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출간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첫 장에 있는 작가 소개는 “개인적 체험에서 가장 위대한 허구를 만들어 낸 작가‘라는 말로 시작된다. ’개인적 체험‘에서 시작해 그것을 소설로 만들어 낸 작가가 헤밍웨이만은 아닐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 역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많다.
헤밍웨이는 ”작가는 직접 겪은 일을 써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글을 썼지만 박완서 작가에게는 철학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그 많은 경험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필요와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타고난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져 글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 같다. 그래서 헤밍웨이가 ’그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다른 이유도 많겠지만)’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박완서 작가는 오랫동안 꿋꿋이 건재해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동화 등 많은 작품을 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tvN 드라마 ‘졸업‘에서 대치동 일타 국어 강사인 서혜진(정려원)은 박완서 작가에 대해 강의할 때 ’1931-2011‘이란 숫자에 답이 있다고 한다. ’작가가 살면서 경험한 전쟁, 분단, 산업화를 거치며 진행된 사회적인 변화와 인간 사회의 병폐와 부조리‘가 선생의 글감이다. 여기에 유년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이 세 살 때 아버지가 맹장염에 걸렸지만 병원에 가서 수술하지 않고 민간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다 아버지가 죽었다. 그 사실에 두고두고 한이 맺힌 박완서의 어머니는 아들과 선생을 서울로 데려가 신식교육을 시켜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선생의 생일을 깊이 있게 이해했다면 선생의 어떤 작품이 덤벼도 무섭지가 않다고 정려원은 말한다. 선생은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나 문제지에 실리기를 별로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겪지 않았던 시대를 완벽하게 소설에 묘사해 놓았기에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가 없다.
『박완서의 말』은 1990년대에 있었던 박완서에 대한 인터뷰 기록들을 그녀의 장녀인 호원숙 작가가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선생은 워낙 격변하는 여러 시대를 거쳐 산 덕분에 자신이 500년 정도 산 느낌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 게다가 1988년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저세상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여태껏 선생이 당한 그 어떤 굵직한 사건보다 더 큰 충격이고 힘듦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생의 말에 고통이나 아픔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다 넣어 삭힌 듯하다.
선생의 말은 담백하고도 뼈가 있었다. 말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오히려 인터뷰어들의 말이 더 장황할 정도였다. 고정희 시인의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가 박완서다.”라는 말처럼 선생은 담담함 속에서도 아닌건 아니라고,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밝힌다. ‘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끊임없는 독서, 체험이 선생 글의 밑받침이 된다고 했다. 박완서 작가에 대한 이력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마흔의 나이에 등단했다는 사실 아닐까? 아이 다섯을 키워낸 주부가 어떤 습작기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그때부터 무수히 많은 글을 써내는 것 자체가 경이로울 정도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구상한 후에 글은 금방 쓴다고 했다. 그만큼 쓸 수 있는 소재를 많이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박완서의 소설에 작가의 경험만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작품 중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산업화 이후 대한민국 중산층과 여성의 삶을 다룬 내용이 들어있는 것도 많다. 특히 여성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날카롭다. 진보적 여성관을 가지고 있으며 중산층 여성의 이기심에 대한 비판도 많이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박완서 작가는 제 1세대 페미니스트가 확실하다. 작가 자신이 전업주부로 별 어렵지 않게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고 폄하될지는 모르지만 페미니스트가 뭐 별건가? 꼭 장외로 나가 서로의 관계를 부정하며 상대를 비판하고 구호를 외치는 극단적 투쟁만 하는 것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선생의 소설 속 여자들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그 시대 여자들이 앞으로 갈 방향을 잘 제시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은 충분하다.
혹시 선생이 페미니스트란 말을 싫어하실라나? 그렇지만 나는 나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것에 뭔가 확실한 경계는 없다. 나란 사람에게 가부장적인 것과 보수적인 면도 분명히 들어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극복하고 더 진전하겠다는 각성과 그에 따른 실천을 한다면 그것이 페미니스트이고 진보주의자인 것이다. 다음 주에 시아버지 제사가 있다. 이 더운 여름에 불 옆에서 전을 부치기 싫어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저께 형님께서 가져다주신 깍두기와 열무김치를 먹으면서 가서 보은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여자들만이 제사를 준비하는 가부장적 제도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의 행동도 필요하지만 받은 것을 돌려주는 인간적인 삶도 절대적이다. 사는 것이 이래서 정말 힘들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즐거웠던 것은 박완서, 피천득 선생과 나의 종교관에서였다. 우리 모두 가톨릭이란 종교가 아름답고 성스러워 영세를 받고 성당에 나가지만 고해성사와 같은 종교가 주는 의식을 싫어한다는 점이 닮아 있었다. 피천득 선생은 고해를 보지 않고도 성사표를 고해를 보고 난 후에 넣는 바구니에 넣었다고 했다. 그 부분에서 나는 그만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똑같이 그렇게 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고 그것이 오히려 더 순수한 것 같아 정화되는 느낌도 들었다. 박완서 선생이 목마르다고 맥주를 한 잔 하자고 하면서 당신이 맥주를 잘 마신다고 한 말도 좋았다. 사람인데도 사람한테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때가 나는 가장 행복하다.
이 책 끝부분에 선생 작품의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장편소설과 소설집 35편, 산문집 17편, 동화집 11편.…단지 쓴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책을 출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읽어 주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책의 숫자에 숙연해진다.
[내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면 소설을 결코 쓰지 않겠죠.
소설이란 여러 사람하고 같이 공감하면서 쉽게 마음에 와 닿도록,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거예요.
내가 안 겪어봤으니까 더더욱 다른 이들의 아픔이 생생하게, ‘날 것’으로 다가왔다고 말이다. 문학을 하는 능력이 별스러운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처지를 내 것처럼 이해하고 상상하는 능력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박완서의 말' 중에서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에서]
일사후퇴 후 거의 모든 사람이 남쪽으로 피난을 갔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피난을 가지 못한 20살의 박완서는 텅 빈 서울에, 마치 자신만 남은 것 같은 공허에, 앞으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할 글을 쓸 거라는 예감을 한다. 그녀는 40세에 처음 세상에 글을 내 놓았다. 박완서의 예감은 적중되었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작가가 자신의 예감을 실현시키려는 의지보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당위성의 이유를 확인시켜 주는 책이다. 그만큼 한 인간이 저렇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며 파란만장하다. 큰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인간들의 변화와 적응력, 순간적인 운명 등 지금 세대들은 감당하지도 못할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작가의 오빠의 운명은 더 기구해 마음이 아프다.
이 두 권의 소설은 저절로 술술 읽힐 정도로 내용도 절절하고 작가의 문장이나 표현도 너무 좋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열한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이, 역시나 그 시대에 살았던 내 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들에게도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인생이 있었다.
[우리 집에 모여 앉은 많지 않은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그림자이기를 거부한 이는 역설적이게도 사자였다. 엄마가 먼저 맡은 부란(腐爛)의 냄새는 역질처럼 무섭게 우리한테 번졌다.
“쉬어서 버리면 안 되지.”
엄마가 헛소리처럼 말하면서 팥죽을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둘러앉아, 사랑하는 가족이 숨 끊어진 지 하루도 되기 전에 단지 썩을 것을 염려하여 내가 버린 인간들답게, 팥죽을 단지 쉴까 봐 아귀아귀 먹기 시작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