약하기 때문에...
하지만, 유전자 덕분인지 독서나 영화취향은 잘 맞아서 선택에 갈등이 없어 좋다. ^^
알라딘 서재인들에게도 자녀교육에 좋은 본보기를 발견하지만
곰배령에서도 감동받은 교육법이 있어 옮겨 본다.
"너, 엄마 노릇 제대로 하고 있어?"
스스로 질문하면서...
저자처럼
스스로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줄만한 사례가 있었는지 더듬어 본다.
세 아이 중 신체 발육이 다른 아이 둘에 비해 늦은 아이가 있었다. 함께 태어난 아이들이니 자라나는 것도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나는 발육이 늦은 아이를 보며 무척 조바심을 내곤 했다. 곧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을 놓고 귀가 얇은 나느 급한 마음에 회초리를 들기도 했다. 내게 주로 들볶이던 한 아이가 말해주었다.
"엄마,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내 몸이 내 맘대로 되지가 않아."
'아차,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함께 태어난 세 아이는 성격도 식성도 취향도 제 각각 달랐다. 나래는 혼자서 조곤조곤 놀기를 좋아했으며 고기 음식을 좋아했다. 다래는 노상 책을 끼고 다녔고 된장찌개를 좋아했다. 도희는 동물이나 곤충과 노는 것을 좋아하고 생선과 과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세 아이와 함께 살다 보니 서로 다는 세 사람임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엎거나 기거나 앉거나 서거나 걷거나, 빠르게 느껴지는 아이가 있으니 늦다고 느껴지는 아이도 있는 거였다. 조급한 내 마음을 재빨리 무장해제했다.
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용변을 지렸다는 소식이 오면 신속히 달려가 조용히 해결했다. 아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약간 호들갑을 떨며 망을 보았다. 내가 옷가지를 처리하는 동안은 아이가 조용히 망을 보았다. 무사히 일을 처리하고 우리는 "썽공이야!"를 속삭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니와 나는 한동안 2인 1조의 첩보원으로 살았다. 용변을 천천히 가리는 아이도 이 세상에는 있고 그 아이 중에 한 명의 엄마가 나일 수도 있는 일이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는 거다. 아이 대신 용변을 보아줄수는 없지만, 아이가 신호를 보내면 그 곁을 지켜줄 수는 있었다. 함께 있음으로 나는 아이에게도 내게도 외로움이나 수치심, 혹은 죄책감이 깃들 기회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73~74쪽)
나와 우리 아이들이 기억하는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과연 그런 순간이 있기나 했던 걸까...... 삼남매한테 물어봐야 겠다.
배추 하나 별똥 하나, 배추 둘 별똥 둘, 배추 셋 별똥 셋...... 보지 않아도 어디선가 별들은 떨어져 내리고 있을 터였다. 별들을 생각하며 배추를 절이니 지루하거나 외로울 틈이 없었다. 졸립지도 않았고 힘들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배추를 모두 절이고 나니 새벽 세 시가 넘었다.
마늘과 생강 다지기를 잠시 접고 나래, 다래, 도희를 깨웠다. 김장을 한다고 해도 별똥별은 보러 갈 셈이었다.
"별 보러 가자."
아이들이 부스스 일어나 옷을 입고 담요를 챙겼다. 다리 앞 가로등 불빛이 환해 별똥이 잘 안 보일지 몰라 이이들은 태우고 조침령에 올랐다. 조침령까지 가는 동안 마을 집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터널이 생기고 나서 다니지 않던 조침령 비포장도로를 조심스레 올랐다. 길은 군데군데 움푹 파여있고 꼭대기에는 눈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무척 깜깜하고 추웠다. 우리는 차에 들락날락하며 몸을 녹이고 밤하늘을 응시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별빛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별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소원을 하나씩 말했다.
"내 키는 일 미터 팔십까지 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백 살까지 살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무척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나래, 다래, 도희는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기말고사에서 나는 모든 과묵에 구십 점 이상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는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무척 건강하고 행복한 부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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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래, 다래, 도희가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룹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내게 꼭 어울리는 동반자를 만나 따뜻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지속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천십오년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나래의 책카페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멋진 크리스마스를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천십오년 크리스마스에 다래의 아름다운 모텔에서 푹 자고 일어나 하얀 눈 세상을 만납니다. 감사합니다."
뭐든지 마음껏 개의치 않고, 이미 이루어졌다 생각하고 소원을 말하고 나니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생기가 넘쳤다.
"우리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로 마무리를 짓고 우리는 5시 30분에 집으로 돌아왔다. 산더미 같은 일거리에도 불구하고 신새벽, 아이들과 별똥별을 보러 간 내가 마음에 쏙 들었다. 해야만 하는 일도 하고 살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사는 내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랬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리는 건 별똥별이고, 유연함과 여유는 내가 만들어 쓰는 나만의 보물이었다.(143~145쪽)
하하가 중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무슨 일인가 하하에게 화난 일이 있어서 손을 올렸는데, 내 손을 하하가 잡은 것이다. 화가 나서 다른 손을 들었더니, 그 손도 잡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아들은
"어머니, 말씀으로 하세요. 다 알아들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전까지 그런 일이 없었던 아들이 처음오 내 양손을 막으면서 엄마에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아들이 이제 다 컷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후 나는 매를 든 일이 없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매를 든 일이 되었고, 아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21쪽)
그 시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아이들이 잘못했다는 걸 알게 하면서도, 위축되지 않게 하는 방법' 이었다. 다시 안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혼나는 것만 기억하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파티를 열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잘못한 일에 대해 '다시 그러지 말자!'라는 다짐을 받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친구들과 함께 둘러앉게 한 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마음을 열고 자신이 고쳐야 할 점과 깨달은 점에 대해 나누도록 도왔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공감하게 되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 어느새 그 모임은 하나가 되었다. 장기 자랑도 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전하기도 하며, 장래 희망을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건강항 모임이 되었던 것이다. 나도 아이들의 새악가을 긍적으로 공감해 주며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이 '다시 안그러기 파티'라는 이름이 붙게 된 계기였다. 초등학교 이후로도 이 파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24~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