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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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알려진 대로 발자크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따라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p.432, 작품 해설)’을 품고 인간희극(La Comédie humaine)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창작해 낸다. 평론가 김화영 선생은 프랑스어 ‘Comédie’는 비극의 반대인 희극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을 의미하므로 인간극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인간희극이라고 불린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러한 인간희극에 대한 배경이나 작가의 집필 의도를 알고 시작하는 편이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더 좋을 것 같다.

 

1789714, 민중 봉기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고,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함으로써 제1제정이 시작된다. 나폴레옹은 유럽 여러 나라를 정복하지만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1815년에 사망한다. 1814년에서 1830년까지 부르봉 왕가의 왕정복고 시대에서 샤를 10세는 보수적 정치를 실시해 부르주아는 반발한다. 18307, 부르주아는 혁명을 일으키고 부르주아의 왕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추대한다. 7월 혁명을 계기로 프랑스는 본격적으로 산업 혁명이 진행되었고 18482월 혁명이 일어난다.

 

1799년에 태어나 1850년에 사망한 발자크는 프랑스 혁명 이후와 2월 혁명의 시기에 걸쳐 살았고, 그의 작품은 대부분 왕정복고 시기와 7월 왕정을 시대적인 배경으로 한다. 고리오 영감181911월 말부터 1820221일의 대략 3개월 동안을 시간적인 배경으로 하는 왕정복고 시대에 놓인 소설이다.

 

발자크의 당대 프랑스 사회의 전모를 밝히고자 하는 의도에 걸맞게 이 소설은 독자가 뭔가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세하고도 성실하게 인물과 사건에 대해 작가가 서술해주고 있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가 잘 구분되지 않아 어디까지를 소설적 요소로 받아들일지가 모호했다. 그렇지만 발자크 시대의 풍속이 지금 시대와 완전 다르지는 않았다. 이미 그때부터 돈과 돈을 가진 자가 최고인 시대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돈을 좇는 자가 생성되고 그들은 악마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원리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빈곤과 권태만이 있는, 파리의 그 어느 구역보다 소름끼치고 낯선뇌브생트 주느비에브 거리에서 보케르 부인은 40년 동안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퀴퀴하고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보케르 하숙집에서조차 내는 돈에 따라 대우는 달라진다. 이 소설을 이끌어 갈 중요 인물은 7명의 하숙생 중 세 사람이다.

 

제면업자였던 고리오 영감은 프랑스 대혁명 때의 혼란을 틈타 한 몫 잡아 부자가 된, 선하지만 어긋난 부성애로 자기와 두 딸의 삶까지 망쳐버리고 외롭게 죽는 69세의 노인이다. 그는 1200프랑의 하숙비에서 지금 45프랑의 하숙비를 지불하며 점점 가난해지는데, 그 이유는 모두 다 사교계에 목숨을 거는 그의 두 딸 때문이다.

 

남부 지방(앙굴렘) 출신의 가난한 법학도인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자신의 출세가 가족 전체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파리 입성에서 그가 금방 알아낸 진리는 자신을 사교계에 입문시켜 줄 여자가 필요하며, 사교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출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도형장에서 탈옥해 보트랭이란 이름으로 위장해 살고 있는 자크 콜랭이 있다. 그는 라스티냐크의 야망을 알고 그것이 실현되기 위한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보트랭은 체포되면서 나는 장 자크 루소의 얘기처럼 사회계약이 지닌 뿌리 깊은 기만에 반항하는 사람이오. 나는 그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오.(p.305)”라고 말한다. 김화영 선생은 이 보트랭이란 인물에 발자크의 내면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발자크는 분명 그의 내면에 무시무시하고 마력적인 보트랭의 위대함에 대한 동경을 감추고 있다. 그 동경 속에는 쾌락의 본능과 권력 의지가 결합되어 있다.(p.105, ’프랑스 현대 소설의 탄생‘, 돌베개) 발자크는 이 세 인물을 통해 촘촘하게 이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여전히 지금도 계속 방영되고 있는 막장 드라마에는 항상 이분법적인 구조가 있다. 똑같이 주어진 사회적 환경에서도 곧게 나가려는 사람과 남을 이용하고 밟아 위악적으로 출세하려는 대조적인 인물을 등장시킨다. 드라마에서는 결국 전자에게 행운을 주고 웃게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후자가 성공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고 한 번 시작된 질주는 끝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그렇다. 알면서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이나 돈은 그 맛을 보면 내려놓기 힘들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분노하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은 나, 우리가 가진 인간의 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재미있기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부 출신의 라스티냐크는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지만 마지막까지 고리오 영감을 돌보는 순수성과 동정심을 지닌 사람이다. 발자크가 인간희극에서 사용한 인물 재현법으로 라스티냐크는 다른 소설에서 어떻게 변해 있을지 흥미롭다. 그가 마지막에 말한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p.430)”로 어느 정도 그의 행동이 짐작이 가긴 하다.

 

처음 읽은 발자크의 소설로 이 작가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문장의 깊이가 없어 아쉬웠지만, 그가 그려낸 파리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재미있었고 발자크 특유의 위트 있고 깊이 있는 해석이 있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19세기 프랑스의 풍속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렵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내가 이처럼 자네에게 세상 얘기를 하는 것은 세상이 나에게 그럴 권리를 주었기 때문이야. 나는 세상을 알아. 내가 세상을 비난한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세상은 늘 이런 모양이었네. 도덕군자도 이 세상을 결코 고치지 못할 걸세. 인간은 불완전하지.

-p.167]

 

**제목의 위대한 풍속역사가는 앙드레 모루아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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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12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전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인데... 왤케 안읽혀지는지...
클났어요;;;

페넬로페 2024-02-12 21:11   좋아요 3 | URL
발자크가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기로 했으니 그냥 그 의미나 상징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작가가 이끄는 대로만 갔습니다. 막장의 전형이더군요 ㅎㅎ
드라마 작가는 모두 다 발자크를 읽은 것 같아요.
별점 고민 많이 했어요^^

독서괭 2024-02-14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막장.. 재밌겠는데요? 전 발자크 한권도 안 읽어봤어요 ㅎㅎ ˝선하지만 어긋난 부성애로 자기와 두 딸의 삶까지 망쳐버린˝ -이 부분이 궁금해지네요. 프랑스 역사공부에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페넬로페 2024-02-14 16:04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처음 발자크의 작품을 읽었어요. 19세기 초반의 프랑스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더라고요.
고리오 영감은
한국판 사랑과 야망 정도가 되고
절대 자식에게 재산을 빨리 넘겨주지 말라는 교훈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페크pek0501 2024-02-1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지고 있는 1인인데(저는 다른 출판사 걸로) 왜 읽게 되지 않는지... 아마 앞부분을 읽다가 말았던 것 같은데 꼭 완독할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뽑으신 167쪽의 글, 좋네요. 음미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갑니다. 페넬로페 님 덕분입니다.^^

페넬로페 2024-02-17 16:49   좋아요 0 | URL
저도 발자크의 작품, 어렵게 시작했어요. 사실주의 문학을 읽을 때엔 나름의 각오를 가지고 시작해야하는데 다 읽고 나면 어떤 의미를 주더라고요. ‘옛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란 말을 실감하며 이 책 읽었던 것 같아요^^

새파랑 2024-02-17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세기 프랑스에는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사실주의(?) 작품을 쓰는 작가가 많았던 걸까요? 전 너무 세밀한 묘사는 오히려 잘 안읽히더라구요... ㅋㅋ

역시 페넬로페님은 프랑스 문학 마니아 이십니다~!!

페넬로페 2024-02-21 10:04   좋아요 1 | URL
그 시대가 워낙 변화가 심하고 빈부와 신분의 차이가 커서 작가들이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나봐요.
어찌하다보니 계속 프랑스 문학을 읽게 되네요 ㅎㅎ